*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지난 1990년 유엔에서 정한 국제노인의 날은 10월 1일이지만,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10월 2일로 제정해 지켜오고 있다. 10월은 경로의 달이기도 하다. 기념식과 축하 행사, 경로잔치 등으로 어르신들이 바쁘고 분주한 달이다.

65세 이상을 노인 세대로 구분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짱짱한 60대는 전혀 노인의 날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노인복지 현장에서 보면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후기 고령자'로 불리는 75세 이상은 아무래도 건강의 유지와 일상생활 관리에 관심을 보이고, 젊은 노년층은 '일자리'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팍팍한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리라.

그런데 여기, 두메 산골에서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해낸 결코 젊지 않은 할머니들이 있으니, 바로 영화 <이로도리, 인생 2막>의 칠십대 주인공들이다.

소꿉친구 할머니 3명 의기투합해 벌인 나뭇잎 사업

영화 <이로도리, 인생 2막>  포스터

▲ 영화 <이로도리, 인생 2막> 포스터 ⓒ (주)추억을 파는 극장


젊은이들은 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두메 산골 '가미카쓰 마을', 한파로 농사를 다 망치고, 허리 휘는 노동은 끝날 줄을 모른다. 거기다 뻑하면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무서운 남편에게 눌려 살다보니 할머니 얼굴에는 근심이 한 가득이다.   

이 마을의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청년은 농사 지은 무 하나라도 내다 팔려고 애쓰지만 영 길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 어른들의 무관심과 무시 또한 힘들기만 하다. 그동안의 좌절과 낙심의 결과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도통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음식에 얹는 나뭇잎 장식이 눈에 들온다. 협동조합 청년과 소꿉친구 할머니 세 명은 산골 마을의 깨끗하고 다양한 나뭇잎을 손질해 팔기로 의기투합한다. 물론 처음부터 친구 세 명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친 것은 아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겪는다.

무언가 해보려는 할머니를 돕지는 못할 망정 할아버지는 여전히 삐딱하기만 하다. 아내가 나서서 나뭇잎 사업을 하는 게 우습기도 하고 설쳐대는 게 못마땅하다. 끝내 손찌검까지 하는 할아버지. 영화 속 일본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을 객석의 어르신들 사이에서 혀 차는 소리와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나뭇잎 사업은 초기의 고생과 좌절, 주위의 반대, 좌충우돌을 두루 거치면서 자리잡혀 가고 서로 얽혀있던 부부 관계, 친구 관계도 조금씩 실마리가 보인다. 오해를 풀고 평생을 거짓으로 포장해온 진실을 고백하면서 70년 넘는 세월 동안 가슴 속에 묻고 살아온 것들을 꺼내놓고 난 어르신들의 얼굴이 가볍다.

결국 사업이 완전히 자리 잡히면서 젊은이들이 마을로 돌아와 마을이 살아나고, 가족들도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사업에 참여하며 힘을 모은다. 일본의 실버기업인 '주식회사 이로도리'의 창업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덕에 모든 장면이 생생하며 실제 생활 그 자체다.

노인들을 '잉여'로 만들지 않으려면... 

영화 <이로도리, 인생 2막>의 한 장면  바로 지금이 인생의 봄날일지도...

▲ 영화 <이로도리, 인생 2막>의 한 장면 바로 지금이 인생의 봄날일지도... ⓒ (주)추억을 파는 극장


그렇다고 이 영화가 무조건 착한 영화, 싱거운 영화라고 생각하지 말길. 주름진 얼굴에 쌓인 세월을 읽으며 함께 울고 웃고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다 보면 나는 어떻게 나이 먹어 갈 것인지, 뭐 먹고 살 것인지, 무슨 일을 하며 노년을 보낼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영화 속 할머니들의 대사처럼 '후회하면서 죽지 않으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권유나 '아직 뭐든 할 수 있어!'라고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개인의 결심이나 도전만으로는 어렵다. 반드시 제도나 정책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영화에서는 할머니들의 의지와 동지애가 한 기둥을 이루고, 다른 한 쪽 기둥은 협동조합 청년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떠받치고 있다. 세대와 세대가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에너지를 나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낙원동에 있는 실버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근처에 있는 '추억 만들기' 카페에 들러 점심을 먹으려 했다. 커피를 4000원에 파는 이곳은 옛날 DJ들이 어르신들의 신청곡을 받아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틀어준다. 그러나 카페 안에 어르신들이 자리를 꽉 메우고 있어 감히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지나쳐야 했다. 아쉬웠다.

노인의 날, 경로의 달, 이런저런 다양한 행사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 이전에 삶의 자리를 좀 더 편편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노년을, 아이들 표현대로 '잉여'가 아니게 만들려면 결국 일을 할 수 있도록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니 오늘 노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어르신들은 경로잔치의 즐거움도 좋지만 일할 기회를 달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싶을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영화 <이로도리, 인생 2막 (일본, 2012)> (감독 : 미노리카와 오사무 / 출연 : 요시유키 카즈코, 후지 스미코, 나카오 미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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