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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기에 재밌는 영화나 최신 영화를 앞 쪽에 배치한다. 손님들에게 영화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재밌는 영화나 최신 영화를 앞 쪽에 배치한다. 손님들에게 영화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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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방 아르바이트(알바)는 알바생들 사이에서 '꿀알바'로 분류된다. 그만큼 다른 알바에 비해서 몸이 덜 힘들기 때문이다. 나도 DVD방 알바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DVD방 알바를 하면 보고 싶은 영화도 마음껏 볼 수 있을 거고, 일도 수월할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평소에도 혼자 DVD방에 가서 영화보는 걸 좋아하던 터라 꼭 한번쯤은 DVD방 알바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알바천국을 들여다보던 중 우리 동네 DVD방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조건은 좋았다.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하루 5시간을 일하고, 시급도 최저시급으로 준다. 요즘엔 최저시급도 제대로 안 챙겨주는 곳이 수두룩하던 터라 귀가 솔깃했다. 가장 매력적인 점은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에 있던 알바생이 중국어 공부를 틈틈이 해서 중국 연수를 갔다는 말에 이거다 싶었다.

면접을 보고 난 다음날. DVD방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부터 나오라는 사장님의 전화였다. 그렇게 시작한 DVD방 알바는 생각대로 수월했다. 처음 출근해서 1시간 동안 청소하고, 손님들이 나갈 때마다 청소하는 것 외에는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DVD방의 정체 모를 휴지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본디 사람 마음이 간사한지라 일이 편하더라도 불평,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법. 하루종일 재채기를 달고 살게 된 것이다. 영화를 상영해야 하기 때문에 가게가 전체적으로 어둡다. 청소를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도, 가끔 손전등을 비춰보면 먼지가 뿌옇게 올라온다.

어릴 적부터 코가 안 좋아 먼지가 많으면 재채기를 달고 살아야 한다. 재채기를 하면 콧물은 당연히 따라온다. 나이 스물넷에 다시 코흘리개가 되고 말았다. 사실 코 흘리는 거야 조금 불편하지만 괜찮다. 일을 시작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휴지와의 싸움이다.

"거기 영화보는 데가 아니라 모텔이나 마찬가지라던데…"

DVD방 알바를 한다고 말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이랬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했을 때 그 당혹스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손님이 나간 후, 청소를 하러 들어갈 때마다 소파 밑이나 휴지통에서 발견되는 정체 모를 휴지들은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그럴 때면 빗자루로 쓸어 담아 버리거나 휴지통을 들고가 종량제 봉투 안에 통째로 툴툴 털어내고 만다.

소파 밑을 쓸어 내면 정체 불명의 휴지들이 발견된다. 치울 때마다 찝찝하다.
 소파 밑을 쓸어 내면 정체 불명의 휴지들이 발견된다. 치울 때마다 찝찝하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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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방 알바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남자들이 말하는 이상한 냄새의 실체가 뭔지 몰랐다. 손님이 나가고 나서 희미하게 풍기는 이상한 냄새가 그 냄새라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불쾌함이 밀려온다. 일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아직도 적응하기 어려운 건 혼자서 DVD방을 찾는 남자 손님들을 대하는 일이다. 대개 40~50대 아버지뻘인 이 남자들은 성인 영화를 보러 온다. 인사를 하기조차 조금은 껄끄럽다. 손님들조차 성인영화 DVD 케이스를 건넬 뿐 말이 없다. 서로 민망한 상황이다. 얼마 전에는 웬 손님이 "제일 자극적인 성인영화를 추천해달라"고 말해서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대해야할지 난감한 손님들이다.

DVD방 알바가 꿀알바일까? 아닐까?

출근 시간보다 2시간 일찍 나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봤다. 혼자서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든다.
 출근 시간보다 2시간 일찍 나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봤다. 혼자서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든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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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우여곡절은 있지만 나름대로 로망은 실현했다. 근무 시간 외에는 자유롭게 영화를 볼 수 있다. 출근 시간보다 2시간 일찍 나와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퇴근 후에 새로  나온 신작을 본다. 일주일에 영화 2,3편씩 보며 DVD방 알바의 특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칸막이에 놓여진 DVD를 보면 내 것인양 배가 부르다. 출근할 때마다 가게 앞에 놓여진 소포를 뜯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소포 안에는 새로 들어온 DVD가 있기 때문이다.

알바천국에서 다른 DVD방의 구인공고를 찾아봤다. DVD방 사장님들의 말은 거의 비슷하다. "영화 좋아하시는 분 일하면서 영화 실컷 보세요!", "시급이 적기 때문에 공부나 자격증, 시험 준비하시는 분이 하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어 좋을 듯하네요" 등이다. 말 그대로다.

청소랑 출퇴근만 신경 쓴다면 사장님은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취업 준비로 일보다 공부가 우선이다. 그래도 부모님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부모님께 너무 미안해진다. 이런 나에게 DVD방 알바는 확실히 꿀알바다.


태그:#DVD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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