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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건조실의 작가 신재흥 화백이 자신의 화실에서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담배건조실의 작가 신재흥 화백이 자신의 화실에서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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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기어다니는 어스름한 저녁. 1차선 도로와 인접한 조그만 단층 짜리 건물 외벽에 검은색의 '신재흥 ART STUDIO'란 큼지막한 글씨가 눈길을 잡아끈다. 이곳이 '담배건조실'과 '다작(多作)' 작가로 이름이 알려진 신재흥(55) 화백의 화실이다.

이 화실은 6.25 전쟁 당시 국군의 최초 승전 지인 충북 음성군 무극전적국민관광지를 지나 37번 국도를 따라 금왕 방면으로 1.4km 정도를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1차선 도로와 붙어 있다. 예전에 이동통신사 기지국으로 쓰이던 건물을 고쳐 화실로 사용 중이다.

작은 마당에는 바퀴가 진흙으로 싸인 흰색 레저용차량(RV) 차량이 서 있고 건물 입구에는 '화실'이란 두 글씨가 새겨진 손바닥만 한 문패가 앙증맞게 걸려 있다. 건물로 들어서자 10여 평 남짓한 건물 벽면에는 100여 점이 이르는 그림이 빼곡히 걸려 작은 갤러리를 방불케 했다.

그와의 만남은 행운이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초청을 받아 며칠씩 출장을 다니고, 하루에 1점 이상 그림을 그릴 정도로 다작하는 작가의 특성상 매일 사생(어떠한 풍경이나 실물을 있는 그대로 그림)을 나가기 때문에 약속을 잡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 화백과 지난 4일 작은 원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별볼일없는 화가를 찾아줘서 감사하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헐렁한 청바지와 물감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티셔츠, 모자를 눌러썼고 회색 등산화를 신었다. 5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다. 15년 동안 1500여 점의 작품을 출산한 흔적은 그의 검게 그은 얼굴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서울 토박이 가난한 예술가의 시골 살이

신재흥 화백이 사생을 나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2012.10.04.)
 신재흥 화백이 사생을 나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2012.10.04.)
ⓒ 신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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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토박이인 신 화백이 충북 음성에 정착한 건 17년 전인 1996년 가을이다. 당시 전국 곳곳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는데, 어디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국토의 중심이란 점이 끌렸다. 특히 담배건조실이 있는 아기자기한 시골 풍경과 아름다운 경치가 그를 매료시켰다.

실제로 충북 음성군은 1960년대부터 고추와 담배의 주산지였으며, 음성군 생극면 생리는 전래동요 '고추 먹고 맴맴'(윤석중 작사·박태준 작곡)의 배경이 되는 마을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담배건조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담배 주산지였던 만큼 건조실이 꽤 남아 있다.

신 화백은 시골 행을 결심하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시골로 왔다. 생활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도시와 달리 친인척 등 가족개념으로 엮인 사회에 스미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공통분모도 없었다. 이런 문제는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해결됐지만, 근본적으로 가족을 힘들게 했던 건 '가난'이었다.

"시골 정취를 물씬 느끼며 그림을 그리겠다는 환상과 욕망을 가지고 내려왔지만 맞닥뜨린 현실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편차가 컸어요. 주민 사이로 스미는 것도 힘들었지만, 가난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어요. 얼마나 가난했는지 마을에서 가장 가난하게 사시는 분이 불쌍하다며 우릴 도와줄 정도였으니까요."

아내는 건강이 좋지 않아 일할 수 없었고 그림이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작품 활동을 위해 최소한의 생활비만 지출했다. 옷이며 신발은 사본 기억이 없고 오직 먹을거리, 그것도 최소한만 구매했다. 그때 생활이 몸에 배 지금도 옷이며, 모자, 신발까지도 지인들이 가져다준 것을 이용한다.

가난한 화가는 최고가 되고 싶었다. 그는 수많은 작가와 차별화 전략으로 다작의 길을 택하고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부모님 집에도 거의 가지 않았다. 명절에도 얼굴만 비치고 내려와 그림을 그릴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 지난 15년 동안 15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3.6일마다 1점의 그림을 완성해낸 셈이다.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을 깨듯 찢고 불태운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담배건조실에 꽂히다

신재흥 화백 작품. '담배건조실'.
 신재흥 화백 작품. '담배건조실'.
ⓒ 신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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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화백은 유화 기법을 이용해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초창기만 해도 담배건조실은 이 풍경화 속 하나의 소품에 불과했다.

