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던 후배 K가 있었다. 안 지는 몇 년 안 되었지만 만났다 하면 몇 시간이나 인생 철학이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한 터라 나는 꽤 K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했다.

나는 "너는 직접 세상을 읽어내는 것을 신뢰하기에 세상과 쉽게 타협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소 조금 거칠다"라든지, "호기심이 많아서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사건이나 풍경에도 늘 '왜?'라고 물어서 가끔은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라고 답해 준다. 그러면 K는 "맞아, 맞아요. 어떻게 그렇게 잘 맞추나요?"라고 반색한다. 하지만 K를 알아온 시간 만큼 수년 더 K를 살핀다 한들 내가 K에 대해 완벽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홍상수 감독의 영화 <우리 선희>는 '충고'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 타인에 대한 평가를 참 쉽게도 내뱉어 버리는 우리네 관계맺음에 제동을 건다.

 최 교수가 선희에게 추천서를 주는 장면.

최 교수가 선희에게 추천서를 주는 장면. ⓒ 전원사


솔직한 것은 참 어렵다. 선희(정유미)는 재학시절 자신을 예뻐한 최 교수(김상중)에게 해외대학원 추천서를 부탁한다. 그런데 참 솔직한 최 교수는 선희에 대한 생각을 느끼는 대로 가감없이 표출한 추천서를 써서 건넨다. 선희는 그것을 읽어 내려가다 "내성적이며 자기 표현을 못한다, 남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에  힘들어할 듯 보인다"라는 글귀에 그만 덜컹거린다. 그리고는 최 교수에게 왜 "쌀쌀맞게" 그러냐며 추천서를 다시 써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자, 되레 "네가 그동안 쌀쌀맞지 않았느냐"며 묵혔던 감정을 끄집어 내는 최 교수. 순간 전 남친 문수(이선균)와 선희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문수는 그녀에게 "너는 내 인생의 화두"라며 "나의 모든 영화는 너에 대한 것"이라며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생각할 즈음 문수는 선희에게 "우린 왜 헤어진 거냐"라는 질문을 토해내고 그녀는 그의 질문을 회피한다.

그럼 최 교수에게는? 선희는 최 교수가 "평생 네 편이 되어 줄게"라며 대화의 깊이를 더해갈 때까지 그의 종알거림을 받아 준다. 덕분에 최 교수는 선희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으로 단정내리고 혼자 들떠 버린다.

  최 교수와 문수, 재학이 창경궁에 모이게 되는 장면.

최 교수와 문수, 재학이 창경궁에 모이게 되는 장면. ⓒ 전원사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에 있다.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염두에 두고 앞서 이야기를 짠 듯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최 교수는 수정한 추천서를 주기 위해 선희를 창경궁으로 불러들이는데, 그곳에서 그녀와 과거에 관계를 맺은 문수와 재학(정재영) 역시 한데 모인다.

남자들은 창경궁에 모여 "선희는 착해. 내성적이긴 하지만 머리가 좋고 안목도 있어. 뭐 또라이 같기도 하지만 용감하기도 하지"라고 이야기한다. 처음에 최 교수가 선희에게 준 추천서에 들어 있던 그 말들은 돌고 돌아서 공중에 흩뿌려진다. 그 자리에 주인공인 선희는 없다. 그들만의 연애행각(?)을 들킬까봐 최 교수가 선희를 피신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 첫 번째 추천서에서 최 교수가 선희에 대해 올바르게 평가한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선희가 건넨 호의를 사랑이라고 착각한 최 교수의 태도를 보면 말이다. 그녀는 그저 추천서를 받아내기 위해 말동무를 해준 것에 불과하다.

평가를 즐겨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나는 너를 꿰뚫어본다"는 아집으로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려 든다는 것이다. '나도 나를 제대로 모르는데' 누군가 나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감독은 <우리 선희>를 통해 넌지시 알려준다. 홍상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파악했다고 주장하는 본질이란 것도 실제로 살면서 보면 별로 핵심도 본질도 아닌 거 같고요. 우린 그냥 그 단순 명료한 말이 좋아서 믿고 싶어하고, 밀어 나가는 꼴"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전히 세 남자는 선희를 정의내리면서 그녀를 안다고 자신들의 뮤즈라고 착각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는 어떨 것이다'라고 정의내리고 나서 그 사람에게서 조금씩 다른 면이 나오면 그러한 모습을 왜곡하거나 질려할 수 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온전한 면을 찾아가는 작업을 즐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 sns에도 올려놓았습니다.
홍상수 우리 선희 정유미 이선균 김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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