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했던 출발에 비하면 다소 초라한 마무리였다. 홍명보호 1기가 첫 출항무대였던 2013 동아시안컵에서 2무 1패라는 성적표로 마감했다. 중국-호주와의 1, 2차전을 0-0으로 비긴 홍명보호는 일본과의 3차전에서 1-2로 석패하며 최종순위 3위에 그쳤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이끈 최강희 감독의 후임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물려받은 홍명보 감독의 첫 화두는 '분위기 전환'이었다. 지난 최종예선에서의 부진과 파벌 논란 등으로 어수선한 대표팀 분위기를 추스르고 1년 앞으로 다가온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대비한 세대교체와 리빌딩이 시급한 과제였다.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다. 한국축구의 레전드 출신이자 런던올림픽 동메달 신화로 검증받은 홍명보 감독의 등장은 역대 어느 대표팀 감독보다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단번에 대표팀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홍명보호 출범과 맞물려 기성용의 SNS 파문 같은 악재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홍 감독이 대표팀 운영의 주도권을 잡고 초반부터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데 합당한 명분을 주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홍명보 감독은 '원 팀, 원 스피릿, 원 골'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하며 대표팀이 추구해야 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고, 복장 규정을 도입하는 등 흐트러진 기강 다잡기에도 나섰다. 이러한 홍 감독의 등장과 경쟁체제의 부활은 침체됐던 대표팀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는 데 일단 성공했다.

홍명보호 1기, 동아시안컵에서 무엇을 얻었나

홍명보호 1기는 국내파와 J리거 위주로 꾸려졌다. 규정상 유럽파를 차출할 수 없었던 이번 동아시안컵에서 홍명보 감독은 이동국, 이근호, 곽태휘 등 지난 월드컵 예선전의 주역들이자 차출가능한 베테랑들도 대부분 제외했다. 유일한 30대는 최고참 염기훈뿐이었고, 대표팀 평균연령은 24.7세에 불과했다. 대신 홍명보 감독과 함께한 경험이 있는 올림픽대표팀 출신(16명)과 A매치 경험이 전무한(6명) 젊은 K리거들이 대거 홍명보호 1기에 합류했다. 홍명보 감독은 이번 동아시안컵의 목표를 당장의 성적보다 브라질 월드컵과 그 이후를 대비한 실험에 두고 있음을 시작부터 분명히 드러냈다.

홍명보 감독은 1기에 승선한 23명의 선수 중 골키퍼 이범영을 제외하고 모든 선수를 고르게 기용하며 점검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역시 윤일록(서울)이었다. 윤일록은 골키퍼 정성룡을 제외하고 필드 플레이어로는 유일하게 3경기 모두 선발출전했으며, 일본전에서는 멋진 중거리슛으로 홍명보호의 유일한 득점까지 기록했다. 측면 공격수는 물론이고 처진 스트라이커까지 소화하는 폭넓은 움직임으로 현재 유럽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대표팀에서 국내파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젊어진 포백 라인도 주목할 만하다. 올림픽팀 출신 멤버들이 수비의 주축이 된 홍명보호는 3경기에서 단 2골을 내주는 데 그치며 비교적 안정적인 조직력을 보여줬다. 홍정호의 복귀로 수비라인에 새로운 리더를 찾았고, 김진수, 이용 등 새로운 얼굴들의 성과도 확인했다. 중국과 호주전에서는 다른 라인업으로 포백을 구성했음에도 조직력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다만 한일전에서 역습으로만 2골을 내준 장면은 다소 아쉬웠다.

반면 공격라인은 확실히 유럽파와 베테랑의 공백을 드러내며,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못했다. 홍명보호 1기의 공격수 중 김동섭과 서동현은 문전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고, 3경기 모두 교체출전한 김신욱은 홍명보호에서도 여전히 공중볼싸움을 위한 '헤딩 노예'에 머물렀다. 2선에서도 염기훈, 고요한, 조영철 등이 위협적인 움직임이나 연계플레이을 보여주지 못하며 최전방 원톱 공격수가 자주 고립되는 모습을 보였다.

