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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오키나와(沖繩) 나하(那覇)의 슈리성(首里城) 아래, 이시타다미미치(石畳道) 답사를 끝내고 잠시 숨을 돌렸다. 나는 아내에게 오키나와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여러 오키나와 정보를 검색한 끝에 오늘의 저녁식사로 아시비우나(あしびうなぁ)를 찾아가기로 결정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본 많은 정보에서 이 아시비우나 식당은 오키나와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슈리성에서 가까운 이 식당은 우리가 출발한 이시타다미미치에서 보면 슈리성 건너편에 있었다. 걸어서 갈 수도 있는 곳이지만 이시타다미미치에서 많이 걸었고 식당의 정확한 위치도 잘 몰라서 우리는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오후의 날씨는 제법 더웠고 그늘이 없어서 더위에 대한 걱정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슈리성 아시비우나는 슈리성을 둘러본 후에 올만한 이름난 식당이다.
▲ 슈리성 아시비우나는 슈리성을 둘러본 후에 올만한 이름난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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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큰 길 가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택시를 탔지만 택시기사는 예상과는 달리 우리가 가려는 아시비우나라는 식당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이 식당의 위치에 대해서 아는 것은 이 식당이 슈리성 아래, 오키나와 현립예술대학 근처에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나는 기사 아저씨에게 이 식당이 슈리성 아래, 대학 근처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는 어느 대학 근처에 있는지 나에게 다시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의 '현립예술' 일본어 발음이 뭔가 잘못된 모양이다. 이 근처에 큰 대학은 현립예술대학밖에 없는데 대학명을 물어보는 것도 나를 당황하게 했다.

나이 지긋하신 이 기사 아저씨는 자기 핸드폰을 빼 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택시기사들에게 목적지 정보를 제공해주는 어딘가에 전화를 하는 것 같다. 아시비우나 식당이 관광책자에도 소개된 워낙 유명한 식당이라서 동네 주민이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다 아는 식당이라고 들었는데, 아마도 택시를 타고 이 '아시비우나'라는 식당을 찾아갔던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아시비우나 민가를 개조하여 류큐의 전통요리를 파는 훌륭한 식당이다.
▲ 아시비우나 민가를 개조하여 류큐의 전통요리를 파는 훌륭한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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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한국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류큐(琉球) 전통의 요리 전문점이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는 그리 특별한 식당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식당 위치를 알아낸 기사 아저씨는 우리에게 식당을 "찾았다"고 좋아하며 OK 사인을 그려서 보여주었다. 그는 나의 잘못된 일본어 발음도 고쳐주면서 웃었다.

택시의 차창 밖으로는 오키나와 관광 1번지 슈리성이 지나가고 있었다. 슈리성을 보니 이 아시비우나 식당은 슈리성을 둘러보고 들르기에도 좋은 위치에 있다. 택시기사는 자랑스럽게 차를 몰아 식당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고 우리는 그 유쾌한 택시 기사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아시비우나 입구 마치 민가를 들어가는 듯 한적한 입구이다.
▲ 아시비우나 입구 마치 민가를 들어가는 듯 한적한 입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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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비우나는 민가를 개조해 만든 곳이라서 담장도 예쁘고 입구부터 분위기가 남다르다. 식당 입구로 들어서니 마치 가정집을 들어가는 듯하다. 식당 입구에서 기다리던 종업원이  우리를 안내한다. 손님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에는 한참 대기해서 들어간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가 도착한 저녁 시간에는 손님들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그 아가씨의 안내대로 우선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었다. 식당 좌석은 복도를 따라 입구 좌측 안쪽에 많은 다다미방이 있고, 입구 오른쪽에는 정원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는 테라스 같은 자리가 있다. 안내하는 아가씨가 어디에 앉겠느냐고 물어서 우리는 당연히 정원을 바라보며 앉겠다고 했다. 정원을 바라보는 자리가 훨씬 포근해 보였다.

아시비우나 다다미방 집의 실내에서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은 이 다다미 방을 이용한다.
▲ 아시비우나 다다미방 집의 실내에서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은 이 다다미 방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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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메뉴판에는 전통 류큐의 요리들이 가득 망라되어 있으나 우리 두 명이 몇 가지 요리밖에 주문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메뉴판에는 친절하게도 음식을 찍은 컬러 사진과 함께 음식 이름이 설명되어 있는데, 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순서대로 적혀 있다. 그만큼 이 유명 식당에 이 네 나라의 여행객이 많이 찾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미국, 중국, 한국이 이 오키나와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나라이기도 하려니와 현재도 오키나와를 찾는 외국 관광객들이 이들 나라들일 것이다.

아시비우나 정원석 바라보이는 정원의 정경이 명품이다.
▲ 아시비우나 정원석 바라보이는 정원의 정경이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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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선 이 식당의 대표작, 오징어먹물면 야끼소바인 이카스미멘야끼소바(いかすみ麵焼きそば)를 주문했다. 이 음식은 오키나와의 유명한 음식임에도 예상 외로 음식 값은 저렴했다. 오키나와 특유의 쓴 오이인 고야(ゴーヤー)를 위주로 야채와 두부를 지져서 무친 고야 찬푸루(ゴーヤー チャンプルー)를 추가로 주문하려고 하였으나, 바로 우리 옆자리에 앉은 일본 사람들이 먹는 오키나와 비빔밥이 아주 맛있어 보였다. 아내도 저 비빔밥을 같이 주문해보자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오키나와 비빔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문했다.

