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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화도 막산전망대와 장구도. 여수 하화도의 오른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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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만난 세 여자가 길을 나선다. 목적지는 꽃섬. 모든 슬픔을 잊게 해준다는 섬이다. 운명에 떠밀려 도시를 벗어날 수밖에 없지만 이들에게 꽃섬은 마음의 안식처다. 향기 그윽한 낙원이다.

송일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꽃섬>의 한 장면이다. 개봉한 지 10년도 넘은 이 영화는 세 여자가 꽃섬을 찾아가는 여정을 서정적인 화면에 담아 잔잔한 감동을 줬다. 영화 속의 세 여자가 찾아갔던 꽃섬이 바로 하화도(下花島)다. 영화 속 세 여자를 따라 갔다. 지난 1일이다.

하화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에 속한 섬이다. 여수 앞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365개 섬 가운데 하나다. 백야도와 금오도, 개도, 낭도, 사도 등 주변 다른 섬들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여행객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게 최근이다. 섬의 벼랑을 따라 한 바퀴 도는 '꽃섬길'이 개통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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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화도 꽃섬길. 선착장에서 막산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길섶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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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 하화도 꽃섬길에서 만난 화장실. 흡사 펜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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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화도의 지형이 여성들의 굽 높은 구두(하이힐)를 닮았다. 언뜻 복조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뗏목을 타고 피난하던 안동 장씨가 동백꽃과 구절초, 진달래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 첫발을 들여 정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꽃섬'이라 불리게 된 것도 꽃이 많아서란다. 이순신 장군이 항해를 하다가 흐드러진 꽃을 보고 '꽃섬'이라 이름 붙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마을이 선착장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뒤쪽으로는 숲이 감싸고 있다. 주황색으로 지붕을 단장한 집들이 별나게 아름답다. '아름다운 꽃섬 하화도' 표지석도 단아하다. 옆집의 담벼락은 소박한 꽃그림으로 채색돼 있다. 몇 해 전 대학생들이 와서 그려준 벽화다.

섬의 면적은 0.71㎢로 조그맣다. 여기에 스물댓명이 산다. 대부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다. 한때 고기잡이를 하며 '부자섬'으로 살았다. 지금은 여느 섬처럼 고기를 잡고 농사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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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화도 꽃섬길에서 본 상화도. 하화도는 아랫꽃섬, 상화도는 윗꽃섬으로 불린다. 두 섬 모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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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밭에서 풀을 뽑고 있는 할머니들. 가운데가 박오덕 할머니고 오른쪽이 김인자 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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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길을 걷는다. 길이 마을에서 해안을 따라 나 있다. 왼쪽은 숲이고 오른편은 몽돌 해변이다. 해변 너머에 또 하나의 꽃섬인 상화도(上花島)가 떠 있다. 싸목싸목 걷는데 길섶에 부추밭이 보인다. 할머니들이 풀을 뽑고 있다.

"소불이여. 우리는 소불이라고 혀. 정말 맛나. 사람들이 많이 사갖고 가. 향도 좋고 맛나다고. 도시사람덜이 환장을 허더만."
풀을 매던 개도댁 김인자(76) 할머니의 얘기다.

"돈은 무슨? 별거 없어. 쪼끔씩 해. 집집마다."
부추로 얻는 소득이 얼마나 되느냐는 물음에 대한 박오덕(80) 할머니의 대꾸다.

부추밭을 지나니 애림민 야생화공원에 이른다. 들꽃이 많이 심어져 있다. 비비추, 나리가 지천이다. 하얀 개망초와 보랏빛 도라지꽃도 반겨준다. 길섶으로 코스모스도 많이 피어있다. 큰굴삼거리까지 길이 평탄하게 이어진다. 박석을 가지런히 깔아 놓았다.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잔디가 무성하다. 솔방솔방 걷기 좋다. 바닷물결도 잔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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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화도 꽃섬길에서 만나는 큰굴. 기암괴석 사이에 뚫린 굴로 바닷물이 드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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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산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장구도. 하화도의 오른편 끝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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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굴이다. 꽃섬길에서 만나는 첫 번째 경관지점이다. 깎아지른 절벽과 절벽 사이로 파도가 쉴 새 없이 드나든다. 그 자리에 큰굴 하나가 파여 있다. 오랜 세월 파도가 밀려와서 파놓은 것이다. 오래 전 밀수꾼들이 밀수품을 숨겨놓은 비밀장소로 활용됐다고 한다. 하지만 큰굴까지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길은 큰굴삼거리에서 언덕을 올라 막산전망대로 이어진다. '막산'은 섬의 오른편 끝자락에 자리한 마지막 산이다. 그 앞으로 장구도가 떠 있다. 섬의 모양이 장구처럼 생겼다. 하화도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작은 섬이다. 그 너머로 바다가 끝없어 펼쳐진다. 전망도 좋다. 차분히 조망할 수 있도록 나무의자도 놓여 있다. 절벽을 붙잡고 피어난 노란 원추리도 애틋하다.

막산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니 다시 큰굴삼거리가 나온다. 길은 여기서 섬의 뒤편 벼랑을 따라 깻넘전망대와 큰산전망대, 순넘밭넘 구절초공원으로 이어진다. 지명이 재밌다. '깻넘'은 깨밭으로 가기 위해 넘던 작은 고개라는 뜻이다. '순넘밭넘'은 순(사람이름)의 밭이 있던 작은 고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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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깻넘전망대로 가는 길. 험한 바위에 나무데크가 깔려 있다. 큰굴삼거리에서 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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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 하화도의 꽃섬길. 나무데크와 흙길을 번갈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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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굴삼거리에서 깻넘전망대까지는 200m. 하지만 길이 가파르다. 나무널판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불편하진 않지만 쉬엄쉬엄 올라야 한다. 큰산은 해발 118m로 하화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전망대에는 나무널판이 깔려있다. 안전하게 조망할 수 있다.

주변의 다도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나로호를 쏘아 올렸던 고흥 외나로도의 나로우주센터도 다도해 풍경에 들어있다.

깻넘전망대에서 큰산전망대를 거쳐 순넘밭넘 구절초공원으로 가는 길은 평탄하다. 나무널판길과 흙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오른편으로 해안 벼랑의 기암괴석과 다도해 풍광이 동행한다. 순넘밭넘 구절초공원에는 구절초가 많이 심어져 있다. 가을에 꽃이 흐드러지면 환상적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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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산전망대와 다도해 풍경. 꽃섬길에서 만나는 여러 전망대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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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섬길에서 만나는 순넘밭넘 구절초공원. 공원에 구절초가 많이 심어져 있다. 지금은 개망초가 많이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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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개망초가 많이 피어 있다. 공원을 지나는 길도 파릇파릇 싱그럽다. 꿈길 같다. 웃꽃섬인 상화도 풍광도 저만치 펼쳐진다. 상화도 풍광이 단아하다. 주황색으로 단장된 마을의 지붕도 이국적이다.

꽃섬길은 이렇게 섬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마을로 내려온다. 길이는 5.7㎞ 정도. 뉘엿뉘엿 걸어도 3∼4시간이면 거뜬하다. 별다른 문화유적은 없다. 하지만 아름다운 꽃섬을 보고,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섬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여정이다.

길 위에서 가슴 한켠에 남아있던 슬픔과 불행은 어느새 사라진다. 대신 청량제 같은 활력과 희망으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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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넘밭넘 구절초공원 부근의 꽃섬길. 온통 초록으로 펼쳐지는 꿈결 같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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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섬길과 다도해 풍경. 순넘밭넘 구절초공원에서 애림민 야생화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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