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기사는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재구성해 쓴 글입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편집자말]
"할아버지~"

14살 중학교 1학년 강석이가 목청껏 외할아버지를 부르며 현관문을 들어섰다. 계집아이처럼 예쁘게 생긴 놈이 엄마와 남동생이 사는 아파트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달려와 할아버지를 찾았다. 키가 작고 몸매가 날씬한 놈이 어린이용 플라스틱 스키를 어깨에 메고 왔다.

"오냐, 어서 오너라."

할아버지는 귀엽게 생긴 손자를 보고 신이 났다.

"할아버지, 이사 갈 때 장 속 깊은 곳에서 이 스키가 나왔어요?"

강석이가 지금은 죽고 없는 아버지가 살아 있었을 때 사주었던 스키를 가리키며 말했다. 강석이 엄마는 죽은 남편이 사놓은 물건은 모두 없애 버렸는데 강석이가 아버지의 유품을 발견하고 신이 나 있었다. '죽은 아버지 이야기가 또 나오는 구나!' 할아버지는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창문 밖에는 눈이 많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강석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통 사고로 죽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할아버지 가슴은 철썩 내려 앉았다. 강석 아버지가 죽은 이후로 강석이네 집에서는 아버지 이야기를 엄마 앞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게 했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강석이 엄마는 남편이 하루 아침에 날벼락 치듯이 죽어버리자, 남편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을 몽땅 없애고 아이들이 아빠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지 못하도록 단속을 해왔다. .

'빠이빠이' 인사하고 출근한 남편이 10톤 트럭에...

6년 전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아침, 강석이 엄마가 초등학생들에게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동요를 가르치고 있던 음악 시간. 남편이 다니는 직장 동료 공무원 한 명이 날씨처럼 어두운 얼굴로 교실에 찾아왔다. 그러고는 아침에 '빠이빠이'를 하며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직장으로 간 남편이 카니발을 타고 출근하다가 서울 직장 부근 터널에서 10톤 트럭에 받혀 죽었다는 말을 떠듬떠듬 울먹이며 말했다.

"전화를 해도 강석 어머님이 받지를 않아서 급히 달려 왔어요."

그는 손수건으로 얼굴에 흐른 식은땀을 연신 닦으며 말했다. 강석이 엄마는 세상이 노랗게 변하더니 빙그르르 돌았다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남편의 동료 직원이 쓰러지는 강석 엄마를 안아 양호실로 데려다 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린 강석 엄마 눈에는 고양이 새끼 같은 8살, 2살 아들의 눈동자들이 빤짝이고 있었다. '이를 어찌하라고….' 정신을 가다듬은 강석 엄마는 교장실로 달려갔다. 강석이 아버지 시신을 안치시킨 병원 영안실에는 8살 초등학생이 검은 상복을 입고 검정 상복을 입은 엄마와 함께 조문객들을 맞았다.

"여보, 내년이면 우리들이 바라던 아파트를 삽시다. 그리고 온 가족이 제주도로 기념여행을 갑시다."

강석 엄마 손을 다정하게 잡고 적금 통장을 펴 보이며 말하던 남편이 영안실에 눈을 감고 누어 있었다. "혼자 가면 어떡해요?" 강석 엄마가 시신에 엎어져 울었다. 장의사들이 강석 엄마를 시신에게서 떼어 내 멀리 있도록 장벽을 쳤다. 어디서 들어오는지 찬바람이 휭하고 불었다. 아침에 웃으며 잘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뽀뽀를 하고 직장으로 떠났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여보, 제발 눈 한 번 떠봐요. 강석이가 왔어요."

울면서 말하는 강석 엄마 눈에는 죽은 강석 아빠가 아들을 목마를 태우고 방안을 부자가 빙빙 돌던 모습이 눈에 어른 거렸다.

"아버지 일어나. 나왔어. 같이 놀자!"

강석이가 소리쳤다. 8살짜리가 죽은 아버지에게 하는 소리를 듣고 모두들 눈시울을 붉혔다. 강석이 친할아버지는 '꺼이꺼이' 하고 울었다.

저축은행 영업정지... 엄마는 또 다시 쓰러졌다

2012년 9월 26일 오전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한 캠퍼스 금융토크 행사장으로 올라가기 위해 부산대 본관으로 들어서자 금감원 직원들과 경찰이 달려와 막고있다.
 2012년 9월 26일 오전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한 캠퍼스 금융토크 행사장으로 올라가기 위해 부산대 본관으로 들어서자 금감원 직원들과 경찰이 달려와 막고있다.
ⓒ 정민규

관련사진보기


남편을 교통사고로 하늘 나라로 보낸 강석이 엄마는 매사가 귀찮고, 온몸이 굳어져 와 움직이기조차 힘이 들었다. 다니던 초등학교 교직도 사직하고 집에서 컴퓨터와 씨름을 하는 일로 일과를 보냈다. 골이 띵하고 아파오고 안구 건조증 때문에 눈을 뜨고 사물을 쳐다보기 힘들었다. 죄지은 것 같아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지고 생활이 무료해졌다. 밥짓기조차 싫어져서 외식을 자주 하게 되었다. 무기력감에서 벗어나려고 집안에 있는 손 때 묻은 가구들, 세탁기, 냉장고, 컴퓨터 복사기까지 새것으로 갈아봤다. 남편이 들어 있는 사진들은 모두 불태워 버렸다.

