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더 울버린>의 주연배우인 휴 잭맨이 15일 오전 서울 한남동의 한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영화 <더 울버린> 주연배우 휴 잭맨 내한 당시 ⓒ 이정민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일본은 주는 것 없이 미운 나라다. 아니 주는 것이 너무 많아서 미운 나라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싶다. 축구 한일전은 반드시 이겨야 하며, 가급적 일본 제품은 구매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자발적 의지는 비단 과거사의 상처 때문만은 아니다. 끊임없이 독도 문제를 거론하고, 여전히 제국주의에 빠져 단 한 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현재 일본의 태도를 도저히 예쁘게 봐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 더 이상 지거나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는 한국을 여러 분야에서 최고로 만들어주었다. 전자제품 산업에서 1위는 이제 '소니' 가 아니라 '삼성' 이다. 올림픽에서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다. 밀레니엄 이후 최고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이제 일본은 한국의 적수가 못 된다.

50년 전 사카모토 큐의 빌보드 점령은 싸이에 의해 허물어졌고, J팝에 열광하던 이들은 한류라는 초대형 범선을 타고 밀려오는 K팝의 등장 이후로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아시아 영화를 들여다보는 세계의 눈은 이제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겨졌다. 각종 영화제에서의 수상 기록이 일본을 앞질렀다는 사실은 세계의 관심이 한국영화에 쏠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한국영화시장의 몸집은 비대해지기 시작했고 (비록 거품이라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속출하고 있지만) 결국 그 성장(?)의 결과물로 안으로는 수 편의 천만관객 영화들을, 밖으로는 할리우드 대작들의 홍보차 방한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영화계의 가시적인 위엄과 현격한 위상이 드러난 단편적인 예라고 언급해도 좋을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 <더 울버린> 의 배경이 일본이라는 소식은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괜스레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자 치면 할리우드가 선택할 도시는 도쿄가 아니라 서울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울버린은 한국에서도 꽤 인기가 높았던 <X맨> 시리즈의 주인공이고, 이를 연기하는 휴 잭맨의 호감도는 <레미제라블> 이후 더욱 급상승하고 있지 않았던가.

일본의 거대자본이 유입되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위안을 삼으려 했지만, 사실무근이라는 현실에 야속함은 더해져만 갔다. 그렇다면 스토리상 반드시 일본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까지도 할리우드는 일본의 문화가 동양의 문화를 대표하며, 일본을 배경으로 삼는 것이 더욱 매력적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울버린' 이 상영될 스크린 앞에서 이런 비약적인 사고는 이내 떨쳐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영화는 3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야속함을 안도감으로, 괘씸함을 다행스러움으로 바꾸어 놓고 만다. 쓸데없이 질투를 한 것이었고, 부러워할 일이 전혀 아님을 오래 가지 않아 알려주고 말았다. 오히려 한국이 아닌 일본을 배경으로 한 것이, 서울이 아닌 도쿄를 선택한 것이 얼마나 천만다행한 일인가 하며 가슴을 쓸어 내리게 했다.

 '울버린' 휴 잭맨

'울버린' 휴 잭맨 ⓒ MARVEL


한 마디로 <더 울버린> 은 졸작이다. 휴 잭맨의 연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연출력도 이만하면 수준 이하라고 말하긴 힘들다. 문제는 스토리였고, 어설픈 오리엔탈리즘이었다. 굳이 울버린은 도쿄에 갈 이유가 없었다. 나름 꾸미고 포장하고 다듬기는 했지만, 이야기의 배치가 너무나도 억지스럽고 조악하기만 하다. 이야기가 허술하니 아무리 휴 잭맨이 근육을 키우고, 현란한 카메라 워킹과 CG로 화면을 채운다 해도 완성도는 바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울버린은 도쿄뿐만 아니라 일본 구석구석을 유람하며 마치 일본관광 홍보대사인 듯 사방팔방을 누비고 다닌다. 그런데 그거라도 해야만 일본에서 개봉 결정이 떨어질 법했다. 핵폭격에 처참해진 일본인들의 상처를 그리는가 싶더니, 결국 제국주의도 모자라 영원한 삶까지 가지려는 무모한 종족이라는 낙인으로 영화를 마무리해버리고 말았으니까. 순간 과연 일본관객이 얼마나 들 수 있을까 걱정스러워졌다. 

거기에 이야기가 막장스럽기까지 하다. 마치 한국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출생의 비밀이 있고, 삼각, 사각관계가 있고, 치정이 있고, 음모가 있다. <X맨> 의 리더이자 뮤턴트의 대표주자인 울버린의 과거를 우스꽝스러운 막장 코드로 엉망진창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실소는 분명 창피한 줄도 모르고 버젓이 그려나가고 있는 터무니없는 막장스토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더 울버린> 제작진들이 한국을 선택하고 서울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작정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간담이 서늘해진다. 모르긴 몰라도 별반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야기를 짜내는 힘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서울을 날아다니는 울버린도 그저 나이 많은 근육 덩어리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으니까.

어쩌면 <더 울버린> 의 감독과 제작진은 계획적으로 일본을 디스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할복자살을 애국심이 아닌 염세주의로, 경제적 발전을 영원을 꿈꾸는 헛된 욕망으로, 야쿠자를 단순한 조직폭력배가 아닌 모든 악의 근원으로 그리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더 울버린> 의 배경이 일본이라는 점 때문에 기분 상할 필요는 없다. 그 의도가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선입견과는 정반대이기만 하니까. 아마도 이 영화를 끝까지 보기 힘들어하는 이들은 한국인들 보다는 일본인들일 것이다.

 '울버린' 휴 잭맨

'울버린' 휴 잭맨 ⓒ MARVEL



울버린 휴 잭맨 울버린 배경 울버린 도쿄 X맨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