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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이른 아침까지 술자리를 갖고 있는 피서객들과 다른 피서객들이 버려놓고 간 쓰레기 더미. 이날 해운대해수욕장에서는 모두 7.5톤의 쓰레기가 수거됐다.
 11일 이른 아침까지 술자리를 갖고 있는 피서객들과 다른 피서객들이 버려놓고 간 쓰레기 더미. 이날 해운대해수욕장에서는 모두 7.5톤의 쓰레기가 수거됐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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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인 <바른생활>에서 본 듯한 문구였다. 초등학생들은 이걸 1학년 2학기에 배운다고 했다. 구청은 현수막을 해운대 해수욕장 입구에 떡하니 걸어놓았다. 설마 미취학 아동이나, 1학년 1학기까지밖에 못 배운 초등학생들을 위한 배려일까?

11일 새벽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으로 들어서는 길에 쓰레기 무단투기 자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해풍에 덩실거렸다. 새벽의 바닷바람은 생각보다 시원해서 6일째 발효됐다던 폭염주의보가 가져다 준 열대야가 이곳만큼은 예외인 듯했다. 그런 생각이 기자만은 아니었나 보다. 새벽 4시를 넘겼는데 모래밭 위에 사람들은 그다지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마셔라~마셔라~술이 들어간다~쭉-쭉쭉쭉쭉"

벌칙으로 술을 권하는 젊은 피서객들의 노래가 꾸준히 이어졌다. 도돌이표 노래 같았다. 이쪽 돗자리 위에서 노래가 끝난다 싶으면 저쪽 돗자리에서 어깨춤을 덩실거리며 노래를 시작했다. 술이 들어가니 담배가 당겼나보다. 여기저기서 담배 연기가 해운대 밤하늘로 차올랐다. 금연 문구를 알리는 대형 입간판이 미웠을까? '벌금 2만원'이라는 문구 앞에서 재를 톡톡 털었다.

한 20대 여성이 모래에 담배를 비벼 끄더니 꽁초를 모래밭에 정성껏 파묻었다. 담배 꽁초를 위한 장례라도 치르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즐기다 간 피서객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꽁초와 술병, 돗자리, 닭뼈와 과자 부스러기가 남았다. 이건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이쑤시개 하나만 버려도 60만 개... 해운대는 쓰레기와 사투 중

청소노동자들이 해변에 버려진 쓰레기를 자루에 담아 묶어놓으면 트랙터가 쓰레기를 집하장으로 담아온다. 해운대구청 환경미화원들은 중장비 면허를 갖춘 경우가 흔하다.
 청소노동자들이 해변에 버려진 쓰레기를 자루에 담아 묶어놓으면 트랙터가 쓰레기를 집하장으로 담아온다. 해운대구청 환경미화원들은 중장비 면허를 갖춘 경우가 흔하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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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구청은 환경미화원, 일시 사용인부, 공공근로, 자활근로자를 동원해 매일 피서객들이 남겨놓고간 쓰레기를 치운다.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를 말하는 극성수기에는 매일 250명이 청소에 동원된다. 그것도 24시간 돌아가며 쉬지 않고.

그래도 버리는 사람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토요일 동안 나온 쓰레기를 모두 처리해야 하는 일요일 새벽은 그래서 더욱 바쁘다. 토요일이었던 10일에는 60만 명이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았다. 이들이 이쑤시개 하나만 버려도 60만 개란 소리다. 기자와 청소를 함께할 청소노동자들의 마음은 그래서 더욱 조급했다.

새벽 4시 30분이 되자 트랙터와 비치클리너라 불리는 모래청소 차량이 시동을 건다. 노란색 경광등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아침 청소가 시작된다. 그런데 바쁜 청소노동자들의 마음을 알 턱이 없을 피서객들은 좀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육중한 트랙터가 요리조리 사람들이 앉은 돗자리를 피해 길을 나섰다.

기자도 형광색 미화원 복장에 마대 자루를 들고 청소를 시작했다. 사실 청소보다는 쓸어 담는다는 느낌이었다. 제법 큰 마대자루가 가득 차는데도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득 찬 마대자루를 꽁꽁 묶어서 모래밭에 내려놓으면 트랙터가 와서 자루를 퍼간다. 트랙터는 그렇게 퍼간 쓰레기를 집하장에 내려놓는다.

