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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케이블 채널 광고로 화제가 된 '장미칼'이라는 상품이 있다. 소뼈나 꽃게, 심지어 쇠파이프와 자물쇠까지 자르는 강력한 칼이라는 과장된 광고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커뮤니티에서는 패러디물의 소재로 이용되기도 했다.

JTBC <썰전-독한 혀들의 전쟁>(이하 <썰전>) 2부 코너 '예능 심판자'는 대중문화에 대해 강력한 '장미칼'을 휘두른다. 하나의 큼직한 재료를 정한 다음, '싹싹' 잘라서 먹기 좋게 다듬고, 5명 출연진들이 함께 모여서 요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존의 방송에서 쓰지 않던 재료인 '대중문화 전반'을 다루는 것은 위험한 시도였다. 그러나 젊은 층의 반응이 뜨겁고, 시청률 또한 2.5%가 넘어서는 지금 시점에서 <썰전>의 도전은 시청자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예능 심판하는 예능, 새 영역을 개척하다

 종합편성채널 JTBC <썰전-독한 혀들의 전쟁> 2부 '예능 심판자'의 한 장면.

종합편성채널 JTBC <썰전-독한 혀들의 전쟁> 2부 '예능 심판자'의 한 장면. ⓒ JTBC


1부 '하드코어 뉴스 깨기'는 소재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나는 꼼수다>와 <시선집중>의 기묘한 만남이었다. 사건의 뒷이야기를 다루면서 정치만담을 하는 것은 <나는 꼼수다>와 비슷하고,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여겨지는 두 명의 패널을 불러 이슈에 대한 자세한 의견을 듣는 건 <시선집중>과 비슷하다. 정치는 항상 비평의 영역에 있었던 만큼, 재미와는 별개로 '예능 심판자'만큼 새롭지는 않다.

'예능 심판자'는 영상 미디어가 애써 외면하거나, 비평의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을 비평의 영역으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크다. 이제까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또는 몇몇 잡지에서나 가볍게 다루어졌던 대중문화 비평을 TV로 끌어올린 것이다. 지금까지 대중문화 비평이 단순히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 국한되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대중문화의 모든 떡밥들을 가장 엄격하고 가장 사적인 잣대로 심판해드리겠다"고 말하는 '예능 심판자'의 콘셉트는 독보적이다.

'예능 심판자'는 싸이의 '젠틀맨'에 대한 논쟁, 3대 아이돌 소속사 중 JYP의 부진 등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거나, 가볍게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것을 주제로 등장시켜서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그뿐만이 아니다. 종종 등장하는 파격은 놀랍다. 종편인 JTBC가 스스로 종편의 위기를 이야기 하고, 자사 프로그램인 <히든 싱어>를 비판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허지웅이 손석희JTBC 보도국 사장의 임명을 두고 "손석희를 통해 이념 통합의 실험을 하는 셈"이라며 "보도국의 완전한 독립과 자유가 중요한데, 무엇보다 삼성을 깔 수 있느냐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한 것도 여과 없이 방송했다.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비평의 성역을 없애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최근 화제가 되는 이슈를 중심으로 주제를 선정하기 보다는, 대중문화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짚으려는 노력도 보인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흥행을 통해 웹툰 시장을 분석해보는가 하면, 박시후 사건을 통해 황색 저널리즘의 실태를 알아보는 등, 이슈를 일차원적으로만 다루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예능 심판자'라는 코너 이름처럼 예능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것에만 치중했다면 프로그램은 날이 갈수록 시시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다각적 분석이 가능한 프로그램이 되려는 시도는 프로그램의 마니아를 형성하는데도 큰 도움을 줬고, 주제의 다양화를 통해 롱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B급 속물행세'로 사람들 즐겁게 해

'예능 심판자'가 화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구성의 힘뿐만 아니라 5명의 출연자들이 이른바 '썰'을 잘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메인 진행자 김구라는 진행과 비평을 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서, 5명의 입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있다. 예전부터 '독설'로 이름을 날렸던 그에게 직설적으로 주제를 풀어나가는 힘이 요구되는 <썰전>은 '멍석을 깔아준 것'이나 다름없다.