중앙 미드필드진은 압박과 활동량은 좋았으나, 전체적으로 경기를 조율해줄 수 있는 플레이메이커의 부재가 아쉬웠다. 중국전에 나선 한국영-박종우 조합은 수비에 비해 공격전개 능력은 떨어졌다. 호주와 일본전에 나선 하대성-이명주 조합은 좀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지만 패스의 세밀함이 다소 부족했고 일본전에서는 지나치게 전방까지 올라갔다가 도리어 역습의 빌미를 내주기도 했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용두사미가 된 동아시안컵

일본 골키퍼에 막혀 아쉬워하는 고무열 한국 축구 대표팀의 고무열이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일본과의 경기에서 골키퍼 니시가와 슈사쿠가 볼을 막아내자 아쉬워하고 있다.

▲ 일본 골키퍼에 막혀 아쉬워하는 고무열 한국 축구 대표팀의 고무열이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일본과의 경기에서 골키퍼 니시가와 슈사쿠가 볼을 막아내자 아쉬워하고 있다. ⓒ 유성호


이번 동아시안컵을 치르면서 매경기마다 요동치던 여론의 온도차는 주목할 만하다. 호주와의 1차전 직후만 해도 다소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섣부른 찬양 일색의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비록 승리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홍명보 감독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높았던 데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새롭게 조직된 대표팀치고는 상당히 준수한 경기 내용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전을 거치면서 분위기는 점점 달라졌다. 동아시안컵의 목표가 실험이라고 해도 중국과 일본전은 여론상 결과도 무시할 수 없는 경기였다. 그런데 중국전에서 홍 감독이 선발 멤버를 무려 9명이나 교체한 것은 사실 승리에 대한 의지와는 거리가 있는 대목이었다. 무승부라는 결과는 같았지만 호주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내용도 그리 좋지못하다 보니 반응이 좋지 못했다.

특히 최종 한일전마저 패한 것은 타격이 컸다. 이탈리아 출신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부임한 2010년 이후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A매치 4연속 무승(2무 2패)에 그치고 있다. 지난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 이후 또 한번 안방에서 아시아의 라이벌에 일격을 당했다는 굴욕감도 홍명보호의 첫 출항을 결국 용두사미로 만든 꼴이 되었다.

대회 내내 계속된 답답한 골결정력과 경험 부족은 결국 홍명보호의 발목을 잡았다. 3경기내내 주도권을 잡고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양상이 반복됐다. A매치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와 국내파 위주로 구성되었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다른 참가국도 마찬가지였다. 월드컵 본선진출에 실패한 중국만이 베스트멤버에 가깝게 구성되었을 뿐 호주와 일본은 사실상 자국언론에서도 인정했듯이 2군에 가까운 멤버들이었다. 반면 한국은 어쩔 수 없는 해외파와 베테랑의 부재를 절감해야 했다.

실험도 좋지만 기왕이면 좀더 경쟁력 있는 라인업을 통해 성적과 자신감이라는 수확도 얻었으면 어땠을까. 홍명보 감독 취임 이후 첫 승 신고에 실패하고 최강희호 시절까지 포함한 A매치 연속 무승(4경기) 기록을 덤으로 떠안게 된 것은 앞으로의 행보에 부담이 될 소지가 분명하다.

그래도 목표는, 동아시안컵이 아니라 월드컵

[한-일전] 선수들 격려하는 홍명보 감독 한국 축구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지시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 [한-일전] 선수들 격려하는 홍명보 감독 한국 축구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지시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대회 결과에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는 없다. 홍명보호가 정식으로 출범한 지는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고, 이번 동아시안컵은 결과가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완전히 새로운 감독과 새로운 선수들을 중심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팀에서 필요한 것은 시간과 인내다.

동아시안컵에서 드러난 한국형 축구의 핵심은 바로 압박과 속도였다. 강한 체력과 콤팩트한 압박, 빠른 리듬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과정은 잠시나마 한국축구가 가장 좋았던 시절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홍명보 감독은 부임과 함께 "한국형 축구로 세계무대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눈길을 끌었다. 동아시안컵에 얻은 진정한 수확이라면, 바로 잃어 버린 한국축구만의 색깔을 되찾을수 있다는 희망이다. 물론 완성형은 동아시안컵이 아니라 내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통하여 확인할 것이다.

어차피 홍명보호의 진정한 적은 일본도 중국도 아니다. 바로 조급함과 의심이라는 '내부의 적'이 더 두렵다. 동아시안컵 내내 쏟아진 홍명보호에 대한 과도한 찬사나 성급한 비난은 그 어느 쪽도 대표팀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홍명보는 마법사도 구세주도 아니다. 한 명의 감독으로서 눈앞의 1년 이후 내다보고 자신만의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진정한 평가는 최소한 월드컵이 끝난 뒤에 해도 결코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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