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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아래 교학사 역사교과서)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MB(이명박) 정부 당시 8.15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야 한다는 뉴라이트 세력의 얼토당토 않은 주장들이 그냥 그렇게 묻히는가 싶더니,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서는 더 심각한 모습으로 역사 왜곡이 시도되고 있다. 정권의 홍위병을 자처한 이들이 아예 역사교과서를 바꾸자고 나선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역사 전쟁'은 박근혜 정부의 탄생과 함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견했던 일이었다.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집권을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추인으로 인식했던 바,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수립되어 온 역사관을 그들의 구미에 맞게 수정하는 것이 필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수준이다. 어쨌든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역사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논증이 필요한 법인데, 이번 교학사 역사교과서 사태는 그들의 수준이 처참하다 못해 한심한 수준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대신 그들은 이와 같은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또다시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 모임에서 교학사 역사교과서 집필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이 모든 것이 좌파의 음모'라는 식으로 운운한 것이 대표적 예다. 그것은 결국 그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상식의 문제를 정파적인 해석의 문제로 끌고 가겠다고 한 것을 의미한다.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위험한 교과서"  

지난 10일 오후 역사 4단체 소속 학자들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오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이 한국역사연구회 하일식 회장.
 지난 10일 오후 역사 4단체 소속 학자들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오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이 한국역사연구회 하일식 회장.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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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현재 이와 관련하여 가장 바쁜 곳은 국내 역사학계이다. 사실의 문제를 가치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속에서, 어쨌든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은 다름아닌 학자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일에는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등 4개 단체가 교학사 역사교과서 속에 잘못 기술된 사항이 최소 298군데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검정취소를 요구했다. 그러나 교과부는 틀린 내용 수정을 통해 검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현재 국내 역사학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교수, 강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역사연구학회 회장 하일식 연세대 교수를 지난 12일 만났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들은 자꾸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을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나, 정쟁으로 몰고 가려 하지만 그것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다. 우리가 볼 때는 객관적으로 상식과 몰상식, 보편적 휴머니즘 가치관의 문제다. 그런 지점에서 우리는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위험한 교과서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는 교과서라는 존재 자체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어쨌든 그 사회의 합의된 최소한의 사실을 싣는 것이 교과서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 등을 거쳐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이런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는커녕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 마저도 제대로 표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유리한 가치를 교과서에 싣기 위해 특정 사실만을 선택하고, 너무 많은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친일 미화와 독재 찬양이 그 바탕에 너무 진하게 깔려있다. 그것을 위한 사실의 선택, 그리고 그로 인해서 버려지는 많은 사실. 예컨대 교과서에서 이승만은 거의 위인전 수준으로 묘사돼 있고, 안창호는 교과서 본문에 한 군데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자료와 기타 내용에만 언급) 단재 신채호는 이승만과 트러블을 많이 일으켰으니까 이 사람의 주장이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냐며 혐오감을 조장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들이 식민지근대화론을 넘어 아예 일본의 시각으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본다는 사실이었다고 하 교수는 지적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은 일본 교과서보다 더 친일적으로 서술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보통 다른 역사교과서들은 연합군의 입장에서 원자탄을 투하했다고 표현하는데 이 교과서에서만 유독 '피격'으로 나왔다. 피격은 일본인들이 태평양전쟁의 전범이면서도 원폭의 피해자라는 의미로 쓰는 단어다. 일본 교과서를 베낀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하 교수는 "역사교과서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담아서 균형 있게 서술되어야만 학생들이 이를 통해 올바른 사회관과 역사의식, 사회정의를 배울 수 있고, 마지막으로 잘 다듬어진 문장을 통해 국어공부까지 할 수 있다"면서 "이번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과연 그들이 교과서를 집필할 수 있는 역랑 자체를 갖췄는지 회의가 들게 한다"고 총평했다.

