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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운동연대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교육비상원탁회의 2차 전원토론회를 열었다.
 교육운동연대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교육비상원탁회의 2차 전원토론회를 열었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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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고질병' 되어버린 교육문제의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교육 전문가들이 둘러앉았다.

교육운동연대는 <오마이뉴스> <경향신문> 공동 주최로 19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교육비상원탁회의 전원토론회'를 개최했다. '교육운동연대'는 한국 교육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고자 23개 교육단체가 구성한 단체로, 지난달 25일 첫 회의(관련기사 : "괴물이 된 한국교육, 사회위기 부른다")를 열었다.

이날 열린 2차 전원토론회에 참석한 학자와 교원단체·교육단체 인사 20여 명은 '한국교육 위기 원인과 개혁 기본 방향'을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구체적으로는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개혁의 과제', '한국 교육의 위기극복을 위해 참조해야 할 서구 모델'를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다. 

"수학·미술 등 학교 과목, 능력 시험 잣대로 전락"

모두발제를 맡은 박재동 화백(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은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아이들이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공부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과목 점수가 높아야만 '잘한다'고 인정하는 교육문화가 아이들이 학문을 순수하게 즐기지 못하게끔 만든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그림이든 수학이든 과목 점수가 잘 나와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능력을 시험하는 잣대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또 "지금 아이들은 필답시험 답을 맞히기 위해 공부한다, 성적이 나쁜 아이는 학교에서 반평균을 떨어뜨리는 존재로 분류되기 십상"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림과 수학을 잘 못해도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점수로만 과목 재능을 판별하는 교육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인 이도흠 한양대 교수는 불교의 '화쟁(和諍)'사상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시사했다. 화쟁은 '조화'를 강조하는 불교사상으로 신라 승려 원효(元曉)의 중심사상이기도 하다. 화쟁사상에서 보는 교육이란, 학생 자신에게 숨어 있는 재능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평등과 조화를 가르치는 과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학생들이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문제를 던지며, 동시에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공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게 화쟁의 교육"이라며 "차별, 경쟁, 서열, 평가 없이 모든 학생의 개성과 잠재력을 똑같이 계발하는 평등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럽 교육모델 벤치마킹? '제도'만 이식해선 효과 없어"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국교육의 위기극복을 위해 참고할 만한 서구모델이 있는가'를 두고도 열띤 논의가 오갔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경쟁 위주의 한국 교육이 낳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일본·유럽 등 외국 교육모델을 차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교육기회균등', '평등교육', '진로·직업교육'이 중시되는 북유럽 교육제도가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해 이윤미 홍익대 교수는 "외국 교육제도를 그대로 적용하기 이전에 교육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럽 교육제도는 분명 매력적이다. 프랑스는 국가적 차원에서 학생들의 생체리듬을 고려해 학습시간을 정하고, 독일은 엄격한 직업교육제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들의 교육제도는 고유의 교육철학과 역사 속에서 태어났다. 유럽 교육의 역사를 이해하지 않은 채 단순히 제도적 장점만을 이식할 수는 없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교육이 '유교식 능력주의', '일제식 시험과 서열주의', '정치적 권위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혁명·계급투쟁·정치투쟁 등을 거쳐 사회적 민주주의를 구축해온 유럽 국가들과 역사·문화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유럽 교육제도를 벤치마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회균등'과 '평등'을 중시하는 유럽 교육에도 위기는 있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북유럽에 '자유'와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밀어닥쳤다, 사회민주주의국가인 핀란드도 이때 신자유주의 적응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러나 '평등'과 '기회균등' 등의 교육철학만큼은 유지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교육 상황을 반문했다. 이 교수는 "학부모들은 장시간 선행학습이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것을 알면서도 '내 아이의 미래'를 이유로 타협하고, 몸을 써서 하는 일은 사무실에 앉아 머리를 쓰는 일보다 천하다고 믿는다"며 "교육문화와 상식이 바뀌지 않는 한 외국 사례는 동경의 대상이 될 뿐 교육현실을 바꾸는데 기여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쟁 위주의 교육이 낳는 문제를 알면서도 타협해버리는 자세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독일 교육, 국제 경쟁력 없어"... "대학 평준화는 도입해야"

참여연대 공동대표인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는 유럽의 교육제도가 한국 사회에서 지나치게 이상적인 모델로 부풀려졌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최근 독일 내부에서는 '직업교육' 위주의 교육제도가 장기적으로는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며 "유럽의 교육제도가 국제경쟁력에서 뒤치지 않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당장 눈앞에 닥친 교육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유렵 교육제도의 벤치마킹이 시급하다는 시각도 있었다. 김학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기획국장은 입시 위주의 교육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유럽의 대학평준화 모델을 배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국장은 "입시경쟁교육과 사교육을 해소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대입제도를 마련하는 게 우리나라 교육의 오랜 숙제였다"며 "역대 정권은 이러한 목표를 내걸고 대입제도를 개편하려 했지만 실패하거나 좌초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국장은 "국립대 비중이 높은 유럽은 대학 평준화가 이뤄져 입시경쟁이나 사교육 과열 양상이 우리나라처럼 나타나지 않는다"며 "대학입시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유럽처럼 고등학교-대학교 서열화 해소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교육비상원탁회의는 주제별 원탁 토론회를 개최한다. 세부 주제는 ▲ 학교폭력 해결방안 ▲ 인권과 교권 ▲ 귀족-특권학교와 교육불평등 문제 ▲ 혁신학교의 실험 성과와 과제 등이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의 집담회도 이뤄질 예정이다. 이들은 10월 중순께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해 중간 보고서를 채택한 다음, 다음해 초까지 각 지역을 돌며 교육 관련 콘서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태그:#교육운동연대, #교육비상원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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