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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상운리, 마을 소나무 숲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를 껴안고 있는 윤덕중 이장. 마을 주민들은 이 소나무가 수령이 천년은 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양양 상운리, 마을 소나무 숲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를 껴안고 있는 윤덕중 이장. 마을 주민들은 이 소나무가 수령이 천년은 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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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 주민들이 마을 숲에 있는 소나무들이 훼손되는 것을 막아내 화제가 되고 있다. 강원도 양양군에 있는 상운리라는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마을은 세대 수가 약 60세대, 주민 수는 약 150명에 불과한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누렇게 물들기 시작하는 너른 논이 펼쳐져 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농촌 풍경이다.

양양 상운리, '천년'이 된 소나무의 기품이 있는 모습.
 양양 상운리, '천년'이 된 소나무의 기품이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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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마을 풍경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마을은 주변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산에는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마을 전체가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셈이다. 산 위로는 여기저기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한눈에 봐도 산에 소나무 숲이 제법 울창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숲에서는 수령이 수백 년은 돼 보이는 소나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소나무들이 모두 아름드리다. 범상치 않은 풍경이다. 소나무들에 '명품'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 마을의 '소나무 숲'은 그 자체가 명품이다.

그 소나무들 중에는 마을 주민들이 나이가 '1000년'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있다. 이 소나무는 세 사람의 장정이 팔을 벌려야 겨우 감싸 안을 수 있다. 소나무는 지난 2010년에 소나무명품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다.

양양군 상운리 소나무 숲 일부, 외지인의 소나무 반출 시도가 있었던 곳.
 양양군 상운리 소나무 숲 일부, 외지인의 소나무 반출 시도가 있었던 곳.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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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지난달 발생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이아무개씨가 자신의 소유로 돼 있는 땅에서 소나무 20여 그루를 캐내 가려는 것을 막았다. 이씨는 그 소나무들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소나무들이 마을 숲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고, 오랜 세월 자신들이 지키고 가꿔온 소나무들이기 때문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고 맞섰다.

이씨가 캐내려던 소나무들은 수령이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은 되는 것들이었다. 마을 이장인 윤덕중씨는 우선 이씨가 소나무를 캐내 가는 길을 확보하지 못하게 막았다. 산에서 소나무를 옮기려면 새로 길을 내야 하는데, 이씨가 그 길을 내지 못하게 땅 주인들을 설득한 것이다. 그리고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모두 모여 긴급회의를 열었다.

주민들은 양양군청에 소나무 반출에 반대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주민들은 군청에 "마을 숲에 있는 소나무들은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이나 마찬가지"라며, "소나무 반출을 막아줄 것"을 호소했다.

실제, 소나무 반출은 곧 마을에 상처를 입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씨가 캐내려던 소나무들은 마을 입구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소나무들이다. 그 소나무들이 없어지면, 마을 전체 풍경이 달라지는 것은 불보듯 뻔했다.

양양 상운리, 소나무와 열녀비각.
 양양 상운리, 소나무와 열녀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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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의 소나무 숲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마을 전체 공동 소유다.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마을 재산이다. 마을 주민들 생각에, 이 숲을 훼손하는 것은 곧 앞서 살다 간 조상들의 넋을 훼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물며,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소나무들이 낯선 사람들에 의해서 외지로 팔려 나갈 판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주민들이 진정서를 제출하자, 양양군청은 이씨에게 소나무를 반출하기 전에 먼저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올 것을 요구했다. 윤덕중 이장 역시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소나무 반출을 그만두라고 설득했다. 주민들의 반대는 거셌다. 결국 이씨는 지난달 말 군청에 소나무 굴취 신청을 취하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서, 지난달 상운리를 들썩였던 소나무 반출 소동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상운리에서 소나무를 반출하려는 시도가 이대로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마을의 소나무 숲 일부가 여전히 개인 소유로 남아 있는 한, 소나무 반출 소동은 언제든 다시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그때가 언제가 되든지 앞으로도 소나무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다. 윤덕중 이장 기억에, 지금까지 마을 소나무 숲이 손상을 입은 것은 딱 두 번이다. 모두 '전쟁'과 '태풍' 같은 천재지변이 있었던 탓이다. 사람이 개인적으로 직접 손상을 입힌 적은 없다.

윤 이장 말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마을에서 수없이 많은 소나무들이 쓰러졌다. 그 와중에도 주민들은 숲을 지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윤 이장은 그 말끝에 "전쟁만 아니었어도 더 많은 소나무들이 남아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언젠가 마을에 태풍이 닥쳤을 때다. 그것 말고 마을에서 인위로 소나무 숲을 건드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모든 게 옛날 그 모습 그대로다. 마을 주민들은 이 숲을 그만큼 신성하게 대해 왔다.

이 소나무 숲이 계속 무사할 수 있을까? 윤 이장은 "지금까지 마을 숲에서 소나무가 외지로 나간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윤 이장은 "앞으로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양 상운리, 길가에서 흔히 보는 소나무 중에 하나.
 양양 상운리, 길가에서 흔히 보는 소나무 중에 하나.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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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강원도에서는 소나무들이 수난을 겪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소나무를 조경수로 사용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대도시에서 소나무를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바람을 타고 소나무를 불법으로 반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명품 소나무 숲' 마을인 상운리에서까지 소나무를 반출하려는 시도가 일어난 것이다. 강원도에서 소나무 숲을 지켜내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소나무 숲을 보존하는 데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태그:#소나무, #상운리, #양양, #윤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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