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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총선을 앞둔 독일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올해 독일 총선의 경우 유럽재정위기 타파, 재정부채 감소 및 최저임금제가 주요한 이슈다. 독일은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남부유럽과는 달리 탄탄한 제조업 및 산업구조로 인해 오히려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실업률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또한 올 상반기에는 83억 유로(약 12조원)의 재정흑자를 기록해서 다른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적자로 허덕이는 것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중심으로 한 기민당-기사당(CDU/CSU)의 지지율은 현재 40%대를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고, 연정파트너인 자민당(FDP)도 6%의 지지를 받고 있어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현 연립내각이 유지될 전망이다. 반면 사민당(SPD)은 현재 25%의 지지율로 고전하고 있고, 슈뢰더 총리시절 연정을 이룬 녹색당의 지지율도 11%여서, 야권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는 사민당의 총리후보자인 피어 슈타인브뤼크(Peer Steinbruck)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의원재직 중 89번의 강연으로 125만 유로(약 18억 7천 5백만원)의 부수입을 올린 것으로 인해 국민들의 빈축을 산 것에 기인한다. 게다가 작년 말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총리의 수입이 너무 적다"고 언급해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지난 1일에 두 후보 간 TV토론이 진행됐다. 토론은 독일의 4대 방송사(ARD, ZDF, RTL, Prosieben)의 기자들이 해당후보자에게 질문하고, 이에 대해 후보자가 답변을 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재정 및 세금 정책, 최저임금제 도입여부, 장기화된 EU금융위기에 대한 대책, 연금정책, 에너지정책, 보건정책, 유아 양육수당 도입 등이 국내 주제였고, 미 국가안보국의 도청 및 해킹문제와 시리아 내전이 국제주제였다. 1700만명의 시청자가 TV토론을 지켜봤다.

재정정책 및 최저임금제 도입 입장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자료사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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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장 뜨거웠던 주제는 독일의 세금 정책 및 임금 정책이었다. 메르켈 총리는 더 이상 세금 항목의 신설 및 최저임금제 도입은 오히려 일자리 창출에 방해가 된다고 못박았다. 반면, 슈타인브뤼크 후보는 15년 동안 독일의 양극화가 더 심해진 만큼 상위 5%에 있는 상류층의 세율을 올려야 한다고 언급했고, 노동자들에게는 시간당 8.5유로(시간당 1만 2000원)의 최저임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 내용으로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메르켈 총리: "저는 최저임금제를 정치화 시키는 것에 반대합니다. 이는 임금협약 당사자들에게 맡겨야 하지요. 4백만 명이 이를 통해 계약을 체결했고요. 물론, 용역 노동자들에게도 정부가 지원해주고 있고요. 사민당/녹색당의 상류층 세금 인상 정책은 오히려 일자리확보에 있어서 더 큰 문제를 불러옵니다. 고소득자들의 대다수는 자영업자, 중류계급(Mittelständler) 그리고 장인(Handwerker)들이지요. 이들이 바로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입니다. 세금 인상이 없어도 지난 4년 동안 190만의 일자리를 확보했었잖아요. 그 중 120만의 일자리는 정규직이었습니다. 일자리 확보는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독일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확정 최저임금제가 없다. 대신 고용주와 노동조합 간의 협상을 통해 임금협약이 이루어진다. 물론 독일의 노동조합 권한은 오랜 투쟁의 역사로 인해 한국과 비교해서 강력하다. 참고로 중류계급은 우리가 흔히 쓰는 '중산층'과 다른 개념이다.  이들은 중소기업 및 가족기업을 운영하는 계층이다.

슈타인브뤼크: "10년 내지 15년 동안 독일은 양극화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를 통해 특히 5%에 있는 상류층의 소득은 크게 증가했어요. 그렇다면, 소득이 많은 이 상류층들은 더 사회적으로 기여해야하는 의무가 있지요. 인프라, 교육에 투자해야하고, 특히 빛에 허덕이는 지역 공동체를 도와주어야 하기도 합니다."

- 메르켈 총리가 후보님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과 세금인상 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네 빌.  ARD측 대표)

슈타인브뤼크: "상류층의 세금을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채울 수 있다고 메르켈 총리가 말한 것은 프로파간다에 불과해요. 최상류층의 세금 상승을 하면 자본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최저 임금제로 다시 돌아갑시다. 임금협약의 경우 특별한 규정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오히려 생각했던 것 보다 낮게 임금이 책정될 때도 있습니다. 노동자가 시간 당 8.5유로 아래로 설정되는 경우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후 프로지벤(Prosieben)의 슈테판 랍(Stefan Raab)기자가 메르켈 총리에게 증세 없이 독일의 부채를 해결할 수 없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그녀는 2015년부터 부채를 갚아나갈 예정이며, 유럽 경제위기 속에서도 이번 의회회기 동안 800억 유로로 부채 규모를 줄였다고 언급했다. 슈타인브뤼크는 재정흑자가 있었더라도 유럽위기가 아직 상존해 있고 이자율 상승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아직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언급대로 부채 규모를 줄였다는 것은 사실로 인정했다.

