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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일 열중하면 이글거리는 태양도 무릎 꿇습니다.
▲ 도약 원하는 일 열중하면 이글거리는 태양도 무릎 꿇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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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 "아빠! 한 번만 더 쳐요."
아빠 : "5분만 쉬자."
큰아들 : "은현이 기다려요. 빨리 쳐요."
아빠 : "넌 덥지도 않냐?"

초복 날(7월 13일)이었습니다. 날씨 참 더웠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뜨거웠습니다. 어떤 곳은 장맛비가 한창이라던데 이곳 전남 여수는 햇볕이 '살벌'했습니다. 그늘을 벗어나니 숨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땡볕 아래서 세 아들이 배드민턴을 즐겼습니다. 아이들은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도 손에서 라켓을 놓지 않았습니다.

큰아이가 이글거리는 태양이 무서워 그늘에 숨어있는 제게 달려왔습니다. 같이 놀자는 게지요. 결국,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라켓을 힘차게 휘둘렀습니다. 순식간에 옷이 땀에 흠뻑 젖었습니다. 흡사 물에 빠졌다 금방 나온 사람 꼴이었습니다. 내친김에 맘껏 놀았습니다.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묘한 일이었습니다. 삼복더위, 지레 겁먹을 필요 없더군요. 세상살이도 매한가지입니다. 미리 몸 사릴 필요는 없습니다. 막상 부딪치면 의외로 쉬운 일이 많습니다. 이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는 초복 날 오전부터 시작됩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데 어디선가 쇠막대기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실눈 뜨고 바라보니 삼형제가 좁은 아파트 안에서 배드민턴 라켓 들고 칼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타박을 놓아도 소용 없었습니다. 한창 기세 오른 세 아들은 지칠 줄 몰랐습니다. 시끌벅적한 방안에서 팔짱 끼고 바라보던 아내가 아이들을 향해 한 마디 던집니다.

"계속 떠들면 배드민턴 치러 밖에 못 나간다!"

아내의 말 한마디에 벌떡 일어났습니다

초복입니다. 실내도 아닌 야외에서 아이들에게 배드민턴 가르치는 일 만만찮은 도전입니다.
▲ 초복 초복입니다. 실내도 아닌 야외에서 아이들에게 배드민턴 가르치는 일 만만찮은 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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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라켓 쥐는 법을 가르칩니다. 악수하듯 라켓을 잡으랍니다.
▲ 악수? 선생님 라켓 쥐는 법을 가르칩니다. 악수하듯 라켓을 잡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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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선생님 손과 발놀림을 눈 크게 뜨고 바라봅니다.
▲ 자세 아이들이 선생님 손과 발놀림을 눈 크게 뜨고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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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날벼락 같은 소리에 개구쟁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누워있는 저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말을 건넵니다. 배드민턴 강의 있으니 따라나서랍니다. 그 소리 듣고 모로 누웠습니다. 찜통더위에 집 나가면 '개고생'이죠. 하지만 아내는 저를 간단히 일으켜 세웁니다.

오늘 점심은 밖에서 먹는답니다. 아이들 배드민턴 강습에 따라나서지 않으면 저 혼자 점심을 차려 먹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지요. 더위보다 더 무서운 건, 밥 굶는 일입니다. 두말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아이들 재촉하며 아파트를 나섰습니다. 단단히 각오는 했지만 아파트 밖 길거리를 바라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내리쬐는 태양이 사방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피부에 한창 달아오른 공기가 닿으니 머리가 재빨리 굴러갑니다. 아이들이 배드민턴을 배우고 있는 동안 가로수 그늘 밑을 떠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죠. 이윽고 집 근처 조그만 공원에 닿았습니다. 세 아들을 가르칠 배드민턴 선생님은 이미 도착해 있었습니다. 이웃사촌 준영이 아빠가 배드민턴 선생님입니다.

토요일을 맞아 동호회에서 다진 실력을 아이들에게 조금 가르쳐줄 모양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고 라켓 쥐는 법부터 가르칩니다. 악수하듯 라켓을 잡으랍니다. 손놀림과 발놀림도 자세히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따라 움직입니다. 그 모습 바라보니 갑자기 선생님이 존경스럽습니다.

더위 무서우니 집에만? 그러다 숨 막혀요

셔틀콕 줍는 시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이들은 그 순간도 즐겁습니다.
▲ 집중 셔틀콕 줍는 시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이들은 그 순간도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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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흠뻑 쏟고나니 기분이 상쾌합니다.
▲ 열정 땀 흠뻑 쏟고나니 기분이 상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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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그늘에서 맛있는 점심 먹고 그림도 그립니다.
▲ 그림 시원한 그늘에서 맛있는 점심 먹고 그림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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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날, 실내도 아닌 야외에서 아이들에게 배드민턴 가르치는 일은 만만찮은 도전입니다. 다행히 아이들도 선생님 동작을 잘 따라 합니다. 실은 라켓이 손에 들려 있어 아이들이 신기해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이윽고 기본 동작을 대충 익힌 아이들이 서로 짝지어 셔틀콕을 주고받습니다.

당연히 땅에 떨어진 셔틀콕을 줍는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순간도 즐거운가 봅니다. 작은 공원이 떠나갈 듯 괴성을 지르며 셔틀콕이 떨어진 곳으로 내달렸습니다. 아이들 함성소리가 이글거리는 태양을 삼킬 듯합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원하는 일에 열중하면 날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정신없이 뛰노는 아이들 모습 보니 저도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결국, 가로수 그늘 아래서 대충 시간을 때우려던 애초 계획을 내팽개치고 아이들과 뒤섞여 신나게 배드민턴을 즐기고 돌아왔습니다(비록 내리쬐는 햇볕에 조금 지치긴 했지만요). 곧 지겨운 장마가 끝납니다. 그리고 무더위가 찾아오겠지요. 살다 보면 옷이 흠뻑 젖도록 땀나는 순간도 있습니다.

더위가 무서워 집에 처박혀 있으면 숨이 더 막힙니다. 밖에 나가 땀을 흠뻑 쏟으면 상쾌한 기분을 맛보게 됩니다. 덤으로 자신감도 생깁니다. 세상살이 역시 같은 이치 아닐까요. 그늘 아래서 태양을 피할 궁리만 하지 말고 일단 나서보는 게 어떨까요. 몸에 와 닿는 세파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요령껏 준비할 테니까요.

아이들 함성소리가 불타는 태양을 삼켰습니다.
▲ 배드민턴 아이들 함성소리가 불타는 태양을 삼켰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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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초복, #배드민턴, #장마, #셔틀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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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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