돼지고기 비빔밥 달걀로 비비는 오키나와 스타일의 비빔밥은 감칠맛이 난다.
▲ 돼지고기 비빔밥 달걀로 비비는 오키나와 스타일의 비빔밥은 감칠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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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위에는 삶아서 기름을 쫙 뺀 돼지고기가 가득 놓여 있고 날달걀과 함께 잘게 자른 파를 얹었다. 뚝배기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뚝배기 모양인데 따뜻한 밥에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주고 있다. 비빔밥을 이대로 손님들이 비벼서 먹는 줄 알았는데 식당의 종업원 아가씨가 직접 와서 날달걀을 이리저리 저으며 열심히 비벼준다. 이 아가씨가 솜씨 있게 밥을 비비는 모습에 사진기를 빼어들었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마도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이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빔밥 비비기 숙달된 종업원이 직접 비빔밥을 비벼준다.
▲ 비빔밥 비비기 숙달된 종업원이 직접 비빔밥을 비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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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위에는 정말 많은 돼지고기들이 쌓여 있다. 오키나와에서는 고기요리라고 하면 돼지고기 요리를 말할 정도로 오키나와 사람들은 음식재료로서 돼지의 모든 부위를 사용한다. 그리고 오키나와의 전통 돼지고기 요리에서는 돼지고기를 튀기거나 굽지 않고 대부분 푹 삶아낸다. 돼지고기에서 몸에 좋지 않은 동물성 지방을 모두 제거하기 때문에 오키나와는 고기를 즐기면서도 최근까지 세계 최장수촌을 유지해왔던 것이다.

기름기가 쫙 빠진 삶은 돼지고기에서는 담백한 맛이 난다. 아무래도 오키나와의 음식문화는 깔끔한 일본음식보다는 양도 많고 혀에 닿는 맛이 다양한 중국 음식 쪽에 가깝다. 뚝배기에 담겨서 따뜻하게 비벼먹는 모습은 우리나라 음식 문화와도 많이 닮아 있다. 달걀과 함께 비빈 따뜻한 비빔밥은 간도 적당히 되어 있고 맛깔스러운데 그 맛이 우리나라 비빔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와 아내는 정원을 바라보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 밥을 먹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식당 정원에 초록색 녹음이 우거져 있다. 흔히 보기 힘든 아름다운 정원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정원의 흰 모래는 물결무늬를 그리며 정갈하게 빗질이 되어 있다. 아늑한 분위기 속의 작은 정원은 작은 자연을 들여다 놓은 듯하다. 나와 아내는 해가 지기 시작하는 조용한 정원을 감상하면서 류큐의 음식을 만났다.

오징어 먹물면 야끼소바 오징어 먹물로 면을 만든 이 소바는 맛이 정말 독특하다.
▲ 오징어 먹물면 야끼소바 오징어 먹물로 면을 만든 이 소바는 맛이 정말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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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스미멘 야끼소바는 이름대로 오징어 먹물로 면발을 만들었기 때문에 면이 검정색이다. 이 검은 면발은 흰 빛깔의 숙주나물과 잘 버무려져 있다. 얼핏 보면 하얀 숙주나물이 면발같이 보이기도 한다. 내가 봤던 오키나와 소재의 한 유명 드라마에서는 여주인공이 오징어 먹물 야끼소바를 먹자 입 주변에 검은 오징어 먹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징어 먹물면을 아무리 먹어도 입주변이 검게 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면을 먹어보았지만 이 면의 맛은 정말 처음 맛보는 맛이다. 검은 색깔 때문에 자장면같이도 보이지만, 그 맛은 자장면 맛도 아니고 스파게티 맛도 아니다. 밀가루면에 무언가를 발라놓은 듯한 독특하고 깔끔한 맛이다. 향신료나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는다고 하니 맛도 담백하다. 게다가 검정색 면발 위에 검정색에 가까운 진녹색의 김 가루가 뿌려져 있어서 감칠맛이 난다. 정말 세상에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음식들이 있었다.

오리온 맥주 오키나와 특산의 오리온 맥주는 더운 날의 갈증을 씻어준다.
▲ 오리온 맥주 오키나와 특산의 오리온 맥주는 더운 날의 갈증을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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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의 정원을 바라보며 먹는 기분은 상쾌하고 류큐의 전통을 전승해온 음식은 예상보다도 훨씬 더 훌륭하다. 나는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비웠다. 운전을 할 일도 없기 때문에 나는 오키나와 특산 맥주인 오리온 맥주를 주문해서 들이켰다. 기분이 좋은데 알코올이 들어가니 기분이 더 좋아진다. 이곳은 외국, 오키나와이고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식당 안에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앉아 있었다.

아시비우나 정원 정갈한 흰 모래 위로 녹음이 우거져 있다.
▲ 아시비우나 정원 정갈한 흰 모래 위로 녹음이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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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져서 우리 앞의 정원에는 조금씩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나는 오리온 맥주 한 잔을 더 마셨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일본여행#오키나와#나하#아시비우나#오징어 먹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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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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