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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면 제일 먼저 내걸리던 금줄이지만 요즘은 보기 힘들어 졌습니다.
 아기를 낳면 제일 먼저 내걸리던 금줄이지만 요즘은 보기 힘들어 졌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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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등학생들에게 "'금줄'이 뭔 줄 알아?" 하고 물으면 "'금으로 만든 줄'"이라고 답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청사초롱 밝히고 온 동네 떠들썩하게 하던 함진아비, 조금은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고 들어가니 못 들어가니 하며 흥정인지 실랑인지를 벌이던 함진아비도 보기 힘든 모습이 된 지 오래입니다.

누런 삼베로 지은 상복을 입은 상제들이 몇날 며칠이고 '애고' 거리며 하던 곡소리가 끊이지 않던 상가, 장정들 어깨 위에서 나풀거리던 알록달록한 상여 행렬, 산천자락을 휘감던 구성진 상여소리, 통곡소리처럼 들리던 달구질소리도 이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옛 모습이 되었습니다.

많이 변했습니다.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았던 풍습들, 대소사가 벌어질 때마다 펼쳐지던 절차와 방법들이 몇 십년 사이에 참으로 많이 달라졌습니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누구네 집에서 아기를 낳았다 하면 제일 먼저 내걸리는 게 금줄이었습니다.

아들이면 고추가 달린 금줄을 치고, 딸을 낳으면 숯덩이와 솔가지만 달린 금줄을 쳤습니다. 집에서 기르던 던 어미 소가 송아지만 나도 쳤던 게 금줄일 정도로 흔했던 게 금줄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든 게 금줄입니다. 혼례를 올리는 모습도 그렇고, 제사를 지내거나 장례를 지내는 광경도 단기간 내 너무나 많이 변해 있습니다.

문화가 완전히 바뀌는데 소요되는 관성 기간이 100년쯤 된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의 시작을 조선시대 문화에서 현대문화로 바뀌기 시작한 기점으로 본다면 오늘날 문화는 조선시대문화와는 궤도가 완전히 달라진 문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가 살아온 세월이 문화가 달라지는 변곡점을 넘어 하향으로 쏠리는 시대에 포함되어서 이렇듯 가파른 변화로 체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의례 변천사를 조명하고 있는 <일상 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

<일상 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편저자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펴낸곳 채륜┃2013.07.10┃2만 2000원
 <일상 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편저자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펴낸곳 채륜┃2013.07.10┃2만 2000원
ⓒ 채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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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편저, 채륜에서 펴낸 <일상 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은 한국인들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거치거나 치르게 되는 출산, 혼인, 상례등과 같은 일상의례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인의 삶에 어떻게 투영되며 변화해 갔는지를 분야별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11명의 연구자(집필진)들이 분야별 의례에 대해 시대별 기록과 통계를 바탕으로 해 시대의 변천에 동반하고 있는 의례 변천사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일본 강점기 전후의 일상의례가 현대 일생의례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충분한 자료라 생각됩니다.

문화전통이란 전통문화를 지속적으로 향유하면서 새로 유입된 외래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전통은 주변 민족과의 접촉과정에서 재래문화와 오래문화의 대립과 수용과정을 통해 다양한 지속과 변용의 양상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 <일상 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 11쪽

어쩌면 우리는 '전통'이라는 말을 너무 남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정도 규모 있게 치러지는 행사장엘 가면 빠지지 않는 게 '전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행사입니다. 무슨무슨 전통, 어떤어떤 전통 방식, 전통 뭐뭐 등등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조금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현대적 방식이나 방법, 재료 등이 반영돼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책에서는 이를 '문화전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류와 시속, 가치와 풍습을 아우르는 능동적 문화, 한국인의 삶에서 계승되던 일생의례가 시대변천에 따라 어떻게 재현되며 변모해 갔는지를 알려면 전통문화와 문화전통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줄문화에 관해 우리의 사례에서 보면 전체 30사례 중 14사례에서 금줄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표 1 참조). 이러한 수치는 어머니 세대의 경우 금줄 문화는 거의 발견되지 않으나, 할머니 세대는 43%가 금줄을 친 것으로 나타난 연구 결과69와 비슷하다. 금줄을 한 14사례 중 딸을 낳았을 때 금줄을 친 경우는 4사례인데 이 중 2사례에서는 고추까지 매달았다. 물론 본인이 아니라 시댁의 행위일 수도 있지만 이 두 사례가 모두 중졸의 학력을 가진 것으로 보아 당시 고학력자들도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음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일상 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 103쪽    

