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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국가정보원 바깥에서 이 녹취록을 읽은 최초의 인물은 李明博(이명박)대통령으로, 2008년 말에서 2009년 초 사이였다. 그는 요약본이 아니라 100페이지가 넘는 회담록 전체를 국정원에서 가져와서 읽었다. 집무실에서 읽다가 私邸(사저)로 가져가서도 읽은 듯하다. 안보 참모들도 이때 회담록을 읽었다." - <역적모의> (조갑제 지음, 조갑제닷컴)

언론인 조갑제씨가 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비판서 <역적모의 : 노-김 대화록 확인, 김정일 앞에서 노무현은 이렇게 말했다>(초판은 2012년 11월 출간, 개정증보판 2013년 6월 26일 발간) 내용의 일부다.

조갑제 "녹취록을 읽은 최초 인물은 이명박"


언론인 조갑제씨가 낸 책 <역적모의>. 그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읽어본 이들을 취재해 이 책을 냈다.
▲ <역적모의> 언론인 조갑제씨가 낸 책 <역적모의>. 그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읽어본 이들을 취재해 이 책을 냈다.
ⓒ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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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씨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읽어본 이들을 취재해 작성한 책 <역적모의>에 따르면 국정원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읽은 이명박 대통령은 "너무 창피하다. 이 정도면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경악했다고 한다.

또 대화록을 읽은 복수의 인사들은 "노무현은 교사한테 보고하는 학생 같았다" "굴욕적이라 다 읽을 수 없었다" "국익을 갖다 바치려 애쓰고 모습, 김정일한테 칭찬 받으려고 애쓰는 형국" "거의 매국노 수준이다"라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이 책은 전하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6월 24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공개했다. 불법 논란 속에서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남재준 국정원장은 설명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을 확인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나 대화록을 같이 읽었던 정부 관료들과는 생각을 달리했다. "NLL 포기 발언이 어디 있냐"는 것이 대화록을 접한 이들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NLL 포기 발언'으로 왜곡해 대선에 이용한 새누리당은 책임을 져야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5%가 'NLL 포기가 아니다'라고 대답한 반면, '포기로 본다'는 21%에 불과했다.

조갑제씨의 책(초판)이 나온 뒤 2013년 <월간조선> 2월호에는 정부 고위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검토 보고서>라는 대외비 문건이 실렸다. 2009년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문건은 A4 용지 10장 분량으로 '대외비 09. 5. 11 限 파기'라고 적혀 있다. 여기에는 노무현 김정일의 10·4 남북정상회담뿐만 아니라, 김대중·김정일의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주고 받은 이야기에 대한 국정원의 비판적 견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문건 첫머리에서 국정원은 "남북 정상 간 '대화록'은 주로 공동선언문 의제 논의에 집중되어 있으나, 국가 정체성 훼손 및 국가수반으로서 위신 손상 등 문제점이 상당하다"고 의견을 적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당시 발언 내용을 인용하며 조목조목 비판적 의견을 기술했다.

'안보의식 결여' '국가정체성 훼손' '북한에 끌려다니기식 회담' '국익 저해' 등 부정적 의견이 다수로, 6.·15, 10·4 남북정상회담의 긍정적 평가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대외비'로 2009년 5월 11일에 파기되었어야 했을 국정원 문건이 4년이 지난 2013년 2월 <월간조선>에 전문이 고스란히 실리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한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보좌한 국정원이 그 내용을 이렇게 악의적으로 평가해 이명박 정부에 보고했다는 사실 역시 놀라운 일이다.

대외비 문건에는 '국정원은 이 같은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 및 10·4선언'의 문제점을 대내외에 전파하여, 북한·좌파의 전면이행 주장을 제압하고 우리 대북정책의 정당성을 부각해 나가겠음' 이라고 서술돼 있다. 이 내용을 보면 국정원이 이명박 정권의 정상회담을 돕는 차원이 아닌 6·15와 10·4 남북정상회담을 부정하는 논리로 서술된 내용들을 전파했다고 밖에 보기 어렵다.

조갑제씨는 <역적모의> 책에서 국정원에 보관되어 있던 녹취록을 2008년 말에서 2009년 초 사이 이명박 대통령과 참모진이 읽었다고 밝혔다. 또한 <월간조선>에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검토'라는 국정원 대외비 문건이 실렸다.

이 두 내용을 보면, 국정원에 보관돼 있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올해 6월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전 이미 많은 이들에게 공개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이를 대선전에 전략적으로 이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국정조사 물타기' 성공한 새누리당과 보수언론

대선 전 '노무현 대통령 NLL 포기'를 주장했던 정문헌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은 국정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24일 국회에서 박범계 의원이 공개한 권영세 주중대사(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 녹취록에도 "조갑제씨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본 사람들 얘기를 들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소속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24일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이었던 권영세 현 주중대사의 녹취파일을 추가로 공개하며, 이명박 정부 원세훈 원장 시절의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짜깁기'해 청와대에 요약보고를 했으며, 이 내용이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에게 흘러들어갔다는 내용을 폭로하고 있다.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소속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24일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이었던 권영세 현 주중대사의 녹취파일을 추가로 공개하며, 이명박 정부 원세훈 원장 시절의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짜깁기'해 청와대에 요약보고를 했으며, 이 내용이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에게 흘러들어갔다는 내용을 폭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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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없다고 여야가 결론을 내린 가운데 NLL포기 발언 논란은 대화록 존재 여부 논란으로 가열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폐기를 지시했다는 여권의 주장과 국가기록원의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야권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국가기록원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없다는 사실이 NLL 포기 발언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 가운데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관련된 국정조사를 여야가 진작에 합의했음에도 아무런 진척을 내지 못하고 있다. 다음달 15일까지가 기한임을 감안한다면 벌써 반 이상을 여야가 공방만 주고 받은 셈이다.

지금부터 국정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고 해도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경찰청의 수사 부실 등 대선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을 풀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전히 국정원 여직원 인권 유린 사건과 민주당의 국정원 직원 매수 사건을 규명하자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국정조사 의지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10·4 밀약은 6·15 밀약을 계승한 것이고 그 최종 목표는 한미동맹 해체와 남한 공산화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 국민 몰래 적장과 맺은 밀약은 자동적으로 역적모의가 된다."

조갑제씨가 <역적모의>를 통해 주장한 내용이다.  그들은 6·15와 10·4 남북정상회담을 계승할 수 있는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국정원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하고, 봉인된 자료를 불법적으로 공개했다. 진짜 역적모의는 이런 게 아닐까?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물타기에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묻힌다면 앞으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지켜내기 어렵다. 6·15, 10·.4 남북정상회담은 역사적으로 계승되는 게 아니라, 보수 세력의 필요에 따라 번번이 불려나와 난도질당하는 수모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무엇이 '역적모의' 인지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태그:#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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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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