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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이 열린다. 그리고 떨어지는 핀조명과 함께 등장하는 한 남자. 트렌치코트와 머플러로 한껏 멋을 부렸지만 그 안에는 멜빵 원색 반바지를 입은 다소 우스꽝스런 모습이다.

연극 <스캔들>(9월 1일까지 A 아트홀)을 보고 나서 나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긴 연극배우 박상현의 첫 등장 장면이다.

연극 ‘스캔들’에서 배우 박상현이 첫 등장하는 장면
 연극 ‘스캔들’에서 배우 박상현이 첫 등장하는 장면
ⓒ 악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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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텁지근했던 지난 9일, 그의 삶과 연극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대학로 인근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 반갑습니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연기하는 데에 지치지는 않으세요?
"무척 덥네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연기를 하고 있고, 또 무더운 날씨에도 극장을 찾아주시는 관객분들을 생각하면 더위를 느낄 겨를도 없네요.(웃음) 땀 흘리며 연기할 때 오히려 보람을 느낍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있는 배우 박상현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있는 배우 박상현
ⓒ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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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명이 '고라파덕'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전에 함께 연극을 했던 동료 여배우가 지어줬어요. 처음엔 '고라파덕'이 무엇인가 하고 알아 봤더니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한 캐릭터였어요. 항상 머리가 아파서, '골이 아파'라는 말을 되풀이 하며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오리더군요. 그래서 뭔가 고뇌에 쌓여 있는 듯한 분위기가 닮아서 그렇게 부르냐고 물었더니 그냥 모습이 닮았다고 하더군요. 제가 오리 닮았나요?(웃음)"

응축된 에너지가 모든 걸 바꾼다

- 좌우명이 인상적입니다. 설명 부탁 드려요.
"'나의 응축된 에너지가 모든 걸 바꾼다'라는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좋은 마인드를 가지고 생활할 때 제 스스로 좋은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 에너지를 전달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연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에요. 연기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감동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성실하게 답변하고 있는 배우 박상현
 성실하게 답변하고 있는 배우 박상현
ⓒ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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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이 생각하는 연극의 정의는 무엇이고 그에 따른 연기철학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아직은 내공이 부족해서 연극에 대한 정의, 철학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한번 말씀 드려 볼게요. 프랑스 극작가 '빅토르 위고'는 '연극은 인생의 모방이다, 삶의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그냥 거울이 아닌 포커싱 미러다'라고 말하면서 연극이 어떤 특정한 인생의 한 부분을 의미 있게 담아 내야 예술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저는 이것에 깊이 공감해요. 연극은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 감정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지금 제가 연기하고 있는 <스캔들>의 경우, 코믹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돼 있다보니 관객들에게 많은 웃음을 유발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웃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 간에 설정된 긴장관계를 섬세하게 표현해서 관객들에게 생생한 감정을 전달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진심으로 연기할 때 관객들에게 그런 감정,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스캔들>은 다섯 남녀의 얽히고 설킨 치정을 그린 코믹 스릴러이기 때문에 스릴러적인 요소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저희 연기자들은 '칼을 품고 연기한다'라는 비장함을 가지고 무대에 섭니다."

연극 ‘스캔들’에서 익살스런 표정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박상현
 연극 ‘스캔들’에서 익살스런 표정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박상현
ⓒ 악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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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스캔들>에서 애니메이션과 같은 익살스러운 표정 연기가 인상적인데요. 비결이 있다면?
"순간순간 주어진 역할, 그 감정에 최대한 몰입하려고 노력해요. 실제로도 제가 극중 상황에 처한 것처럼 생각하며 연기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만약 제가 현실에서도 극중처럼 친구의 아내와의 불륜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순간순간을 모면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얼마나 눈이 휘둥그레지겠어요?(웃음) 주변 지인들에게 모니터를 부탁하기도 하고요, 또 다른 영화나 연극에서 좋은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서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 연극 <스캔들>은 코믹 스릴러이지만 풍자적인 요소도 보이는 것 같은데요.
"다섯 남녀가 불륜의 관계로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 온갖 거짓말들이 난무합니다. 극에서 저는 대학교수로 나오는데 친구의 아내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그것이 눈덩이처럼 커져가죠. 겉으로는 말끔해 보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은 일부 사회지도층의 이중적인 모습을 풍자한다고 할까요?