심리적인 불안이 원인일까? 죽은 남편의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에 아들을 데리고 가서 사진을 찍는데 셔터를 누르는 순간 멀쩡하던 카메라가 '지지직' 하고 방전되어 버렸다. 이마트에 가서 생필품을 사고 계산대에서 계산하는데 계산서에 '44,440'원이 찍혔다. 계산원도 놀라고 강석 엄마도 놀랐다. 강석 엄마 얼굴빛이 백지장이 되어 하얗게 질렸다.

강석 엄마는 친정아버지와 의논해서 장례 부조금과 남편의 퇴직금과 본인의 퇴직금을 모두 합쳐 에이스 저축은행에 5년 만기 정기예금을 했다. 에이스 저축은행, 이름도 예쁘고 시중 은행들보다도 더 잘 지은 으리으리한 건물에 위치도 인천에서 중심 요지인 시청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2011년 9월 30일 9시 30분. 이모할머니에게서 "에이스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됐다" 고 TV 뉴스에 떴다고 전화가 왔다. "이모할머니가 잘못 본 것이지?" 강석 엄마는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려 봤다.

'아니 이럴 수가!?'

컴퓨터 모니터에 '에이스 저축은행 영업정지 처분'이라는 핫뉴스가 활자로 또렷이 나왔다. 하늘이 빙그르르 돌았다. 하늘색도 노랗게 변했다. 두 번째로 실신해 쓰러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학교에서 돌아 온 강석이와 막내 강재가 울면서 엄마를 흔들고 있었다.

"엄마 일어나세요!"
"엄마 정신 차리세요."
"엄마 우리 보여요?"

소리치며 우는 것이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정신이 든 강석이 엄마는 2살 강재를 등에 업고, 8살 강석이는 뛰게 해서 시청 앞 에이스 저축은행으로 달려갔다. 평생 이렇게 빨리 뛰어 본 적은 없었다. 단숨에 달려 온 에이스 저축은행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정문에 매달려 문을 두드리는 사람, 발로 차는 사람 문을 두드리다 실신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문 안쪽 유리 창문에 '에이스 저축은행은 2011년 9월 13일 영업정지'라는 표시 문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아빠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고 말해! 알았지!"

강석이 엄마는 이게 현실인지 확인하려고 허벅지를 손으로 꼬집어 봤다. 땅바닥에 펄썩 주저앉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거나 땅바닥에 몸을 구르고 있었다. 경찰 1개 중대 병력이 와서 정문에 달라붙어 있는 사람들을 떼어냈다. 어떤 사람은 텐트를 가져와 쳐놓고 들어 앉아 있었다. "텐트는 왜 쳤느냐?"고 물었더니 "사장 놈을 만나 멱살을 잡고 돈 내놓으라고 하려고 기다린다"고 했다. 에이스 저축은행으로 달려 온 수천 명중에 갓난 아이를 업고 8살짜리를 걸려 달려온 사람은 강석이 엄마 혼자였다.

경찰에 이끌려 나오는 사람들은 발버둥을 쳤다. 모두 눈들이 뒤집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두 아들이 "엄마 무서워 집에 가자!"하고 엄마 손을 끌어 당겼다. 남편이 올라간 저 하늘에도 이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여보 당신이 계신 곳에도 별은 뜨겠지요?"
"당신이 없는 이곳은 정말 살아가기 힘듭니다. 같이 가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2살 강재가 "엄마! 아빠 어디 있어?" 하고 물었다. "아빠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어." 짐짓 웃으며 강석 엄마는 쓰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아냐! 아빠는 하늘나라에 갔어." 8살 강석이가 말했다. 강석이 엄마는 깜짝 놀라 "너 이리와!" 소리를 버럭 지르고 강석이를 데리고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눈을 부라리며 "아빠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고 말해! 알았지?" 하고 강석이 머리에 꿀밤을 한 방 쥐어박았다.

2살 강재는 무슨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 병이라고는 감기 한 번 앓지 않았던 강재다. 저녁이면 직장에서 돌아 온 강재 아빠가 아이들에게 목말을 태워주곤 했는데 요즘은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다른 방구석으로 가서 우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았다. 강재가 기침을 심하게 하더니 급성 폐렴이란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외할아버지가 병원 입원실로 찾아왔다. 외할아버지는 외손자들을 끔찍히 좋아해서 손자들만 보아도 허허하며 웃음을 얼굴에 달고 있었다. 링거를 꽂고 침대에 드러누어 있는 강재를 보기가 안타까웠다. 한참 "이것 뭐야? 저것 뭐야?"하는 놈이 할아버지에게 아빠 이야기를 할 때면 등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아빠에게 나하고 놀자고 말해줘, 미국에서 오라고 해!"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하면 흰 머리에 쥐가 났다. "그래, 아빠에게 강재가 보고 싶다고 말할게…." 다행히 강재는 30분 만에 회복되어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말을 잘 하고 웃었다. 강석이 엄마는 친정아버지를 불렀다.