나머지 4명 역시 각자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다. 강용석은 그전까지는 '박학다식'하고 달변의 방송인 이미지가 있었으나, <썰전>에서는 방송 도중에 코를 흘리고, 김구라에게 구박받는 모습을 통해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 예능인으로 거듭났다. 나아가 정치인으로서의 부정적 이미지도 상당 부분 희석시켰다. 박지윤 역시 JTBC <9시 뉴스> 앵커 자리를 노리고, 사업을 구상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욕망 아줌마'라는 별명을 얻는 등 스스로의 캐릭터만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허지웅은 웃음을 주는 역할보다는, '예능 심판자'가 비평의 전문성을 갖추는데 일조하는 편이다. 출연자 중 가장 단정적으로, 강하게 발언하는 그의 말도 주목 받고 있다. 다만 이윤석은 아쉬운 감이 있다.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도는 높은데 직설적으로 툭 던지는 것에는 능하지 못하다. 이윤석만의 캐릭터를 잡으며 극복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이렇듯 5명은 성향과 캐릭터가 다르지만,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바로 '속물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웃음을 자아낸다는 점이다.

기존에 폼 잡던 연예인들의 모습과 달리, 이들은 재물이나 명예 등에 대한 자신의 욕심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잘 나가는 연예인들에게 부러움을 표현하면서 자학하는 경우도 있고, 모 방송사에서 출연자에게 나눠주는 스타카드를 받았느냐 등의 여부로 서로를 비교하기도 한다. 그나마 시크한 캐릭터인 허지웅 조차도 종편출연 이유를 묻자 "돈 주니까요"라고 대답할 정도니, 지상파 토크쇼 수준의 '솔직함'은 진작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B급 속물'을 자처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예능 심판자'는 각 잡고 비평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포장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오히려 친구들 사이에서 가볍게 수다 떠는 포맷을 가져왔기 때문에 '주관적'인 관점을 표출해내면서 웃음을 만드는 게 포인트다.

고고한 자세로 대중문화를 비판할 경우, 재미를 느끼는 대신 '재수가 없다'고 느낄 시청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출연진 스스로가 망가져야, 시청자들은 출연진들과 자신들을 동일시할 수 있고, 이야기를 통한 쾌감을 얻을 수 있다. 나아가 수위가 강한 말이라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장미칼 휘두르다가 손 베일라

ⓒ JTBC


<썰전>의 미래는 밝다. 지상파에서는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도 아예 엄두가 안 날 것이다. 종편이나 케이블도 '제2의 썰전'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정치 평론을 연성화시키는 시도는 가능하겠지만, '예능 심판자'처럼 자사 프로그램까지 비판하는 파격적인 방송을 만들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썰전>은 콘텐츠 면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대중문화 비평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예능 심판자'는 <썰전>을 반짝 인기 있는 방송이 아니라 JTBC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나갈 수도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 프로그램이 궤도에 올랐다고 볼 순 없으므로, 여전히 경계해야 될 부분이 많다. 역설적으로 '예능 심판자'를 자처하는 <썰전>도, 예능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재미를 위해서 단순히 '독한 말'을 내뱉는 프로그램으로 변하거나, 가십에만 치우쳐서 매번 비슷한 주제를 반복하는 것은 위험하다.

실제로 김구라는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서태지 결혼에 대해 다룰 때 별로였다"며 "지난 번 다룬 장윤정 결혼과 겹치기도 할뿐더러, 서태지와 이은성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게 없었다"고 자평했다. 단순히 화제가 되는 뉴스라고 해서, 무조건 주제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하는 말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예능 심판자'가 대중문화에 '장미칼'을 휘두르는 모습은 신선하고 화끈한 매력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장미칼은 칼날이 매우 날카롭다. 조금만 부주의하게 사용해도 칼을 휘두르는 자신의 손이 크게 베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sonicmanic.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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