무대에는 돼지우리와 사슴우리라는 두 개의 방이 존재하는데요, 시골의 돼지우리와 사슴우리가 있던 자리에 전원주택을 지어져 이뤄진 설정이지만 방은 남녀의 동침이 이뤄지는 장소죠.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가정이지만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는 남편,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아내, 난잡한 불륜 관계를 마치 본능만이 살아 있는 동물의 세계처럼 보이게 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본 배우 박상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본 배우 박상현
ⓒ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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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하신 작품들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모든 작품이 다 저에게 의미 있지만 꼭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옥탑방 고양이>를 선택하고 싶네요. <옥탑방 고양이> 이전에는 다른 작품들에서 감초 역할을 많이 했었어요. 물론 다 저에게는 중요한 역할이었지만, 뭔가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배역을 해보고 싶은 갈망이 있었어요. 그러다 극본도 잘 짜여지고, 제가 1인 9역을 하면서 전방위적으로 극을 끌어 갈 수 있었던 <옥탑방 고양이>의 '뭉치' 역할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 한 작품에 몰입했다가 극이 끝난 이후에 감정은 어떻게 추스르시나요?
"연기했던 역할로부터 벗어나 다시 감정을 추스르는 과정을 저는 '감정출구전략'이라고 표현해 볼게요. 감정출구전략은 개인의 성향마다 각각 다를 것 같아요. 글쎄요, 저는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들이 코믹터치에 가까운 것들을 많았던지라, 아직까지 큰 어려움은 없어요. 아! 자유자재로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웃음) 앞으로 더 깊은 내면, 감정 연기를 하는 역할을 한 뒤라면 어떻게 될 지 저 자신도 궁금하네요."

- 연극 연기를 하면서 체력소모도 상당할 것 같은데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기본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좋아합니다. 공연 일정이 바쁠 경우에는 집이나 공원에서 틈틈이 운동을 하고 있고요. 이런 식으로 체력 관리를 하고, 아무래도 배우는 보여지는 직업이다 보니 자기 관리에 소홀하지 않도록 노력 중입니다. 땀을 흘리면서 운동을 할 때면 잡생각도 사라지고 맘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껴요. 운동을 하는 것이 저의 감정출구전략이 아닐까 싶네요."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는 배우 박상현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는 배우 박상현
ⓒ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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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가 된 계기는? 음악·노래에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연기와의 접목도 생각하시나요?
"원래 꿈은 밴드의 보컬이 되는 것이었어요. 아버지가 음악을 하셨고 어머니도 뮤지컬 배우를 하셨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특히 아버지의 영향으로 해외 록음악을 자주 접하게 되다 보니 밴드 보컬이 제 꿈이었죠.

그러다 고3 무렵 일본 5인조 그룹 스맙(SMAP)을 알게 됐어요. 다섯 명의 멤버가 각각 음악뿐만 아니라 연기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어요. 그중에도 특히 기무라 타쿠야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음악∙연기, 이 두 가지 모두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음악∙연기 두 가지를 아우를 수 있는 뮤지컬에 대한 호기심도 갖게 됐고요. 하지만 아직까지 제 자신의 노력 부족과 기회가 닿지 않아 도전을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무대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동료 배우들과 밴드를 결성해서 팀 내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고 있어요. 음악에 대한 노력도 계속 진행 중입니다."

"제 이름 들으면 '믿음' 가는 배우 되고 싶어요"

- 롤모델이 있나요? 해보고 싶은 장르나 역할이 있다면?
"제 인생에 다섯 형님이 있어요.(웃음) 성룡, 기무라 타쿠야, 데이빗 보위, 타마키 코지, 주성치 이렇게 다섯 분이 제 연기와 음악에 있어 정신적 지주입니다.

지금까지는 코믹적인 역할을 많이 했어요. 이제는 터닝포인트로써, 좀 더 인물 내면의 심리묘사를 하는, 혹은 깊은 나락에 떨어진 감정을 표현을 할 수 있는,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습니다. 꿈 많던 청년이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혼을 앞두고 믿었던 친구들의 모함에 빠져 14년간의 옥살이를 하게 되고, 인생은 끝없는 절망과 나락으로 떨어져 울부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동료 죄수의 도움으로 탈출해 몬테크리스토섬에 숨겨진 엄청난 재물을 찾아 본인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던 친구들에게 악에 바친, 치밀하고도 처절한 복수. 하지만 결국에 그에게 남은 것은 복수의 허망함. 이러한 일련의 감정 변화와 내면 심리를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을 꼭 해보고 싶어요."

-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 목표에 대해 듣고 싶네요.
"멋모를 어린 시절, 막연히 스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보다는 한 작품, 한 작품 좋은 연기를 해 나가면서 길게 갈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매 작품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좋은 기회∙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앞으로도 좋은 역할, 연기로 관객들을 마주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지길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존경하는 영화배우 송강호·이병헌, 뮤지컬 배우 박호산 선배님들처럼 꾸준히 연기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영화·연극, 또 기회가 된다면 드라마에서도 '배우 박상현' 하면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제 원대한 꿈이죠. 제가 하는 작품마다 관객분들에게 '박상현 연기 잘한다, 박상현이 하는 작품은 신뢰가 간다'라는 말씀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현재 연극 <스캔들>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 박상현'. 앞으로 그가 설 무대마다 멋진 연기로 승부하는, '믿고 보는 배우'로서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윤정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daum.net/nopanacea)와 블로그와이드(http://www.blogwide.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연극 스캔들, #배우 박상현, #연극, #믿고 보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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