"아빠! 치약, 칫솔, 세수 비누, 수건을 갖다 주세요"

1km떨어진 강재네 집에서 세면도구를 가져왔다.

"아차, 아빠 화장품을 갖다 주세요."

화장품을 가져오면,

"아빠 추워요. 잠바 가져 오시고 강재 잠바도 가져 오세요."

침착하고 매사를 조리 있게 처리하던 강석이 엄마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당황해 했다.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하여 시내에 있는 최요지 초등학교 선생으로 배정을 받은 딸이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정신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딸을 처음 보았다. 강재는 병원에서 링거를 꼽고 있으면서도 휠체어를 타고 할아버지와 병원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일이 즐거웠다.

할아버지는 강재를 병원 지하 마트에 데려가서 엄마 몰래 아이스크림을 사 먹이는 일이 제일 신났다. 행여나 강재 엄마와 마주칠까 지하층 구석으로 가서 외진 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게 했다. 휠체어는 자동차보다도 더 신나는 탈 것이었다. 할아버지로서는 강재가 웃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기분이 좋았다.

피켓 들고 조는 아줌마... "이러다 얼어 죽어요!"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2012년 9월 24일 오후 부산시 수영구 새누리당 부산시당 앞에서 저축은행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선후보의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하며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2012년 9월 24일 오후 부산시 수영구 새누리당 부산시당 앞에서 저축은행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선후보의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하며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코끝을 얼얼하게 얼리는 영하 20도, 입김이 허옇게 뿜어져 나오는 추위에 삭풍이 목과 옷소매 사이를 파고드는 겨울 국회의사당 앞. 수도권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 두 어린 아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맡기고 저축은행 피해자가 되어 시위에 나온 강석이 엄마는 점심 때 배낭에서 얼어버린 김밥을 꺼내 입에 넣고 녹여가면서 먹었다. 보온병에 더운 물을 담아와 마시곤 했다.

저축은행 예금자 피해보상
예금보험공사는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5000만 원 이하의 원리금에 대해서는 피해를 보상했지만, 5000만 원을 초과한 예금자나 후순위채보유자는 피해금액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이 기사에 등장한 강석 엄마는 5000만 원 이상 예금자, 다른 피해자들은 후순위채 보유자들이다. 
지하실 쪽방에 살면서 60원짜리 덧신을 손재봉틀로 만들어 팔아 만든 전 재산 1천만 원을 저축은행에 예금했다가 털린 60대 아줌마는 잘 보이지 않는 눈에 돋보기를 쓰고 후순위채 예금 통장을 보여 주고 울었다. 눈물을 자꾸 닦는 바람에 눈두덩이 밤알처럼 불거져 있었다.

다른 아줌마는 밤잠을 꼬박 새워가며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환자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환자의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며 하루 일당 5만 원씩 받았다. 그렇게 먹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고 모은 돈 전 재산을 저축은행에 예금했다가 날렸다. 이 아주머니는 밤잠을 자지 못해서 시위 중에 피켓을 들고 졸고 있었다. "아줌마 이 강추위에 졸면 얼어죽어요! 집에 가세요!" 말해주고 흔들어 깨워도 금방 또 졸고 있었다.

환경미화원으로 새벽 4시에 길거리로 나와 바닥을 쓸고 쓰레기를 주워 담으며 밤 11시까지 도로에서 일하는 70대 할아버지는 얼어 터져 수세미같이 된 손에서 진물이 흘렀다. 붕대를 감은 손으로 피켓을 들고 컥컥 소리를 목구멍에서 내면서 시위를 하는 환경미화원 할아버지는 2천여만 원 전 재산을 저축은행에 예금했다가 모두 잃었다. 

백혈병을 앓는 아들의 치료비 2천여만 원 전 재산을 저축은행에 예금했다가 '날강도'를 당한 60대 할아버지는 저축은행 시위가 쉬는 날에도 혼자 피켓을 목에 걸고 시위에 나선다. 애석하게도 아들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루 일당 5만 원을 받고 화장실 청소부터 세탁일을 하느라 걸레처럼 되어버린 손과 등허리가 굽어진 60대 할머니도 전 재산 1천만 원을 저축은행에 예금했다가 도둑맞았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생활은 거지꼴이여서 처참했다.

강석이 엄마는 저축은행 시위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두 아들이 "엄마도 미국으로 공부하러가려고 해? 집에서 나가지 마!"하고 엄마에게 매달려 온가족이 우는 일로 저녁을 맞는다.


태그:#저축은행 척살 비극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