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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2년 3월 20일 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는 청량리정신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못 일어나고 사경을 헤메고 있다고 한다. 빨리 와서 큰 대학병원으로 모시고 가라고 한다. 불과 일주일 전에 찾아뵜을 때에도 멀쩡하셨는데, 갑자기 걷지를 못하고 쓰러져 계시다니 말이다. 병원 측 이야기로는 정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신체에 뭔가 이상이 있는것 같다고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주물럭거리는 말의 힘

119구급차로 근처 경희대학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걷지 못하고 눈빛도 이상하고 목이 퉁퉁부어 말도 못하신다. 한 의사선생님이 보더니 촬영해봐야 알겠지만, 목이 너무 부어 숨을 못쉬게 될 수 있어서 응급수술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하고 자리를 떠난다. 곧 또 다른 의사가 얼핏 보더니 염증 때문에 그런 듯하고 안쪽은 많이 안 부었으니 괜찮을 것같다고 하고 또 자리를 떠난다. 도대체 누구말이 맞는 건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말에 의해 사람이 천국으로 갔다 지옥으로 갔다가 왔다가 하게 되니, 말은 정말 무서운 힘을 가졌다.

잠시 후 다른 의사가 오더니 일반 정밀검사를 받아보자고 한다. 세포배양검사니 내가 잘 모르는 각종 검사를 다 한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을 병원에서 보내게 되었다. 어머니는   항생제를 투여하면서 부은 목이 조금씩 가라앉았지만, 왜 걷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발가락은 경직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몸을 수건으로 닦고 경직된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데, 옆에서 간병하는 분들이 나를 자꾸 쳐다보더니 이내 말을 건다.

"댁 어머니셔? 어떻게 움직이지도 못하고..몇년이나 된 거야?"
"아 네, 며칠 안 되셨어요. 못 움직이신지는....."
"그래 근데 왜이케 안 좋아보이지.."
"아 네, 다른 병으로 병원을 좀 오래 ....."

오른쪽 칸에 전문 간병인 아주머니는 6년 동안 한할머니를 간병하고 계시다고 한다. 할머니는 말씀도 못하시고 그져 눈만 깜박이며 자리에 누워 계셨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치 서로 대화를 나누듯이 할머니에게 해주었다. 옆에 젊은 처자가  어머니하고 왔다며 모든 일상을 얘기해 주고 있었다.

왼쪽칸에는 아주머니가 언니를 돌보고 있었다. 원래 언니가 요양병원에 있었는데 몸이 불편해 치료받으러 왔다고 한다. 병실에 있다보면 환자의 가족이 누구인지 어떤 성격인지 속속들이 알게 된다. 환자들은  말이 없는데 간병인들은 수다쟁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좁은 병실에서 하루종인 서로 마주보며 동거동락을 하다보니 서로에 대해 측은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나마 서로의 힘겨움을 말로써나마 푸는 것이 유일한 낙일 듯하다.

어머니의 정확한 병의 원인을 모른채 검사결과만 나오길 기다린지 일주일째, 어머니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병원의자와 보호자침대에서 새우잠을 잤더니 온   몸이 쑤시고 뻐근했다. 드디어 의사가 오더니 검사결과 이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대로 퇴원해야 하는지? 계속 입원해 있어야 하는지?'
'앞으로 이런 시간이 얼마나 갈지? 장기전을 준비해야 하는건가?'

막막하고 어두운 마음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병실에 혼자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고민에 빠져있었을때,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저희는 기도 봉사단인데, 혹시 기도를 같이 드려도 될까요?"
"아 네, 그럼 저야 너무나 감사할따름이죠."

연세가 지긋한 두 여성분은 내 손을 꼭 잡아 주시고는 기도를 해주셨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당신 품에 안겨 계신 성자께서는
당신 어머니가 청하는 바를 분명히 거절하지 않으시리라
그러기에 오늘 저는 어머니의 성화 앞에 꿇어 기도드립니다.
값진 삶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주님
건강을 회복케 해주시기를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러나 주님의 뜻이 모든 것 안에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리니,
하느님의 의지에 완전히 순종하도록 은총 주소서.
고통을 통해서 더욱 강건케 하시며,
신뢰심과 인내심을 더해주시어 고통에서 오는 무력감과
절망감을 떨쳐버리게 해주소서
........
다만 고통이 오래되지 않게 하소서

며칠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몰라도 내 운명을 받아 들입니다

순간 기도를 들으며 힘겨운 마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의 병환으로 정신병원을 드나들어야 했던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부인하고 싶고 방치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었던 어머니와 관계. 이제 조금 어머니가 병원에서 잘 생활하시나 했는데, 다시 병원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원망감에서 벗어나. 내 삶을 살되 어머니의 고통을 함께 이겨내며 내 운명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마음이 먼저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분은 내 눈을 바라보며 함께 눈물을 글썽이시며, 힘내라며 또 다른 이들을 위로하러 발길을 돌리셨다. 어머니 나이와 비슷해 보이는 두분의 손길은 언제가 느껴보았던 진심 어린 따뜻함이 배어있었다. 그분들은 알까? 그분의 기도가 내게 어떤 힘이 되었는지,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그동안 모든 힘겨움이 눈 녹듯 녹으면서 내 마음이 다시 세워졌음을 감사한다. 사람의 위로가 사람을 살리는구나. 아직 두분의 온기가 남아 있는 내 손을 잠시 바라보았다.

기적의 1년이 지나고 다시 찾은 평화

색칠 공부에 재미를 붙이신 어머니
▲ 어머니가 연습하는 색칠공부 색칠 공부에 재미를 붙이신 어머니
ⓒ 공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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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종합병원을 퇴원 후 요양병원에 모셔졌다. 움직이지 못해 엉덩이에 큰 욕창이 생기고 치료받고 기어 다니길 1년이 지나 기적처럼 어머니는 걸어다니게 되셨다. 누워만 있어서 다리 근육이 너무 약해졌었는데, 이제 다리에 근육도 보인다. 3개월 전 어머니는 걷기 연습을 할 수 있는 큰 요양원으로 옮기셨다. 복도에 걷기코스가 그려져 있어, 복도를 왔다가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제법 운동이 된다고 하신다. 요즘은 색칠 공부에 빠져 내가 가면 자신이 칠한 종이를 잔뜩 가지고 와서 보여주신다. 오늘도 간식 많이 사가지고 오라고 전화가 왔다.

"바나나 우유 3개, 검은콩 두유 한박스, 초코파이 한박스, 지난번에 사온 두유 말고 한 통으로 된 검은통으로 말이야! 그리고 아이스크림이랑 과자도 사와!"

어머니는 여전히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보다는 간식거리에 더 관심이 많다. 가끔은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기적같은 1년이 지나 어머니를 위한 과자를 고를 수 있음에 감사하다.


태그:#간병, #말의 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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