"이승만 위인전 수준으로 묘사... 이건 교과서가 아니야"

다음은 하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교과서를 처음 본 소감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우선 놀라웠다. 여름에 문제 있는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검정과정의 절차와 규범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그래도 교과서로 나오면 좀 가지런한 내용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좀 위험한 이야기가 들어있을 수도 있지만 검정과정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평소에 그들이 강조하고 선전하던 이야기들이 거의 안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교과서 검정과정을 거치면 필자들도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평범한 교과서처럼 나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실제로 읽어보니까 검정을 거쳤는데도 정말로 굉장히 놀라운 내용과 서술 문장들이 담겨 있더라. 요약하자면 친일미화와 독재찬양이 그 바탕에 너무 진하게 깔려있었다. 그것을 위한 사실의 선택, 그리고 그로 인해서 버려지는 많은 사실. 예컨대 이승만은 거의 위인전처럼 묘사되어 있고, 안창호는 본문에 한 군데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자료와 기타 내용에만 언급) 단재 신채호는 이승만과 트러블을 많이 일으켰으니까 이 사람의 주장이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냐며 혐오감을 조장하더라."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연세대 사학과 교수) (자료사진)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연세대 사학과 교수) (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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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로서 채택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는 이야기인가?
"이건 교과서가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넓게 봐도 국민 상식이 허용하는 범위가 있는 건데, 더군다나 무수한 사실 관계 오류와 무지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교과서는 교과서다워야 한다. 우리가 흔히 농담처럼 이야기 해놓고서도 친구에게 '야 인마 그거 교과서에 나와' 하는, 그게 바로 교과서다. 권위와 정확성을 가질 수 있는. 

특히 근현대사는 아주 일관되어 있었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을 미화하고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 그만한 성과가 있어야 한다.  교과서라면 최소한 서술의 균형성을 갖춰야 된다. 교과서를 쓴 사람들이 이야기 하듯이 공과 과를 함께 평가하자고 한다면 교과서에도 그 둘이 균형 있게 서술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른바 그들의 과라고 하는 친일 행위는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왜곡시키고 덮고, 예찬하고 있고, 이걸로 도배되어 있다.

현대사에 들어와서는 거의 이승만 위인전 수준이었다. 교과서와 위인전을 구분하지 못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교묘하게 자료를 편집해서 왜곡한 부분들도 많다. 예를 들면 다른 교과서들과 달리 5·16을 미화하기 위해서 쿠데타 군이 내건 혁명공약 6가지 항목 중 끝의 항목을 뺐다. 언제까지 민정 이양 하겠다 하는 내용이었는데 지켜지지 않았다. 나중에 그걸 빼고 억지로 수정 공약을 내놓았다.

이건 왜곡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우리 같은 역사단체, 전문연구학회 이런 쪽은 역사교육을 전공하는 곳이 아닌데도 발언해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나를 비롯해서 많은 이들이 동감하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친일반민족 행위를 옹호하고 그들의 공이 더 크다고 주장하고, 독재자를 옹호하고, 그가 경제발전을 일으킨 덕분에 이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그건 개인의 생각으로 민주사회에서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건데, 학생을 가르치는 그것도 국민 세금으로 대부분 운영되는 공교육의 현장에는 이런 책이 발 디딜 틈을 얻어서는 안 된다. 그 위기감이 컸다. 학자들 양심이기도 하고. 역사교과서가 대부분 지루하고 암기하는 것 많다고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역사교과서라는 것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담아야 하고, 균형있게 서술되어야 하고, 그 책을 읽음으로써 학생들이 올바른 사회관, 역사의식, 사회정의에 대해서도 역사로부터 균형을 얻음으로써 정의가 무엇인지 배워야 되고, 마지막으로 잘 다듬어진 문장을 통해서 국어공부까지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공교육에서 교육되는 가치는 국민이 허용하는 건전성, 민주, 복지 추구하면서 사회적 가치, 보편적 휴머니즘을 터득하고 나라를 이끌어야하는 예비주체를 키우는 것인데 공교육 시장에서 지금처럼 잘못된 내용으로 공부해서는 안 된다. 독일의 경우 나치 전범은 아직도 색출하고 정확하게 교육 시킨다. 그런데 이들은 친일자의 공적을 적어놓고 이들에게 줄 상을 생각해보자고 하니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교과서는 원칙적으로 보수적이어야 한다"

교학사 교과서 표지.
 교학사 교과서 표지.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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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기존 교과서가 좌편향 되었다고 이야기 하는데.