예전에는 수수팥떡 등을 올려 놓고 집안에서 치렀지만 요즘은 돌잔치도 전문 이벤트사 진행으로 치러집니다.
 예전에는 수수팥떡 등을 올려 놓고 집안에서 치렀지만 요즘은 돌잔치도 전문 이벤트사 진행으로 치러집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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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줄문화에서 볼 수 있는 건 단순히 금줄을 쳤느냐 치지 않았느냐, 몇 %가 금줄을 쳤느냐와 같은 정량적인 결과만이 아닙니다.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에 따른 세대 구분, 세대 구분에 따른 변화와 그에 따른 의식 차, 고학력에 대한 기준 변화, 아들과 딸에 대한 선호사상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는 것을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60년대 초만 해도 시골마을에는 대학생이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귀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대학교육이 보편화되면서 대학생(졸업자) 없는 집이 드뭅니다. 대학교육이 보편화 된 요즘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물론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고학력자로 구분하려면 조금은 어색합니다. 하지만 출산의례로 금줄이 보편화 되던 시대에는 중졸 학력이 고졸로 구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딸보다는 아들이 선호되던 시대였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장은 '신당동화장장'

연구자들은 그 당시의 의례를 기록하고 있는 기록물들을 찾고, 언론에 보도되었던 기사들을 발굴해 싣는 것은 물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설문 등)로 책의 내용을 좀 더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살찌워 놨습니다.  

연지곤지를찍은 신부, 사모관대를 한 산랑도 요즘은 보기 힘든 모습이 되었습니다.
 연지곤지를찍은 신부, 사모관대를 한 산랑도 요즘은 보기 힘든 모습이 되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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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예식부 주인인 채 여사는 신부를 웬만큼 꾸미려면 50~60원이 든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시 혼례식장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던 부민관과 조선일보사 강당, 공화당 같은 큰 곳은 식장설비만 30원이고 신부 단장에 40원 가량이 들며, 부민관 소강당 식도원, 그리고 일본청년회관 같은 곳은 식장설비가 20원에 신부 치장이 20원 도합 40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일상 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 209쪽

이에 따라 1902년 고양군 한지면 신당리 수구문(水口門) 밖 송림에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일본식 화장장이 세워진다. '신당동 화장장'이라 불렸던 이 화장장은 일본 영사관에서 한성부윤과 교섭하여 수구문 밖에 70여평의 땅을 빌리고 거류민들의 기부금을 모아서 건립한 것으로 되어 있다. - <일상 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 303쪽

혼수비용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입니다. 요즘은 누군가가 돌아가셨을 때 집에서 장사를 치르는 집도 거의 없습니다. 함을 팔고 사는 것도 볼 수 없지만 이를 어색해 하는 집도 별로 없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화장하는 율도 70%가 넘었다고 합니다.

수수팥떡을 해놓고 집안에서 치르던 돌잔치도 요즘은 전문 회관에서 이벤트로 진행됩니다. 집안망신처럼 여겨졌던 혼전임신이나 이혼도 요즘은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세월만 흘러가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치르는 의례도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집안에 차려지던 상청은 정말 보기 힘든 모습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집안에 차려지던 상청은 정말 보기 힘든 모습이 되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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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을 광중에 넣고 땅을 다지는 달구질(회다지) 모습입니다. 매장문화에서 화장문화로 바뀌며 보기힘든 관경이 되었습니다.
 관을 광중에 넣고 땅을 다지는 달구질(회다지) 모습입니다. 매장문화에서 화장문화로 바뀌며 보기힘든 관경이 되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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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구구식으로 기억되거나 구전으로만 전달되는 역사는 자칫 주관적일 수도 있고, 왜곡될 수도 있고, 누락될 수도 있습니다. 시대적 가치와 시대상을 함축하고 있는 일상의례의 변천사야 말로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시대적으로 공감하던 중요한 문화이자 역사입니다.  

책은 조선인의 삶에 투영되었던 일상의례가 역사적 격변기라 할 수 있는 개화기와 일제강기를 거치며 현대 의례로 이어지며 변모해 가는 과정을 의례(출산, 혼례, 상례 등)별로 잘 정리하고 있어 근대 한국인의 삶에 투영되고 있는 일상의례 변천사, 조선시대 일상의례가 현대 일상의례로 변모해 나가는 과정을 규명하고 연구하는데 필요한 학술적 자료로의 활용이 기대됩니다. 

<일상 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은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진행된 연구결과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재단에서 연구비를 좀 더 지원해주거나 원고료를 좀 더 책정해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일상의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자료 등을 발굴해 덧붙였다면 훨씬 더 충실한 결과물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일상 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편저자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펴낸곳 채륜┃2013.07.10┃2만 2000원



태그:#일상 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채륜, #일상의례, #상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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