유로존 위기 해소, 에너지 정책, 유아교육 정책

독일 사민당 총리후보자인 피어 슈타인브뤼크.
 독일 사민당 총리후보자인 피어 슈타인브뤼크.
ⓒ 위키피디아 공동자료 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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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위기 해소에 대한 견해도 두 당이 엇갈렸는데, 메르켈 총리의 경우에는 유럽 재정위기를 연대로만 갈 것이 아니라 남부유럽 국가들도 산업혁신 및 경쟁력 강화를 통해 이를 대처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독일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언급했다. 또한 충격요법만으로는 이를 풀어갈 수 없기 때문에 지원방안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반면 슈타인브뤼크는 유로존 위기를 재정위기가 아닌 EZB의 저이자 정책 및 은행의 투기로 발생한 금융위기로 접근하면서, 문제를 일으킨 금융채권자 및 은행자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독일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셜플랜으로 경제성장수혜를 입은 국가여서, 이를 잊지 않고 가칭 마셜플랜II를 추진해서 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최상위층이 조세 피난처 등으로 세금을 회피하는 문제도 많아서, 스위스 및 다른 국가들과 조세 회피를 방지하기 위한 양자 협약을 강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메르켈 총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번 G20 회담을 통해 조세회피 문제에 대해 다자간으로 논의할 것을 약속했다.

에너지 정책을 살펴보면, 메르켈 총리의 경우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2022년까지 원전을 폐쇄한다고 선언하였다. 선언 뿐만 아니라 독일 하원에서 실제 이에 대한 법률안을 만들어 압도적인 찬성(513:79, 기권 8표)으로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독일의 경우 광전지를 바탕으로 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더 강화하는 상황이다. 두 대표자 모두 이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인정했다. 슈타인브뤼크는 에너지 공급을 여러 분야로 다양화해서 안정화시켜야한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Kwh당 3.2센트로 요금을 인하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환경에너지 국가로 급진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녹색당과는 달리 두 정당 모두 점진적인 방법으로 신재생에너지 강화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원전 중시의 정책과는 매우 대조되는 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

유아 교육 정책도 뜨거운 주제였다. 왜냐하면 유치원을 보내지 않는 부모의 경우 육아보조금(Betreuungsgeld)를 지원한다는 것 때문에 작년 의회에서 가장 뜨겁게 논란을 벌였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것은 가족이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유아보조금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이다. 반면 슈타인브뤼크는 육아보조금이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늘린다고 지적했다. 특히 저소득층 이민자 가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회통합정책에 방해가 된다고 언급했다. 오히려 그는 유치원 자리를 더 확보해, 박탈감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봤을 때는 독일의 출생률이 줄어드는데, 왜 유치원 자리를 확보하는 정책으로 가야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독일 유치원 교사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와 다르다. 최근 들어 부모님들이 자녀들에 대한 유아교육 요구수준이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전문성을 확보한 교사를 확충하고, 이를 바탕으로 충분한 유치원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대외정책 및 총평

대외정책의 경우 현 시리아 사태에 대한 대처와 미국 국가안보국의 도청 및 불법 정보수집행위가 도마에 올랐다. 시리아 사태 개입에 대해서는 두 정당 모두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UN의 조사결과를 신중히 기다린 후 국제법에 의거해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유보적인 입장이다.

미국 국가안보국 불법 정보수집행위에 대해서는 메르켈 총리의 경우 국가 정보기관의 정보수집에 대한 국제법적인 협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고, 독일의 경우 정보기관의 독립성이 확실히 보장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슈타인브뤼크는 57%의 정보가 미국 정보기관에 의해 해킹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독일의 경우 미 국가안보국 해킹 문제가 국정원 불법대선개입으로 얼룩진 우리나라와 달리 상당히 민감한 주제이다(실제 사건이 터진 후 이 내용이 독일 언론에 일주일간 도배되다시피 했다.) 이유는 핫메일 및 구글 지메일을 이용하는 유저들이 많은 탓에 미 국가안보국의 정보수집 타겟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토론 직후 승자를 물어보는 설문에서도 각 언론마다 엇갈린 결과가 나왔다. 대다수 독일 언론은 토론 직후, 교수진 및 전문가들과 함께 토론 내용에서 언급된 사실 진위 여부를 일일이 체크하고 톱기사로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슈타인브뤼크가 전반적으로 사실 관계에 입각하여 토론을 잘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유로존 위기 및 재정정책과 관련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메르켈 총리의 경우 에너지, 연금 및 보건정책에 있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는 두 후보자의 과거 경력과도 연관이 있다. 슈타인브뤼크의 경우 메르켈 총리 1기 내각 때 재정부 장관을 역임한 것에서, 메르켈 총리 자신은 헬무트 콜 내각 때 여성청소년부 장관 및 환경부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태그:#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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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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