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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째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누워있는 김상우씨의 어머니 김순옥씨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아들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있다.
 7년째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누워있는 김상우씨의 어머니 김순옥씨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아들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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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는 탕국을 좋아해서 김을 찢어 넣어주면 잘 먹었는데, 부침개도 잘 먹고…. 아들이 나아서 의식이 돌아오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지금은 전혀 먹지도 못하고 있으니 명절이 돌아와도 음식 만들기도 싫고 사는 게 재미가 없어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안전교육을 받던 도중 발작을 일으키며 갑자기 쓰러진 김상우(39)씨. 김씨의 병실을 7년째 지키는 어머니 김순옥씨는 명절이 돌아와도 기쁘지가 않다. 김상우씨가 회사의 무책임한 태도와 직원들의 위증 때문에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상우씨가 의식을 잃은 것은 2006년 10월 25일 인천에 있는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안전교육을 받던 중 갑작스런 간질 발작으로 쓰러지면서부터였다. 김씨는 서울 아산병원에서 '바이러스성 뇌염' 확진을 받고 9개월동안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야 했다. 이후 산소호흡기를 떼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의식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움직이거나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다.

김씨는 방위산업체를 제대한 직후인 1997년 12월 매그나칩반도체 청주공장에 입사해 반도체 생산용 가스공급장치의 유지보수 업무를 해왔다.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각종 가스를 제조공정까지 안전하게 공급하는 업무이다.

김씨는 9년 동안 근무하면서 성실성과 업무효율화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7월 회사로부터 상장을 받고 그해 10월에는 대리로 승진까지 했다. 하지만 같은 업무를 보던 상사가 그해 2월 회사를 그만두면서 김씨의 업무가 과중돼 항상 피로를 호소했다고 한다.

"당연히 산재 처리 될 줄 알았는데"... 대법원까지 갔지만 패소

바이러스성 뇌염으로 투병중인 김상우씨가 다니던 회사에서 받은 상장.
 바이러스성 뇌염으로 투병중인 김상우씨가 다니던 회사에서 받은 상장.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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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쓰러진 날도 감기증세를 보이고 몸이 아팠지만 안전교육을 받으러 갈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면서 받는 교육을 아프다는 이유로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씨는 안전교육을 받던 도중 고열과 발작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아들이 쓰러져 병원에 달려갔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이 가슴이 아팠어요. 처음에는 밥도 먹을 수 없어 며칠동안 밥을 굶었죠. 그랬더니 어지러워서 내가 죽을 지경이 되더라구요. 정신 차리고 밥을 먹으면서 '내가 죽을테니 아들을 살려달라'고 기도를 했죠."

어머니 김순옥씨는 아들이 의식을 잃고 병원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있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이내 아들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에 정신을 차렸다. 아들이 언제 정신이 돌아올지 몰라 24시간 아들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믿었죠. 당연히 산재처리가 될 줄 알고 아들 곁에서 병간호를 하면서 깨어나기를 기도했어요. 하루도 맘 편한 잠을 자지 못하고 울어보지 않은 날이 없어요."

김순옥씨는 아들 상우씨가 당연히 산업재해 판정을 받을 것이라 믿었다. 김순옥씨는 "열심히 일을 하고 모범사원으로 상장도 받고 진급도 했으니 당연히 산재로 인정받을 줄 알았다"며 "당연히 회사에서 협조해줄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그나칩반도체는 산재서류 양식에 있는 사업주 서명란에 서명을 거부했고 근로복지공단에서 날아온 소식은 불승인 통보였다.

결국 가족들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를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잇따라 패소하면서 산재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상우씨 가족들은 이후 2009년 10월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하고 대법원에서도 패소했다. 행정재판에서 졌기 때문에 민사재판은 더욱 승소하기 힘들었다.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상우씨가 보통 오후 8시 이전에 퇴근하고 오후 9시30분 이후에 퇴근한 날은 많지 않아 업무가 과중하지 않았고 2006년 9월 업무분장으로 오히려 근무조건이 경감되었다고 판단했다. 또 주로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가스공급실에는 간헐적으로 나가 보수업무를 보조하고 유해가스에 노출되지 않아 '바이러스성 뇌염에 걸릴 정도로 과로했거나 유해환경에 노출되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가족들 "부서 상사가 위증"... 회사 "판결문 외에 할 말 없다"

대구의 한 병원에 입원해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김상우씨. 간호사가 물을 먹이고 있다.
 대구의 한 병원에 입원해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김상우씨. 간호사가 물을 먹이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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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은 그러나 패소한 이유가 상우씨가  의식이 분명하지 못한 상태여서 진술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사업주가 거짓 서류를 제출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또 상사가 위증을 했다고 주장한다.

