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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있으면, 그의 곁에는 항상 보좌관이 있다. 의원의 의정활동 상당 부분에 보좌진의 손길이 미쳐야만 한다. 그러나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가슴팍에 배지를 단 의원뿐이다. 그렇다면, 늘 그림자처럼 뒤를 지키는 보좌진들의 생활은 어떨까. 밤을 새워 일해 국회의원을 빛나게 하지만, 평생 '4년짜리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는 보좌진들의 정치 역정 스토리를 들어보자. [편집자말]
민주당보좌진협의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조형국 보좌관. 현재 진성준 의원실에 있는 그는 진 의원과 '의원-보좌관' 관계이기 전에 같은 방 '보좌관-비서관' 즉, 사수관계이기도 했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조형국 보좌관. 현재 진성준 의원실에 있는 그는 진 의원과 '의원-보좌관' 관계이기 전에 같은 방 '보좌관-비서관' 즉, 사수관계이기도 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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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가 하면…."

본인이 '재미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구구절절 사례를 늘어놓는 의원이 있다. 그런 의원을 보며 "아우~ 솔직히 내가 더 재미있죠?"라며 자신이 더 재미있는 사람이라 주장하는 보좌관이 있다. 진성준 민주당 의원과 조형국 보좌관이 그들이다.

조 보좌관은 지난 달 12일, 23대 민주당보좌진협의회(이하 민보협) 회장에 당선됐다. 12년 동안 국회 보좌진 생활을 한 그에게 진 의원은 네 번째(장영달, 장세환, 전혜숙)로 함께 하게 된 의원이다. '의원-보좌관' 관계이기 전에 그들은 같은 방 '보좌관-비서관' 즉, 사수관계이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보좌관 출신 의원 중 가장 오랫동안 보좌관 생활을 한 진성준 의원, 그런 진 의원과 함께 국회 생활을 시작한 조 보좌관을 지난달 31일 만났다. 민주당 보좌진들의 장으로서 조 보좌관의 얘기와 12년의 보좌진 생활 포함 16년 동안 민주당에 몸담은 진 의원의 얘기를 함께 듣기 위해서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진 의원은 "그래, 오늘은 계급장 떼고 한 번 얘기해보세"라며 멍석을 깔았고, 조 보좌관은 "나한테 불리해, 야자타임 끝나고 뒤끝은 어떻게 감당하라고"라면서도 술술 얘기를 풀어냈다.

'형'으로 부르다 '의원님'으로 부를 때까지 이어진 12년

이 둘의 인연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11월, 장영달 전 의원의 비서관 채용에 응시한 조 보좌관 면접관이 진 의원(당시 보좌관)이었다. 당시 진 보좌관이 "샤프한 맛이 떨어진다"며 조 비서관의 채용을 마뜩치 않아 했음은 최근에야 전해진 얘기다. 조 보좌관은 "껌은 뿔테에, 흰 와이셔츠에 멜빵을 메고 나를 휙 쳐다봤다"며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했다. 3시간 동안 진이 빠지는 면접을 본 '을'은 12년 전 첫 대면을 어제 일처럼 풀어놓았다. '갑'은 까맣게 잊었던 장면이다.

그렇게 시작된 연은 "십여년 간 형으로 부르던 호칭이 의원님으로 바뀔" 때까지 이어졌다. 진 의원은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았을 때 진작부터 '형은 출마해야 할 사람이라고, 자신이 총대 메겠다'고 한 사람이 형국씨였다"며 "의원이 되고 나서 보좌관 구성할 때 형국씨 말고는 대안이 안 떠올랐다"고 말했다.

진 의원과 조 보좌관이 고용인-피고용인의 관계로 보이지는 않게 하는 대목이다. 이 같은 상황이 일반적일까.

조 보좌관은 "상대적으로 새누리당보다 민주당 내에서,'고용인-피고용인'의 계약 관계가 아닌 동지적 관계의 비율이 높은 건 사실"이라며 "또 민주당은 '정치적 지향'을 중시하다 보니, 아무래도 당에 대한 애정이 더 강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를 가늠할 상징적 사건이 있었다. 18대 국회 때 여야 보좌진 협의회에서 각 의원실 당 5급 비서관 인원을 1명씩 증원하자는 요구가 일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흔쾌히 동의를 표했지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지도부는 반대했다. "저 쪽은 싸우는 사람이 87명(당시 민주당 의석수) 더 느는 거 아니냐"는 것이 이유였다. '우리 쪽이 170명(당시 한나라당 의석수) 더 느는 거 아니냐'는 반문에 "우리 170명 느는 것보다 저 쪽 87명 느는 게 더 무섭다"는 취지의 답변이 돌아왔다. 여당 내에서는 비서관들이 전적으로 '우리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증원은 무산됐고, 다음 지도부에서야 겨우 관철됐다.

