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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느티나무 앞의 모습.
 두물머리 느티나무 앞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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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있어."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일, 농부 최요왕(48)씨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 밭 한가운데에 있었다. 하우스 안은 더 더웠다. 기자도 농부도 땀이 '뻘뻘' 났다. 농부 목에 수건이 걸려있는 이유를 알았다. 농부에게 밭과 땀은 일상이다. 그러나 이 일상을 뒤로하고 밭을 지키는 데 3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농부들이 있다. 바로 '두물머리 사람들'이다.

2009년 4대강 사업계획에 두물머리 주변의 농지가 포함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농민들은 반발했다. 1976년부터 시작된 두물머리 유기농 농업을 없애겠다는 소리였다. 단순히 생계를 지키고자 싸움을 시작한 것이라면 방법은 많았다. 정부가 대체 토지를 준다고 했을 때, 새 토지를 구입할 돈을 빌려준다고 했을 때 그 지원을 받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4명의 농부들은 끝까지 두물머리에 남았다. 농지를 절대 훼손할 수 없다는 목적 하나로 버텼다. 결국 '강변의 공원화'를 막았다. 농민들의 반발로 4대강 사업의 기존 계획을 수정한 지역은 전국에서 두물머리가 유일하다.

3년 4개월의 저항 끝에 지난해 8월 14일, 국토해양부와 농민들은 천주교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두물머리에 '생태학습장'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농지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농민들은 안심하고 두물머리를 떠났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두물머리를 지킨 4명의 농부, 김병인·임인환·최요왕·서규섭씨의 근황이 궁금했다.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방춘배 팔당생명살림 사무국장의 개인 밭이기도 한 이곳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국책 사업으로 밭떠난 농부들, 새로운 농지 마련에만 1년

왼쪽부터 김병인씨, 임인환씨, 최요왕씨, 서규섭씨
▲ 두물머리 사람들 왼쪽부터 김병인씨, 임인환씨, 최요왕씨, 서규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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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유기농 단지를 떠난 후 1년간은 땅을 보러 다닌 일밖에 없었다. 농민들은 우스갯소리로 "땅보고 술 먹고, 땅보고 술 먹고…, 가끔 도서관도 가고…" 했다. 별다른 수입이 없어 어려운 날들을 보냈겠지만 웃음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땅을 지켰다는 '안도'가 그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을까.

두물머리 유기농 단지에서 농사를 짓던 집은 11가구였는데 2011년 말, 7가구는 정부의 장기저리자금을 받고 나갔다. '두물머리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농민 4명도 그들과 똑같이 정부 융자를 지원받기로 했다. 농민 4명은 지난해 9월부터 땅을 알아보러 다녔다.

양평에서 유기농을 할 수 있는 농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두물머리 주변 외에는 비옥한 땅이 없기 때문이다. 겨우 땅을 찾으면 땅 주인이나 주민들은 이들이 정부로부터 무상지원을 받았다고 오해해 땅값을 평당 70~80만 원으로 올리기도 했다.

김병인(59)씨는 부동산 업자에게 송전탑 아래 땅을 끼워 팔려는 일을 당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송전탑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는데 땅을 구입하려고 하니 송전탑 아래 땅까지 사야한다고 말을 바꾸는 거예요. 송전탑이 지나는 자리를 얹혀서 팔려고 했던 거죠. 그런데 송전탑 밑에서 어떻게 유기농업을 하겠어요? 결국 땅을 사지 못했죠."

평생 농사를 지어야 할 땅을 구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정부가 빌려주는 돈을 받는 일도 복잡했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4명의 농민들은 올해 7월 초가 돼서야 땅 구입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농지를 구했다고 해서 바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농기계, 시설하우스, 저온창고, 관정시설 등 농사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정부는 합의 당시 농민들에게 시설비의 80%를 지원하기로 했지만 예산편성의 문제로 지원을 미루고 있다.

최요왕씨는 "경기도와 정부가 예산편성이 안 됐다는 이유로 서로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며 "시설자금을 제때 받았으면 바로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을텐데 갑갑하다"고 전했다.

서규섭(46)씨는 "정권이 바뀌어서 이래저래 진행이 잘 안 되는 모양"이라며 "약속 지키라고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도 서씨는 유영훈 팔당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이미경 민주당 의원을 만나기로 했었다. "이 인터뷰 약속 때문에 서울에서 일을 보다가 중간에 왔다"고 웃으며 말하는 서씨는 인터뷰 중에도 관련 일로 전화가 걸려오는 등 바빴다.

한편, 경기도청 창조행정담당관실 관계자는 "현재 국토해양부와 안전행정부가 예산지원에 대한 협의를 하고 있는 중"이라며 "예산지원이 내려오면 바로 집행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고 말했다. 양평군 관계자도 "경기도에서 지원계획이 내려와야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득없는 1년... 가장으로서 위기 위식을 느껴"