"서울 살 때는 담배건조실이 있는지조차 몰랐어요. 시골 내려와 그림을 그리면서도 시골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만 인식했지 구체적으로 뭘 하는 곳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마을 어귀나 논배미에서 화구를 펼치고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어르신들이 다가와 말을 건네요. 가벼운 인사에서 출발한 대화가 자식들 키우며 살아온 얘기, 고추보다 매웠던 시집살이를 비롯해 가슴에 담아 뒀던 희로애락을 꺼내 놓으십니다.

어르신들은 그림 속 소품 중에서도 담배건조실에 대한 추억을 모두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어릴 때 밤새 담뱃잎을 꼬이던 기억, 사랑을 키웠던 추억, 건조실을 지을 때 힘들었던 얘기며, 힘들게 담배농사 지어서 아이들 공부시켰던 얘기, 외국산 담배가 들어오면서 농사를 접어야 했던 아픈 흔적들을 들춰내곤 하십니다. 이곳 어르신들에겐 황토 흙으로 지어진 높은 건물 이기에 앞서 추억이 담긴 소중한 보물상자처럼 느껴졌어요."

신 화백은 어른들의 얘기를 들으며 담배건조실이 시골 정서가 깊이 배인 특별한 곳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의 조형미나 황토색이 주는 색감도 매력적인 소재였다. 단순한 풍경화에서 이야기가 곁들여지자 그의 그림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흙내음과 시골 향수에 목말라 있던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의 그림이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전시 요청이 쇄도했다. 서울 예술의전당을 비롯해 공평아트센터, 인사동 라메르갤러리, 청주 예술의전당 등에서 개인전만 37회를 했다. 또 코리아 아트페스티벌, 월드컵기념 아름다운 세계전, 한국 이민 100주년기념 뉴욕 워싱턴 초대전, 한국미술전, 중국 서안미술관 초대전, 현대미술작가연합회전 등에 그의 그림이 걸렸다. 2011년에 그랑프리대상 초대작가상을 받았고, 2002년에는 충북 우수예술인상을 받기도 했다.

든든한 최고의 후원자, 아내는 곁에 없다

신재흥 화백이 아내가 점심으로 건네 준 컵라면을 먹고 있다. 16년 전 봄에 촬영된 사진이다.
 신재흥 화백이 아내가 점심으로 건네 준 컵라면을 먹고 있다. 16년 전 봄에 촬영된 사진이다.
ⓒ 신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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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얘기를 꺼내자 화백은 어느새 눈두덩이 불거졌고, 목이 잠겨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애써 감추려 했지만, 9년 전 사별한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미안한 감정이 얼마나 큰지 흔들리는 눈빛과 목소리의 떨림이 대신 말해줬다. 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감정의 시곗바늘은 그 당시에서 정지한 듯했다.

"아내는 언제 그림이 팔려 생활이 나아질지 모르는 생활을 하면서도 남편이 괜찮은 화가가 될 거란 믿음을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 여인이고, 진정성을 가지고 내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준 최고의 후원자였습니다.

그림 그리는데 재료비를 하루에 수만 원씩 쓰면서도 쌀이 떨어져 몸이 좋지 않은 아내가 8km를 걸어가서 쌀을 꿔 오곤 했는데, 그럴 때면 '이게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제정신이 아닐지 몰라요(웃음). 아내는 돈 때문에 바가지를 긁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신 화백은 음식이 모두 떨어지기 전까지 시장에 가지 않는다. 시장에서 물건 구매를 망설였을 아내가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면 식재료나 생활필수품을 만지작거리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몇 번이고 고민하다 결국 포기하고 쌀 한 되박을 손에 들고 돌아와야만 했던 아내 생각에 잘 안간다"고 했다.

그는 생활고로 힘들었지만, 상업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아내의 바람도 그랬고,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난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이를 '선택한 가난'이라고 했다. 그는 "상업 그림 그려달라는 유혹이 많았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뿌리칠 수 있었다"며 "좋은 그림을 향한 노력을 게을리해본 일이 없다"고 회상했다.

