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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한 신진 패션 디자이너에게 제보를 받았습니다. 한 대형 의류 쇼핑몰의 디자인 도용 실태를 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동대문 도매시장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 베끼기 행태는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불법 여부를 떠나 디자인 도용을 공공연하게 받아들이는 인식도 문제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른바 '시장 의류업계'의 디자인 도용 실태를 짚습니다. 1편에선 이번 제보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2편에선 직접 동대문 새벽시장을 찾아 도매업체들의 속내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자정부터 아침7시까지만 영업을 하는 동대문 새벽 도매시장.  새벽 도매시장은 업체로는 디오트, 유어스(UUS), apm, 누존(NUZZON), 청평화, 디자이너크럽 등이 있다.
 자정부터 아침7시까지만 영업을 하는 동대문 새벽 도매시장. 새벽 도매시장은 업체로는 디오트, 유어스(UUS), apm, 누존(NUZZON), 청평화, 디자이너크럽 등이 있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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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 레이스 블라우스 찾아서 주문해. 이보영 블라우스도 찾아."

자정이 되자 동대문 도매시장으로 몰려든 전국 소매업자들. 도매시장 앞에서 이들은 각자의 수첩을 뒤적이며 최신 유행을 공유했다. 손예진, 이보영의 블라우스부터 아이유 원피스까지. 드라마에서 연예인이 입고 나온 옷을 카피한 이른바 '짝퉁'을 찾기 위해 소매업자들은 도매시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업자들이 주로 찾는 곳은 디오트를 비롯해 유어스(UUS), apm, 누존(NUZZON), 청평화 등 5곳 정도. 기자가 새벽 0시 30분쯤 디오트에 들어가, 옷을 구경하고 구매하는 소매업자들을 따라 가봤다.

도매상, 베낀 짝퉁 살짝만 변형해 판매...소매상은 짝퉁 찾아 삼만리

소매업자들이 브랜드D사를 카피해서 만든 점퍼를 주문하기 위해 한 도매업체에서 기다리고 있다.
 소매업자들이 브랜드D사를 카피해서 만든 점퍼를 주문하기 위해 한 도매업체에서 기다리고 있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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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상 대여섯 명이 ㄱ도매업체에 유명 브랜드인 D업체의 카키색 야상 점퍼를 주문하기 위해 줄지어 있었다. ㄱ업체 도매상은 "우리 점퍼색이 원래 거랑 제일 비슷해"라고 소매상들에게 홍보했다. ㄱ업체의 수량이 떨어지자 주문을 하지 못한 한 소매상은 D업체의 짝퉁 점퍼를 찾으러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또 다른 ㄴ도매업체에서는 도매상과 소매상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명품브랜드 옷을 그대로 따라서 만든 짝퉁이 걸릴까봐 도매상은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이대로 똑같이는 못준다, 이 부분(소매쪽)을 살짝 바꿔서는 줄 수 있다"고 소매상에게 말했다. 이에 소매업자는 "안 걸리니까 그냥 줘"라고 사정했다. 결국 살짝 소매부분을 바꿔서 주문하기로 합의하면서 두 사람의 대화는 끝이 났다.

동대문, 여전히 펜디·발망·디올 등 명품 짝퉁 재킷 판매

ㄷ 도매업체는 유명 브랜드 이름을 표기한 짝퉁 재킷을 판매하고 있었다. 팬디, 발망, 디올, 셀린느, 필립 림등 명품브랜드의 재킷을 그대로 카피해서 만든 제품들이었다.
 ㄷ 도매업체는 유명 브랜드 이름을 표기한 짝퉁 재킷을 판매하고 있었다. 팬디, 발망, 디올, 셀린느, 필립 림등 명품브랜드의 재킷을 그대로 카피해서 만든 제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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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도매업체는 아예 유명 브랜드 이름을 표기하고 판매하고 있었다. 펜디, 발망, 디올, 셀린느 등 명품브랜드의 재킷을 그대로 카피해서 만든 제품들이었다. 소매상들이 몰려들어 "펜디 재킷 10개, 발망 재킷 20개 달라"고 요구했다. 기자가 재킷들을 카메라로 찍으려 하자 ㄷ업체 도매상들이 강하게 막아섰다.

"사진 찍으시면 곤란해요. 저작권 소송 걸리면 책임질 거예요?"

