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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영 측이 반대측을 향해 걸어놓은 스피커 다발
▲ 스피커 다발 보수진영 측이 반대측을 향해 걸어놓은 스피커 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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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여럿에게 들려주기 위해 쓰이는 장치다. 지난 23일 세종로를 사이에 두고 청계광장에서 진행된 국정원 시국회의 집회와 반대 측 동화면세점 앞에서 진행된 보수단체의 집회에서는 양측 모두 스피커를 사용했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전자의 스피커는 단상의 발언을 들려주기 위해 참가자들 방향으로 설치했던 반면에, 후자의 스피커는 길 건너 상대방 측을 향해 매달아 설치했다는 점이다.

국정원 시국회의 측이 설치한 스피커가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있다.
 국정원 시국회의 측이 설치한 스피커가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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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측이 스피커를 진보진영을 향해 설치한 의도는 명확했다. 진보진영 측의 참가자가 단상에 올라 발언을 시작할 때 마다 보수 측은 더 큰 목소리로 상대방을 누르려는 듯 목청을 높였다.

보수 측이 설치한 스피커를 통해 나온 내용 또한 '빨갱이', '촛불좀비', '매국노' 등등 국정원 시국회의 측을 매도하려는 언어를 지속적으로 포함했다. 보수 측 단상에 오른 발언자가 그런 내용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면, 옆에 사회자로 보이는 이는 구호를 외치며 참가자들을 부추겼다. 동화면세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이들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 때문에 귀를 막고 그 앞을 지나갔다.

군복을 입은 보수측 참가자들
 군복을 입은 보수측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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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측 집회 참가자들 중 눈에 띄는 복장은 군복이었다. 마치 맞춤이라도 한 것처럼 국방색 무늬를 입힌 바지에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군화를 신은 참가자가 여럿 보였다. 현장을 지나가던 한 일본인 관광객은 "무섭다"며 "왜 군복을 입은 노인들이 돌아다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소감을 밝혔다. '해병대 캠프'로 말미암아 붉어진 한국의 군대문화가 부끄럽게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어버이연합 회원이 피켓을 들고 있다. 그는 '운지'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른다고 밝혔다.
 어버이연합 회원이 피켓을 들고 있다. 그는 '운지'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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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 소속 참가자들 중 몇몇은 '문재인 대선불복 즉각 운지!'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그들에게 '운지'의 뜻을 물어봤더니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터넷 신조어인 '운지'라는 단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비하하는 뜻이 담겨져 있는 말이다. 그들은 '문재인은 자살해라'는 피켓을 의미도 모른 채 들고 다니고 있었다.

래퍼 제리케이는 8월 16일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그가 밝힌 시국선언의 일부는 이렇다.

민주주의의 제1원리
광장이든 길거리든 자기 생각을 지껄이고 상상할 권리
그걸 침해하고 그 입술에다 침 뱉고
뻘건 페인트 칠하고 역겨운 짓 하고 있는 이
상식 없는 곳에 상식을
양심 없는 곳에 양심을
괄시 받는 이들에겐 관심을
그리고 탄식이 있는 곳엔 안식을

집회는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고 공감하며 동조하는 자리다. 집회는 상대방을 '악'으로 몰아가기 위한 자리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진보진영은 보수 측을 적으로 몰지 않았다.

보수진영 측은 '빨갱이', '매국노' 등의 단어로 반대 측을 '적'으로 규정했다. 청계광장에 모인 3만의(집회 측 추산) 시민을 '적'이자 처벌의 대상으로 몰았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펼치고자 하는 '국민 대통합'을 무시하는 처사로 볼 수도 있다.

그들의 스피커가 원래 자리로 향했을 때, 그리고 그 내용이 '적'을 규정하는 내용이 아닌, 건전한 '주장'을 담았을 때, 우리 사회는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태그:#현장, #집회, #군중, #인물,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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