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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사정으로 여름휴가를 못 가고 바로 가을로 넘어왔다. 강렬한 폭염에 시달리기보다는 남보다 차가운 몸으로 냉방병에 시달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도 매주 병원에 안 가면 못 살게 되는 허약한 체질인 것은 십대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환절기나 간절기 때마다 코피를 흘리고 결석했던 나였고 그때는 엄마가 꼬박꼬박 챙겨서 달여 주는 약초를 먹고 무사히 병원에 한 번 안가고 지나다가 결혼을 했던 것 같다.

더 이상 물이 차오르면 무거워 찢어질 것 같은 연잎처럼 위태로운 어느 날이었다. 연차휴가를 활용해서 좀 쉬기로 했다.

시집간 딸에게 요즘 개봉한 영화 <관상>을 조조예매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아침에 나이가 지긋한 중년 여인이 혼자 영화관을 찾는 풍경이 허허해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같이 가자고 했다. 한국영화를 전혀 보지 않는 아이가 같이 간다고 한 것은 나는 유유자적이지만, 그 아이가 보기에는 쓸쓸인 것인 모양이다.

영화 <관상> 한장면.
 영화 <관상> 한장면.
ⓒ 영화 <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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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앓았던 병으로 잘 듣지 못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영화 보기에 푸욱 빠진 나였다. 텔레비전에서는 참 다정하고 젠틀하게 나오는 배우 조정석이 촐싹거리며 나오는 첫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의 관상에 대한 풀이는 미리 영화 보기 전에 홍보동영상의 자막을 통해 읽었고 시대의 역사적 배경도 미리 한 번 더 찾아보고 갔다.

배우 송강호가 진짜 그 시대의 사람처럼 실감나게 늘어지게 누웠다가 앉았다하면서 연기한다. 눈이 참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양 눈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서로 다르게 움직이면서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한 눈에 확 들어오는 시간이 흐를수록 확실한 미인임을 느끼게 주는 배우 김혜수와 시종일관 웃음이 자아나는 배우 조정석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그러나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 생겼다. 갑자기 아이가 폰을 내게 보여주었다.

"엄마! 저기 등장하는 사람이 한명회래."

대사를 못 들어도 갑자기 등장하는 인물이 누군지, 저 사람이 왜 자주 등장하는지 잘 몰랐는데 아이는 이미 내 궁금증을 간파했던 모양이다. 아이는 중요 전환점마다 스마트폰의 메모 창을 활용해서 꼭 알아야 할 내용을 메모로 알려주었다.

명분 없이 한 시대를 뒤엎은 수양대군의 폭정과 단종의 극적인 비극은 관상쟁이 송강호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로 가리워 졌다. 그러나 얼마나 실감났는지 역사를 잘 모르는 아이가 메시지를 남겼다.

"엄마! 저거 실화야? 강약과 오름과 내림의 적절함이 계속 몰입하게 만들어서 신랑과 다시 한 번 보러 와야겠네."
"역사의 흐름은 실화고 미시적인 사건들은 픽션이 많아! 정신 산만한 외국마술영화보다 나는 이 영화가 훨씬 낫네."

청각장애인의 가족들과 지인들이 꼭 수화를 알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입모양과 눈빛으로 그리고 손바닥에 써주거나 폰을 활용하여 하루의 모든 일상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영화도 이제는 관객 천만 명을 웃돌고 흑자가 수백억 원이라는 영화가 됐다고 매스컴을 통해 자랑한다.

내가 알아보니 자막을 넣는 것은 꼭 자금문제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주변의 인적 자원을 활용해서 자원봉사로 넣을 수도 있단다. 실제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충북여성영화제에서는 그렇게 자막을 넣고 있다. 점점 한국 영화의 질은 향상되고 있다. 외화만 골라보고 한국영화를 무조건 보지 않던 우리 딸도 이번 계기로 한국영화 종종보기로 했다.

이제 한국영화 제작업자들도 그 수익을 한국영화에 자막 넣기로 사회공헌하면 좋겠다. 공헌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200만 명의 청각장애인들이 얼마나 한국영화를 열심히 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묵향' 뜨락으로 와서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붓을 잡고 집중할 수 있었다. 문득 하늘을 보니 흐리던 가을 하늘이 말갛게 개이고 있다. 그리고 하늘이 점점 높아져간다. 수상과 관상은 심상에 따라 변한다는 어떤 이의 말의 생각난다. 먹을 갈면서 내 마음 안의 부정적인 것도 먹물에 섞어서 갈아 없애며 문득  한용운님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린다.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정(精)하늘을 따를 소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한(限)바다만 못 하리라

관상에 나왔던 단종과 인목대비의 한바다는 얼마나 깊었을까? 나라의 근간을 위해 가족을 살해했던 태조와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가족을 살해한 세조는 너무나 다른데도 같다고 생각한 세조의 진짜 관상과 심상은 어떠했을까?


태그:#청각장애인식개선, #조조영화, #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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