짝퉁 제품들은 중국, 타이완 소매상들에게도 큰 인기이다. 황치엔(24·여)씨는 타이완에서 여성의류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황씨는 "한국 동대문에서 옷을 떼기 위해 타이완에서 3~4일 전에 왔다"며 "동대문에 한 달에 1번 이상은 온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가 타이완에서 인기라 이번에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속 이보영 스타일 옷을 사갈 것"이라며 "유명한 브랜드의 카피 제품 일수록 인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동대문 업자 "잘 팔리는 짝퉁, 외면 힘들어"

소매업자들이 전국에서 옷을 사입하기 위해 동대문 도매시장으로 몰려드는 새벽 1시. 소매업자들이 사입한 옷들을 정리하고 있다.
 소매업자들이 전국에서 옷을 사입하기 위해 동대문 도매시장으로 몰려드는 새벽 1시. 소매업자들이 사입한 옷들을 정리하고 있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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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의 디자인 카피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잘 나가는 유명 브랜드 상품을 그대로 베끼거나 디자인을 비슷하게 따라하는 것은 이미 동대문 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 돼 버린 지 오래. 그러나 이 같은 동대문 종사자들도 할 말은 있어보였다.

청평화 도매업자 이아무개(43)씨는 "우리도 베끼고 싶어서 베끼는 것만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이씨는 "손님들이 유명 제품 카피제품들을 많이 사가니까 동대문도 그 흐름을 거스르기 어렵다"며 "사람들 눈에 많이 노출된 옷, TV에서 연예인들이 입은 옷들이 익숙하고 예뻐 보이니까 손님들이 카피제품들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평화의 한 도매업자는 "우리만 베끼는 게 아니라 백화점도 동대문에 와서 베껴간다"고 말했다. 그는 "백화점 중간브랜드급 디자이너들도 다 베낀다"며 "요즘엔 동대문 옷이 질이 좋아져서 오히려 백화점 쪽에서 동대문에 와서 택갈이(라벨을 바꿔 다는 것)한 옷을 파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apm의 한 소매업자는 "동대문에 카피라는 것 없다"고 말했다. 누구나 다 베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카피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나 다 그렇게 하고 있고, 빠르게 카피해서 동대문이 유행을 주도하게 된 측면도 있다"며 "서로서로 돕고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대문 한 도매업체에서 판매하고 있는 옷. 백화점 브랜드인 '미샤'(Michaa)의 옷을 그대로 따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동대문 한 도매업체에서 판매하고 있는 옷. 백화점 브랜드인 '미샤'(Michaa)의 옷을 그대로 따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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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에 짧은 기장 티셔츠가 유행이라 우리 가게는 그걸로 다 깔아놓았다"며 "옆집을 봐도 똑같다, 거기도 다 짧은 기장 티셔츠다, 유행인데 가서 따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이 바닥에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면 장사 못 한다"고 덧붙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는 '동대문의 서로 베끼기'

동대문 도매업자들 중에는 패션업계의 베끼기 관습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키우는 상인들도 있다. 제일평화에서 도매업체를 운영하는 이아무개(여·43)씨는 "디자인 카피 때문에 동대문 떠나는 사람 많다"고 말했다. 이씨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같은 상가 안에서도 서로 베끼고, 디자이너들이 백화점 가서도 베끼고, 유명한 패션 잡지 같은 책자를 보고도 베낀다"고 지적했다.

소매업자들이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옷을 사입하고 있는 모습. 주로 소매업자들은 인터넷 쇼핑몰이나 옷가게를 운영한다. 이들은 자정에서 아침7시까지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기 위해 일대 도매시장을 돌아다닌다.
 소매업자들이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옷을 사입하고 있는 모습. 주로 소매업자들은 인터넷 쇼핑몰이나 옷가게를 운영한다. 이들은 자정에서 아침7시까지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기 위해 일대 도매시장을 돌아다닌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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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청평화에서 도매업을 하는 내 남편은 디자인 카피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편이 욕심이 있어서 2~3개월씩 걸려서 디자인한 옷을 전시했더니 같은 상가사람이 이틀 만에 베껴갔다"며 "남편은 현재 그냥 포기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동대문 바닥은 천원, 이천 원이 크다"며 "공들여서 독창적으로 디자인을 해도 옆집에서 베껴서 일, 이천 원 싸게 팔면 우린 끝"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자성의 목소리를 키우는 동대문 관계자들도 결국 카피 제품에 입을 다물게 된다. 카피제품이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렇지만, 동대문은 현재 '짝퉁시장'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노력중이다. 한국패션디자인연합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년 1월까지 매주 토요일 신진 디자이너 양성을 위해 지난 달 16일부터 시작한 동대문 상설패션쇼가 대표적 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유행 디자인만을 좇고, 짝퉁을 선호하는 이상, 동대문은 계속 힘겨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태그:#동대문, #짝퉁, #새벽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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