깨진 유리병에 손이라도 다치면? "우린 찔려도 상관없단거지"

청소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건 깨진 유리병이다. 이는 비단 청소노동자 뿐 아니라 해운대해수욕장을 찾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위협이 된다.
 청소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건 깨진 유리병이다. 이는 비단 청소노동자 뿐 아니라 해운대해수욕장을 찾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위협이 된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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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굽혀 청소를 해놓고 뒤를 돌아보니 그 사이에 누군가 또 쓰레기를 버려놨다. '쓰레기 버린 사람이 혹시 나랑 원한관계라도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누군가는 한쪽에 정리해놓은 대여용 파라솔과 튜브를 꺼내다 태워놓고 떠났다. 해운대의 가는 밤이 아쉬워 캠프파이어라도 한 모양이었다. 기자 뿐 아니라 절대 잡히지 않는 술래를 잡는 술래잡기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트랙터가 쓰레기를 내려놓은 집하장은 쓰레기 동산이 만들어졌다. 냄새도 냄새였지만 양이 어마어마했다. 근데 이걸 그냥 버리는 게 아니다. 마대를 다시 열어 안에서 재활용품을 골라내야 한다. 유리병과 패트병, 음료수 캔은 매립을 하지 못한다. 물론 이것 역시 손으로 직접해야한다.

음식물 쓰레기와 술이 범벅이 된 담배꽁초를 헤치고 재활용품을 건져 올리는 건 사실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더 기분을 상하게 하는 건 깨진 유리병이다. "우리는 찔려도 상관없다는 거지"란 한 청소노동자의 푸념이 절절하게 가슴에 스몄다.

한다고 하는데도 재활용품을 골라내는 아주머니 청소노동자들의 손만큼은 따라갈 수가 없다. 재활용품을 골라내고 보니 90% 이상이 술병이다. 위스키, 보드카, 소주, 독일·일본·미국·한국의 맥주캔들을 보니 마치 세계주류전시장에 온 기분이 들었다. 재활용품은 해운대구 재활용품 선별장으로 보내져 다시 2차 선별과정을 거친다.

7.5톤 쓰레기에 취객들까지 상대해야... 실종된 시민의식에 한숨도

대형 환경미화트럭에는 최대 쓰레기 7톤을 실을 수 있다. 11일 오전 해운대구청 청소노동자들이 트럭에 쓰레기를 싣고 있다.
 대형 환경미화트럭에는 최대 쓰레기 7톤을 실을 수 있다. 11일 오전 해운대구청 청소노동자들이 트럭에 쓰레기를 싣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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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생활쓰레기들은 매각하거나 소각한다. 오전 7시쯤 돼서 분류 작업이 얼추 끝나면 대형 환경미화트럭이 쓰레기를 담기 위해 온다. 가득 실으면 7톤까지 들어간다는 환경미화트럭이 커다란 입처럼 보이는 압축기를 열었다. 쓰레기 먹는 괴물 같은 녀석의 입으로 쓰레기를 쉴 새 없이 먹였다. 남자 여럿이 달라붙었는데도 쓰레기 양은 좀처럼 줄지 않았고, 한계 용량이 임박한 트럭이 바동바동거리며 쓰레기를 게워내려고 했다.

"고마 다 실어볼라고 켔는데 오늘은 억수로 많네"

환경미화원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 어느 틈에 떴는지 해는 맛 좀 봐라는 고약한 심보로 더운 열기를 쏘아대고 있었다. 기자도 더러워진 손 대신 연신 소매에 땀을 닦았다. 그렇게 한창 작업 중인데 이번에는 취객으로 변한 피서객이 와서 청소노동자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안 드는지 구청장을 부르란다. 다짜고짜 구청장을 찾던 취객은 20여 분을 애타게 구청장을 부르다 사라졌다. 그래도 그는 취객으로 치면 양반에 속한다. 

"취객 상대하는게 힘듭니다. 욕을 들어도 우리는 못 들은 척 일만해야합니다. 술 마시는 젊은 사람들한테는 '쓰레기 좀 치워주고 가세요'라고 말해도 그때만 '네'하고 대답하지 그냥 가요. 20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는데 달라지는 게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해운대 인근 상권이 커지면서 쓰레기만 더 늘어나네요. 시민의식이 변해야하는데 우리가 홍보 유인물 나눠주면 그것까지 버리니…"

김득태 환경미화 감독(58)이 답답해하며 말했다. 그래도 김 감독은 "깨끗해진 해운대해수욕장 보면 기분은 좋지요"라고 보람을 이야기했다. 마대 자루를 나르는 기자에게도 강아지를 끌고 아침 산책에 나선 시민이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를 건네고 지나갔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청소노동자들도 그나마 이게 일할 맛이라고 했다.

이날 해운대해수욕장에서는 7.5톤의 쓰레기가 수거됐다. 아파트로 치면 2000세대 대단지 아파트가 하루에 내놓는 쓰레기 양과 맞먹는 규모다. 이 많은 쓰레기를 다 차에 실어보내면 한숨을 돌린다. 저녁같은 아침으로 컵라면을 받아든 청소노동자들의 땀으로 범벅된 얼굴에는 고단함과 안도가 함께 스쳤다. 해운대해수욕장 청소노동자들의 하루도 저물고 있었다.


태그:#정기자의 하루愛, #해운대해수욕장,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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