두물머리 느티나무 아래 방문객들이 앉아있다.
 두물머리 느티나무 아래 방문객들이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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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농민 모두 땅만 사놓고 아무런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 임인환(49)씨는 "1년 동안 일을 못하고 있으니 마음만 조급해진다"고 말했다. 서규섭씨는 "정부지원이 잘 마무리 돼서 빠른 시간 안에 농사에 전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요왕씨는 인터뷰 도중 "자꾸 앓는 소리를 하게 되는 게 싫다"며 몇 번이고 막걸리를 가져다 마셨다. 1년간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에 "소득 없이 빚으로 살아가는 상황이 힘들다"며 "돈 없이 몸부림친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농사 일에 전념하지 못한 시간을 따져보면 벌써 4년이 넘어간다. 정부의 두물머리 사업을 반대할 때도 두물머리를 지키느라 농사일에 주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일을 생각해보지는 않았느냐는 말에 임인환씨는 "이제 와서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고 되물었다. 이어 "유기농 하려고 농사를 시작한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3년 거치 17년 상환. 정부가 지원한 융자 방식이다. 서규섭씨는 "융자금액이 크다보니 연간 수백만 원의 이자를 내야한다"며 "3년 후부터는 원금분할도 함께 내는데 1년에 3000~4000만 원씩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인환씨 역시 "미쳐블것제잉… 그 돈을 갚을 수 있을지, 무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면서 "우리 엄마가 알면 '미친놈'이라고 욕을 한바가지 할 일"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당장 농사를 시작하더라도 소득이 발생되기까지는 반년이상이 걸릴 일이다. 정부의 시설지원 약속도 지켜지지 않아 언제 농사를 시작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 농민들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최요왕씨는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기도 힘든데…"라며 말끝을 흐리고 또다시 막걸리를 마셨다. 기자가 조심스럽게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후로 다들 말수가 줄었다. 김병인씨는 "어제도 이 일로 아내와 다퉜다"고 입을 땠다.

"이러려고 그렇게 오랜 시간 싸웠냐고 하더라고요."

최요왕씨는 "그런 이야기는 넘어가죠"라며 말을 줄였다. 서규섭씨는 귀농 후에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하고 함께 농사일을 했지만, 나머지 농민들의 부인은 각자 다른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서규섭씨는 "같은 일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긴 싸움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형들이 많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소득 없이 1년을 넘기고 있으니 모두 가장으로서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들의 저항을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봤던 방춘배 팔당생명살림 사무국장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족, 이웃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형들은 많이 지쳐있다"며 "싸워온 시간만큼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과 가족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해 보여요."

"4년 가까이 건달이 된 기분... 빨리 밭일하고 싶다"

4대강 사업으로 하루아침에 농지를 뺏긴 사람이 전국에 2만6000여명이다. 심지어 보상도 받지 못하고 나간 농민이 대부분이다.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공동대책위원회' 이름으로 싸웠던 남양주, 양평처럼 대체 토지를 받거나 장기저리자금을 지원받은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말하기 부끄럽다"고 했다. 이보다 더 어려운 농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서규섭씨는 "싸우면서 4대강의 실체를 더 잘 알게 됐다"며 "정부의 사업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최요왕씨는 "4대강만 생각하면 울화가 터진다"며 "도시민들을 위한 위락시설을 만들겠다고 강변을 다 망쳐놨으면서 정작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열을 올렸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두물머리 사람들을 영상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 감독 서동일씨는 이 상황을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는 국가 권력과 그것을 막고자 한 지역 세력의 한판 싸움"이라고 말했다.

"유기농이 수질오염의 주범이라고 매도하는 상황에서 유기농의 자존심을 지키고 결국 정부와의 합의까지 도출해 낸 일은 전국적으로 유일한 사례에요. 땅이 훼손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강변이 공원보다 농지로 활용되는 게 더 가치 있다는 신념을 끝까지 지켜낸 거죠."

하지만 저항 이후의 삶이 녹록치만은 않다. 정부의 무관심, 약속불이행이라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서 감독은 "대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정부가 나몰라라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다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인데 하루빨리 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규섭씨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회, 군청·도청·국회 면담요청, 항의, 유기농 학술 세미나…. 이런 것들이 농부의 일은 아니잖아요? 4년 가까이 그런 일들을 해오면서 건달이 된 기분이에요(웃음). 땀 흘리며 일하고 싶습니다. 그게 나와 가장 잘 어울려요. 왜 농사를 짓는지에 대한 거창한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밭일을 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들에게 밭과 땀이라는 일상으로의 복귀는 얼마만큼 다가온 미래일까.

두물머리 생태학습장, 어디까지 진행됐나

두물머리 가는길.
 두물머리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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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생태학습장이 지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바로 국가권력과 지역민들의 관계다. 두물머리 생태학습장은 정부의 4대강 사업 계획을 정부와 주민의 협의 하에 수정한 대표적 사례다.

땅의 소유가 국가에게 있다 하더라도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거나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사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대한민국 대표 강변을 공원화시키면서 강변은 풀이 무성해진 아스팔트 지구가 돼버렸다.

2009년 정부는 팔당댐 지역을 4대강 사업 지구에 포함시켰다. 남양주시, 양평군, 광주시가 그곳이다. 양평의 두물머리는 4대강 사업 한강 1공구 지역이었다. 하천부지점유허가를 받고 농사를 짓던 두물머리 농민들은 3년 4개월의 저항 끝에 정부 계획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가 바로 두물머리 생태학습장이다.

두물머리 생태학습장 협의기구는 정부·지자체와 농민·천주교 각 6명씩 동수로 구성했다. 현재까지 24차례의 협의가 있었다. 8만평의 부지에 어떤 내용을 채우고, 누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협의회는 두물지구 생태학습장을 유기농을 중심으로 한 학습장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는 팔당지역의 유기농업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다. 공간 안에는 지역의 다양한 콘텐츠들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기본적인 공사는 올해 말 완공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계획했다.

두물머리 지구는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아 공터로 남아있다. 양평 사람들은 민관협의로 조성되는 생태학습장이 또 다른 생태계 파괴를 가져와선 안 된다는 의견이다. 두물머리 주변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윤아무개(51)씨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며 "자연 그대로를 잘 보전해 개발하는 것이 주민들이 원하는 일일 것"이라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18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서규섭, #최요왕, #임인환, #김병인, #방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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