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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김대중 대통령의 예지력을 믿는 편이다. 두가지 예만 들어보자.

첫째, 김대중은 70년대 멸공과 북진통일의 깃발만이 나부끼던 시절에 동서 양진영의 데탕트(긴장완화)를 예견하고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 지금 일부 극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평화통일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둘째,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 조종자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고 최후진술에서 80년대 후반에는 반드시 민주주의가 온다고 예견했다. 이 예견은 87년 6월 시민항쟁으로 입증됐다.

이렇게 앞으로의 일을 내다볼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정치경험과 시대를 읽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돌아가시던 해 2009년 6월 어느 토요일 오후, 김 대통령은 3년 6개월 후 있을 대선을 언급하며 이런 말을 했다

"다음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하지 못하면 유신시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4년 전 필자의 수첩에서 찾은 이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위 사람들이 유신시절과 관계된 사람들이 많고, 그들의 생각이 유신시절의 생각과 닮았기 때문이다.

"유신시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김대중의 예견은 "유신시대로의 회귀"로도 읽을 수 있다. 즉 통치 방식이 유신시대, 박정희 시절의 스타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군인 출신, 유신시대 인물들이 헤게모니 장악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이는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이는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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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합리적 보수주의의 외피를 쓰고 집권에 성공했다. 지난해 대선 캠페인에서 박근혜 캠프가 가장 강조한 것은 중산층의 복원, 경제민주화, '한반도신뢰프로세스'로 표현된 전향적인 대북정책이었다. 이른바 합리적 보수주의, 민주우파 진영으로 바라보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 캠페인은 선거 후 많은 정치평론가들의 말처럼 중산층의 지지를 얻어 성공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치는 정부 출범 후 그 외피를 벗어던졌다. 정치영역에서 합리적 보수주의 그룹들은 퇴조하고, 군인출신, 유신시절 사람들이 권력 주위에 포진하며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새누리당 내 합리적 보수그룹의 목소리는 이미 잠재워졌다. 김기춘 비서실장 임명 소식을 접한 새누리당 의원 어떤 분은 방송에 나와 "당황했다"고 했는데 새누리당 상황이 지금 이렇다(앞으로 이 지점이 새누리당의 갈등으로 표현될 게 분명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예견은 이 점까지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새누리당이 비록 민주화 이후 새롭게 보수정당의 외피를 갖추는데 성과를 거두었지만 새누리당의 역사적 속성상, 특히 당시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가 유력한 상황에서, 만약 새누리당이 집권에 성공한다면 보수우파, 민주우파 정당으로서 정체성보다는 과거 독재우파의 유산과 인적 자원 속에서 정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그 점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오만과 독선으로 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권력 중추 청와대 비서실 인사를 단행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초조함의 발로다. 창조경제는 실종됐고, 개성공단 패쇄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길을 잃고 있다. 명백해진 국정원 대선개입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김기춘 비서실장 임명은 자신을 대신할 제2인자를 통해 당정청(당, 정부, 청와대)을 강력하게 통제하겠다는 뜻이다. 김기춘의 비서실장 임명은 마치 박정희가 차지철 경호실장을 통해 당정청을 제압했던 것과 같다. 경력으로 보나, 스타일로 보나, 나이로 보나 김기춘 비서실장은 권력의 2인자로서 당정청을 제압할 인물로 적합하다. 그 뒤에는 유신시대 사람들인 막강한 7인회가 지원하고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 임명으로 정부 시스템은 청와대 중심으로 갈게 뻔하다. 장관들은 물론, 검찰, 국정원도 그리고 여의도 새누리당도 청와대와 비서실장의 입만 바라보는 국정운영이 불가피하게 됐다. 정상적인 국정운영은 물건너갔다.

이번 김기춘 비서실장의 임명은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이다.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다. 김기춘의 초원복집 범죄 경력을 알면서도, 또 지금의 정국이 국정원 선거개입 관권선거가 문제임을 알면서도 전격 발탁했다. 한 마디로 국민들, 촛불들과 "한 번 해볼테면 해보자"는 것이다. 촛불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초원복집 밀실에 은밀하게 마련됐던 '우리가 남이가 총본부'는 21년이 지난 후 백주대낮에 청와대로 옮겨졌다. 이제 국민대통합을 믿을 사람은 없다. 지역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것이다. 야당이 "불난데 기름 뿌린 격"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 '사초 증발' 재점화로 국면 전환 노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에 대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에 대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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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김기춘 비서실정 임명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도발이 이어졌다. 6일 국무회의에서 '사초 증발' 문제를 꺼낸 것이다. 정작 국민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고, 자신과 직접 관련이 있는 국정원 대선개입과 정치개입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콧대는 높았고 너무 당당했다.

사초 증발(정상회담 대화록 유실) 문제는 이미 여야 정치권에서 특검이냐 검찰조사냐로 협의가 이뤄지고 있고, 지금은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가 진행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를 합의해준 새누리당이 방향을 잘못가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국정조사'를 집어치우고 '사초 증발' 문제로 전선을 옮겨야 할 판이다.

이런 박근혜 정치가 성공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어울리지 않은 자기 옷을 입었다. 집권에 성공한 자기 스타일을 포기하고, 왜 굳이 독재자 아버지 스타일로 가려고 하는지 의문이다.

한 마디로 이런 박근혜 정치는 성공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87년 민주화 이후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을 지나면서 성장한 시민들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제 시민들은 납득이 되지 않으면 권력에 승복하지 않는다. 밀어붙이기 정치가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다. 국민을 이긴 권력은 없다.

설령 박근혜 정부가 이번 촛불을 제압하고 이긴다고 하자. 그래도 남는 것은 '부정선거, 관권선거로 당선된 박근혜'다.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가. 그래도 좋다면 어쩔 수 없지만 역사는 그렇게 기록될 것이다.

<설국열차>의 종말

박근혜 정치를 보면 요즘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설국열차>가 연상된다. <설국열차>는 '신성한 엔진'만이 열차를 끌고 갈 수 있고, 꼬리칸 사람들은 오로지 열차 생태계 균형을 위해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김기춘은 2인자 메이슨 총리의 말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엔진은 신성하다! 윌포드는 자비롭다!"를 외칠 인물이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에서 메이슨 총리는 꼬리칸 사람들에게 붙들린다. 결코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열차는 옆구리가 터져 궤도를 벗어난다. 동강난 차량들은 깊은 눈밭에 파묻혀버리고 만다. '신성한 엔진'을 믿는 윌포드는 열차의 운명을 모른다.

이번 만큼은 김대중 대통령의 예견이 빗나갔으면 좋겠다. 박근혜 정부가 하루속히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고 정상적인 국정운영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란다. 대통령의 실패는 국민의 실패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대중 대통령을 마지막까지 보좌한 비서관이었다. 지금은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사단법인 민생평화광장의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



태그:#박근혜, #김기춘, #설국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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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한 마지막 비서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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