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가게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짧고도 긴 삶을 살면서 누구로부터 영향을 어떻게 받고, 또한 어떤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되돌려주게 될지도 알 수 없다. 인생이란, 그렇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걸음의 연속인 것만 같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부모의 모습은 그의 자식에게 어떤 식으로든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아닐까. 특히 아버지의 모습 말이다. 어릴적 본 아버지의 늠름한 모습에서부터 커가면서 바라보게 되는 그의 작아지는 어깨는 큰 울림을 준다. 그러한 기억의 잔상들은 한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본인도 모르게 무언가를 느끼고 삶의 방향을 정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아닐까.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그런 이야기인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고리를 비추고자 하는 듯, 영화는 15년의 세월 동안 여러 등장인물의 삶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은행털이범과 신참 경찰의 만남, 불행의 씨앗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한 장면.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한 장면. ⓒ (주)코리아스크린


이야기의 시작은 루크(라이언 고슬링)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모터사이클 스턴트로 위험천만한 하루하루로 삶을 불안하게 이어간다. 언제 다쳐서 인생이 통째로 끝장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운명. 그러던 루크는 오래전 사랑을 나눈 연인 로미나(에바 멘데스)와 재회하게 된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쇼를 하는 스턴트맨의 특성상 또 다시 지역을 옮기려던 찰나, 삶에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녀가 1년 전 가진 자신의 아이를 키우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혈육이 생겼다는 생각에 문제아로 살던 떠돌이 삶을 정리하고 한 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루크의 뜻대로 풀리지 않고, 마찰이 생기면서 점점 꼬여간다. 부성애를 느끼고서 책임감을 갖던 그는 양육을 위해 큰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 결국 짧은 기간에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은행털이를 시도하게 되는데, 이게 덜컥 성공해버리고 만다. 쉽게 돈을 벌게 되자 루크는 점점 더 많은 은행을 털어서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게 불행의 씨앗이 된다.

다급한 마음으로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르던 루크는 순찰 중이던 신참 경찰 에이버리 크로스(브래들리 쿠퍼)에게 추격당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타고 있던 모터사이클이 고장나자 루크는 가정집으로 숨어들고, 각자 권총을 손에 들고 마주서는 상황. 두 발의 총성이 울리고, 이날의 사건은 두 사람의 삶을 평생 바꿔놓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아들이 겪게 될 미래까지도.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세월을 넘어 연결되는 이야기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한 장면.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한 장면. ⓒ (주)코리아스크린


은행강도에 이은 총격사건으로 루크는 현장에서 사망하고, 다리에 부상을 당한 에이버리는 현장이 아니라 경찰서 안에서 증거물을 담당하는 부서로 배치된다. 그 와중에 경찰서 내의 비리를 목격한 그는 위기에 빠지는데, 주 대법원 판사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여 가까스로 빠져나온다. 정직한 경찰로 살던 에이버리는 아버지의 권력으로 비리사건을 해결하고 출세를 하게 되자 그 맛에 푹 빠져드는데, 그 뒤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한다.

15년의 세월이 지나 더욱 야망이 커진 에이버리는 검찰 총장 선거에 출마한다. 유일한 걸림돌은 문제아가 된 그의 아들 AJ(이모리 코헨)인데, 10대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약에 찌들어 있다. 그는 전학온 학교에서 마약을 구하기 위해 또래 친구를 만나게 되고, 우연하게도 그 아이는 과거 에이버리가 경찰이던 시절 총으로 쏘아죽인 루크의 아들인 기묘한 상황. 인연은 순식간에 악연으로 변해가고, 제이슨(데인 드한)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영웅 경찰이 되었던 에이버리의 과거를 알고서 분노한다.

판사인 아버지가 에이버리에게, 그리고 그가 아들 AJ에게. 범죄자인 아버지 루크가 아들 제이슨에게.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들은 각기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삶이 바뀌어간다. 결과적으로 15년의 이야기를 느릿한 호흡으로 화면이 흘러가는 동안, 두 부자의 이야기가 세월을 넘어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우연이었던 듯한 남자들의 만남과 깊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부자의 관계가 사실은 큰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드러낸다. 망가진 삶이든 출세해 부와 명예를 얻었든, 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 현재의 삶이 방향을 잡아가는 등장인물의 모습은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아버지와 아들의 또 다른 단면이 아닐까.

어쩌면, 삶은 '소나무 너머의 어딘가' 같은 것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포스터.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포스터. ⓒ (주)코리아스크린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은 <맥스무비>와의 인터뷰에서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궁극적으로 '유산'에 관한 영화이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세대를 거듭해 어떤 식으로 되풀이되는지를 다루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영화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굵게 보자면 (나누어 구분되지 않은) 세 이야기를 순서대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루크-에이버리-제이슨으로 이어달리기하듯 주인공이 바뀌는 구성도 상당히 흥미롭다. 각자 다른 시점을 통해서 영화는 그들의 다른 삶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The Place Beyond the Pines)'는 영화 속 배경이 된 지역인 '스케넥터디(Schenectady)'를 영어식으로 풀어낸 이름이다. 원래는 모호크 인디언의 언어인 '스케넥터디'를 영어로 해석하면 '소나무 너머의 어떤 곳'이라는 뜻이 된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영화가 막을 내리고 나서야 등장인물들이 각각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 한눈에 들어오듯이, 우리의 인생도 그 과정이 아니라 지나고 나서야 어떠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가보지 못한, '소나무 너머의 어딘가'처럼 말이다.

절제된 배경음악이 깔린 조용한 이 영화처럼, 우리는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할 수도 없이 그저 걸어갈 따름이다. 우리 아버지가 밟아온 그 걸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작아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또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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