"집필자들이 기존의 교과서를 엄청 공격했는데 교과서는 좌편향 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수천 수만 편의 논문 책자를 보고 학계의 인정을 받고 교과서를 쓰는데 그 모든 사람들이 좌편향적인가? 기존 교과서에 불만이 있다고 스탈린-김일성-박헌영식 사관이라는 투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 교과서는 원칙적으로 보수적이어야 한다. 학설을 금방금방 반영하면 안 된다. 1990년대 초에는 통일신라 정치사를 서술할 때 신라에 전제왕권이 성립되었다고 했는데 1990년대 중반에는 논쟁이 있었다.

결국 통일신라는 전제왕권이 아니라는 공감대를 얻었고, 2010년 중학교 교과서에서 그 내용이 사라졌다. 보통 10년에서 15년 정도 지나야만 수정된다. 그런데 새로운 논리라고 금방 싣는다니 말이 되는가. 수천, 수만편의 논문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온국민에게 선동한다고 그런 교과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 교학사 역사교과서 문제를 일부에서는 좌와 우의 대립으로 몰고 있다. 어떻게 보나?
"그들은 자꾸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을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나, 정쟁으로 몰고 가려 하지만 그것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다. 우리가 볼 때는 객관적으로 상식과 몰상식, 보편적 휴머니즘 가치관의 문제다. 그런 지점에서 우리는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위험한 교과서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일본 후소샤 위험한 교과서와 같은 의미이다.

더 큰 문제는 일본 교과서보다 더 친일적으로 서술되었다는 데 있다.  예컨대 보통 다른 역사교과서들은 연합군의 입장에서 원자탄을 투하했다고 표현하는데 이 교과서에서만 유독 '피격'으로 나왔다. 피격은 일본인들이 태평양전쟁의 전범이면서도 원폭의 피해자라는 의미로 쓰는 단어다. 일본 교과서를 베낀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 아마도 박근혜 정부 내내 이와 같은 시도는 계속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책은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응이 난감하다. 지식인으로서 일일이 대응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가 지금 단계에서 가장 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국가가 역사 연구에 간섭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학문의 영역이다. 행정의 영역이 아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그게 낫지 않을까 싶다. 학문적 교과서는 하나의 결과물이다. 국가가 많이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국가가 간섭하고 끼어드는건 국가를 망치는 일이다. 왜곡하면 일본의 역사왜곡을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 1년 임기인 한국역사연구학회 회장을 하필 이 때 맡으셨다. 게다가 전공은 고대사인데. 어려운 부분은 없으신가?
"내가 고대사를 전공하니까 사람들이 그나마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무색무취한 고대사 아닌가. 그런데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이런 고대사도 제대로 서술하지 못한 부분이  많으니까 그들의 집필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 듣기로는 교학사 편집을 거치기 전 초안은 더 가관이었다고 하더라."

- 이번 역사교과서 논쟁은 동북아 우경화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실제로 우경화 분위기가 있다. 일본도, 한국도 그렇고 중국 역시 국가주의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는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우경화가 더 심해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사회학적으로 역사적으로도 분석 가능하다. 이는 결국 심각한 빈부격차 때문인데, 한국의 경우 1970~1980년대 외부의 적이었던 북한을 통해 사회불안을 호도했다면, 이젠 사람들이 북한의 현실을 다 알자 내부의 적을 창출하고 있는 형편이다. 종북세력도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

-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정원 사태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가?
"그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말자. 그러면 또 색깔론을 뒤집어 씌어 역사교과서 물타기 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중요한 것은 위험한 역사교과서 출판을 막는 일이다."


태그:#역사교과서, #교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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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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