여야 모두를 경험한 한 새누리당 보좌관은 "새누리당은 주종 관계고, 민주당은 동지적 관계"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에 참석한 조형국 보좌관이 진성준 의원과 함께 국정원 개혁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에 참석한 조형국 보좌관이 진성준 의원과 함께 국정원 개혁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진성준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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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주당 내에서도 이 같은 동지적 관계가 흐려지고 있다. 조 보좌관은 "18대 초반까지는 당의 진로에 대한 보좌관들 나름의 고민이 있었고 이를 나누는 모임이 많았는데 점차 없어졌다"며 "의원들이 전문 영역에 있는 사람을 보좌관으로 채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동지 관계보다는 계약의 느낌, 성과를 위한 전문성이 강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진 의원은 "보좌관에게 우선 필요한 건 큰 지향을 함께하는 동질감"이라며 "상임위나 법안 개수로 의원이 평가를 받게 되니 전문가 채용을 늘리는 건 이해하지만, 바람직한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장영달 의원실에서 형국씨에게 보좌관을 물려주고 떠날 때 '의원과 동지적 관계로 일하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의원이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할 땐 원칙을 선택하게 조언하라'고 얘기했었다, 나도 그런 생각으로 보좌관을 해서 그나마 생명력이 길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그림자지만, 의원이 빛나야 우리도 빛난다"

조 보좌관의 이 같은 고민은 민보협 회장 출마로 이어졌다. 진 의원은 "원래 보좌관 협의회 회장은 국회 부의장실 보좌관 등이 했고, 난 초선에다 비례대표 의원인데…"라는 생각에 조 보좌관이 전면에 나서는 걸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손을 든 건 진 의원이다. 그는 "의원들의 당적 결사 수준이 형편없는 상황에서 당직자와 보좌관의 결사가 중요한데 그걸 조직할 리더십을 갖춘 사람으로 형국씨가 신임을 받고 있더라, 또 형국씨 역량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민보협 회장에 출마하며 조 보좌관이 강조한 건 '민보협만의 목소리'였다. 조 보좌관은 "당의 의사 결정에 대해 민보협이 목소리 내는 것이 굉장히 약해졌다"며 "당이 표를 원해 결정할 때 원칙적인 목소리를 내자는 것이 내 공약이었다"고 말했다.

조 보좌관의 또 다른 목표는 공직선거 출마 시 보좌진들에게도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 있다. 그는 "보좌진 출신들이 지난 지방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후 의정활동도 굉장히 잘하고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훈련이 돼있다"며 "그런데 당에서는 보좌진이 선출직에 진출하는 데 배려를 그다지 해주는 편이 아니다, 이에 대한 배려를 이끌어 내고싶다"고 말했다. 선출직 선거에 출마할 시, 청년·여성·장애인 뿐 아니라 당직자에 대한 가산점 제도가 있지만 보좌진에게만 가산점이 적용되지 않는 현실을 바꿔보고 싶다는 것이다.

진 의원도 "은평구청장, 성남시장 등 진보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보좌진 출신 단체장들의 활약도 대단하다"며 "선거 치를 때만 다가오면 외부에서 사람을 끌어오는데, 당에서 훈련 받은 사람이 정치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의 출마 의사를 물어보니 조 보좌관은 "나갈 주변머리도 없고, 아직 생각이 없다"며 손사래쳤다. 현재 보좌관으로서의 목표는 "진성준 의원을 잘나가는 정치인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고 한다. 그는 "진 의원이 나를 자르기 전까지는, 뒤에 숨어서 진 의원을 유력 정치인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며 "우리는 그림자지만 의원이 빛나야 우리도 빛난다"고 말했다.

그러며 "진 의원은 5를 주면 10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며 한껏 치켜세웠다. 그러자 진 의원은 "동지들은 5개를 준다는데, 사실은 100개 쯤 준비한다"며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할 때도, 나는 무기중개상 부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팠는데 그 외의 부동산 의혹 등도 우리 방 동지들이 다 준비를 해줘서 관련 자료가 방에 이만큼 쌓여 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진 의원은 "시간도 부족하고 내가 능력이 부족해 질문거리를 다 못 써서 그렇지, 그것만 충분히 썼으면 김병관 후보자는 완전 박살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창부수다.

그러더니, 조 보좌관이 술을 섞는 비율이 마음에 차지 않은 진 의원이 "이렇게 비위 관리도 못한다"며 퉁을 준다. 이에 질세라 조 보좌관은 "나만큼 잘하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적절하게 긴장도 주고"라며 소주를 더 부었다. 역시나 부창부수다.


태그:#조형국, #진성준, #나는 보좌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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