민사소송을 제기한 후 퇴직한 동료들이 나서 상우씨가 뇌염 발병 전 수 개월간 초과근무를 지속하면서 과로에 시달렸고 독성가스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한 작업을 수행했다는 증언을 해주기도 했다. 퇴직한 동료들의 진술서와 녹취록 등을 법원에 제출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우씨의 형 김인수씨는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회사측은 업무범위를 축소해 진술했고 업무분장을 통해 일이 경감되었다고 거짓말했다"며 "당시에는 우리가 몰랐고 증인이 없어 더욱 이기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상우씨의 어머니는 "상우가 매일 오후 8시나 9시 30분 넘어 퇴근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지만 회사가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는 매일 오후 5시 30분에 퇴근한 것으로 나와 있다"며 "출퇴근 시간을 조작해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상우씨의 형 김인수씨도 "전자출퇴근 자료가 있는데 행정심판 하면서 3번이나 요구했지만 회사는 단 한 번도 내놓지 않고 협조도 해주지 않았다"면서 "우리 가족들을 만나주지도 않았다"고 분개했다.

상우씨 가족들은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에서 모두 패소한 것이 상우씨와 같이 근무했던 부서의 상사가 위증을 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상우씨 가족들은 올해 2월 상우씨의 상사를 위증죄로 경찰에 고소했다. 위증죄가 밝혀지면 산재 관련 재판을 다시 해서 재심을 통해 산재로 인정받을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매그나칩반도체측은 이미 대법원에서 판결이 난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상우씨의 가족들이 요구한 출퇴근 기록 원본은 3년이 지나 자료 자체가 없고 2008년 법정다툼 당시에는 법원에서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그나칩반도체 총무과 관계자는 "총무팀이 가지고 있는 자료는 산업보안과 관련된 자료이지 직원들의 근태관련 자료는 아니다"며 "이미 3년이 지난 자료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분장과 관련해서도 "당시 그 자리에 있지 않아서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판결문 이외에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마음 놓고 치료라도 받을 수 있었으면..."

대구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상우씨가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대구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상우씨가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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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어머니 김순옥씨는 "산재에서 진 후 아들이 찍은 사진을 들고 직장 동료들을 찾아다녔는데 아무도 제대로 진술을 해주지 않았다"며 "회사를 그만둔 동료들이 진실을 말했지만 법원에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할 때 청와대에 민원을 넣기도 하고 국민권익위원회에 호소하기도 했는데 재판중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답변도 해주지 않았어요. 결국 재판에서 지니까 빚만 2억 원이 넘더라구요. 상우 아버지도 허리디스크 수술하고 나도 어깨와 손목에 디스크가 와서 살 길이 막막해요. 우리 부부가 둘 다 나이가 70이 넘어 어디서 돈을 벌 수도 없고…."

상우씨가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어머니와 아버지는 병원 인근에 있는 찜질방에서 생활하며 병간호를 했다. 하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 고향인 대구로 병원을 옮겼다. 서울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1억 원의 빚을 졌고 대구에 내려와서도 1억 원이 넘는 빚이 더 늘어났다. 치료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가족들은 상우씨를 서울아산병원에서 대구동산병원으로 옮겼다. 이후 파티마병원으로 옮겼다가 다시 여러 병원을 옮겨다녀야 했다. 산재가 인정되지 않아 의료보험으로 치료를 받아왔는데 병원에서는 오랫동안 입원해 있는 것을 싫어했다. 지난 7월부터는 대구시 북구에 있는 '강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어머니 김순옥씨는 "병원에서 자꾸 옮기라 해서 어쩔 수 없이 옮겨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다"며 "지금 이 병원에서도 얼마동안 입원해 있을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한 병원에서 마음 편히 치료를 받고 다시 일어나기만 바라지만 병원의 사정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추석도 상우씨의 가족들은 우울한 명절을 보냈다. 병실에서 상우씨의 손을 꼭 붙잡고 앉아 있는 어머니의 눈가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아들의 의식이 돌아와서 벌떡 일어나 "어머니"하고 부를 것만 같아 옆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상우가 인천에서 쓰러진 이후로 집에 단 한 번도 데리고 가지 못했어요. 회사에 대해서는 원망이 많지만 진실이라도 밝혀지고 산재 승인이 나면 좋겠어요. 그래야 치료라도 마음놓고 받을 수 있을테니까요. 명절이라고 해도 기쁘지 않아요. 제발 우리 아들 나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태그:#김상우, #매그나칩 반도체, #산업재해,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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