아내는 새 옷을 입어 본 일이 없다. 동생들이 준 화사한 옷이 있었지만 가난한 화가의 아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지 않았다. 늘 헐렁한 남방에 청바지 차림이 전부였다. 신 화백은 "아내가 미인인데다 옷을 갖춰 입으면 화사해 보였다"며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에 대한 아픔이 크다"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 "지금 난 살아 있고 아내는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고마운 사람들 살아 있는 것에 감사

신재흥 화백 작품. '농촌의 일상'.
 신재흥 화백 작품. '농촌의 일상'.
ⓒ 신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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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화백은 요즘 '농촌의 일상'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우리가 농촌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해질 무렵 수확한 곡식을 농기계에 넣고 돌을 골라내는 노부부, 힘든 밭일 마치고 지팡이에 의지해 집으로 돌아오는 할머니, 생계를 위해 폐지를 수집하는 할아버지, 담벼락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황소,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노부부의 모습 등 다양하다. 그림에는 주인공의 앞면보다 뒷모습이 많다. 어르신들의 뒷모습에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다.

사생을 다니다 보면 '그림 그리는데 수고가 많다'며 만두와 음료를 내주는 훈훈한 정과 만나는가 하면, 가슴 아픈 상황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대문 밖에 쪼그리고 앉아 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며 마을 입구를 응시하는 할아버지와 만나고, 그림 속 할머니가 신었던 고무신이 주인을 잃고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 마루 밑에 덩그러니 놓인 광경을 목도하기도 한다.

신재흥 화백이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신재흥 화백이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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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화백은 '열심히 할 때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신념을 지녔다. 지금 가장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한다고 했다.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할 때 도와준 사람들에게 덜 미안하다"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작품에 모든 에너지를 불어 넣을 계획이며, 가치 있는 작품을 남겨 문화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림을 사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했다. "그림이 좋아서 사는 경우도 있지만, 작가의 작품 활동을 돕기 위해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며 "작가들이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가 된다"고 했다. 이어 "자리를 마련해 보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 많아요. 아내가 저세상으로 갔을 때 자신의 일처럼 챙겨주신 수필가 반숙자 선생님과 이석문 시인님을 비롯한 예술인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바르게 커준 아들, 어려울 때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시는 후원자들, 이분들이 살아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갚을 수가 있잖아요."

어스름한 저녁에 시작한 그와의 대화는 자정이 다 돼서야 끝났다. 인근 자치단체의 초청으로 내일도 사생을 가야 한다고 말한 그는 날랜 손놀림으로 화구를 챙겼다.

신재흥 화백이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신재흥 화백이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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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흥 화백의 팔레트. 세월의 두께와 내공이 느껴진다.
 신재흥 화백의 팔레트. 세월의 두께와 내공이 느껴진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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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흥 화백의 작품. 폐지를 인력거에 싣고 가는 노인의 힘겨워 보이는 발걸음과 무거운 어깨. '도시의 일상 - 폐지이야기'(2013. 3. 21. 유화)
 신재흥 화백의 작품. 폐지를 인력거에 싣고 가는 노인의 힘겨워 보이는 발걸음과 무거운 어깨. '도시의 일상 - 폐지이야기'(2013. 3. 21. 유화)
ⓒ 신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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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 할머니가 건네 준 만두와 커피(2012.05.19.)
 시골 마을 할머니가 건네 준 만두와 커피(2012.05.19.)
ⓒ 신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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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흥 화백의 작품. 신 화백은 사진 위 장면이 충격이었다고 했다. 소가 힘이 달려 할머니가 소를 끌고 가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밭갈이를 하는 소를 길들이기 위해 할머니가 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편해졌단다.
 신재흥 화백의 작품. 신 화백은 사진 위 장면이 충격이었다고 했다. 소가 힘이 달려 할머니가 소를 끌고 가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밭갈이를 하는 소를 길들이기 위해 할머니가 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편해졌단다.
ⓒ 신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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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흥 화백 작품. 눈 내린 시골의 고즈넉한 풍경
 신재흥 화백 작품. 눈 내린 시골의 고즈넉한 풍경
ⓒ 신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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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재흥, #담배건조실, #화가,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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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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