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010년 4월 초, 이른바 '곽영욱사건(한명숙 전 총리가 총리공관에서 곽씨로부터 5만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한 무죄판결이 예상되자 검찰은 부랴부랴 이른바 '한만호사건'을 별건으로 엮었다. 건설업자 한만호씨가 한 전 총리에게 2007년 4월 초, 5월 초, 9월 초 3번에 걸쳐 3억 원 씩 총 9억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공여했다는 혐의다.

한 번은 한 전 총리의 자택 근처 길거리에서, 나머지 두 번은 한 전 총리의 자택에서 한 사장이 직접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는 것이다. 만 3년 2개월 동안 이 사실이 맞나, 틀리나를 둘러싼 지루한 법정공방이 이어졌고 1심의 판결은 "검찰의 주장이 틀리다"였다. 즉 한 전 총리는 무죄였다.

그런데 지난 달 10일 열린 항소심 3차공판에서 검찰은 느닷없이 "1차 3억 원 수수는 길거리에서 주고 받았을 수도 있지만, 비서 김아무개씨를 통해 주고 받았을 수도 있다"는 내용으로 공소장을 변경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지난 8일 열린 항소심 마지막 공판에서 재판장은 검찰의 공소장 변경신청을 기각했다.

실패한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시도

한명숙 전 총리
 한명숙 전 총리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검찰이 막바지에 무리수를 둔 것은, 1심 재판장이 직접 나서서 현장검증까지 한 1차 자금수수 장소가 크게 상식에 벗어났으며 이것이 무죄판결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했음에 틀림없다. '곽영욱사건' 때도 현장검증을 통해, 총리공관이 5만 달러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됐고 이 사실이 무죄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었다.

검찰 역시 공소장 변경신청이 기각되리라는 것을 예상한 듯, 이날 마지막 공판에서는 길거리에서도 얼마든지 자금수수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다시 펼쳤다. 훤한 대낮이었기 때문에 한 사장이 차 안에 있는 사람(한 전 총리)을 쉽게 식별할 수 있었고, 실제 돈을 주고 받은 것은 길거리가 아니라 주차한 차 안에서였고, 현금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끌고 다녔기 때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이목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는 등의 설명을 붙였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면 왜 공소장을 변경하려 했을까. 가히 진퇴양난에 빠져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다.

정치인들의 뇌물이나 불법자금수수는 돈을 주고 받을 동기(대가성), 자금을 조성한 방법, 전달 시기와 장소, 돈을 사용한 용처 등에 대해 '합리적 의심'이 없어야만 혐의가 입증된다. 이런 쟁점들에 대한 이날 검찰의 논고는 1심 때와 판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심에서 이미 십 수 명에 이르는 증인들의 수십 차례에 이르는 증언을 통해 거의 모든 사실들이 완벽하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항소심에서는 단 두 명의 증인만 불렀는데, 이들도 새로운 증인들이 아니라 이미 1심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증언했던 이들이다.

이처럼 한 전 총리에 대한 혐의사실을 입증할 만한 새로운 증언이나 증거를 전혀 내놓지 못한 검찰이 마지막으로 기댈 것은 억지부리기일 수밖에 없을 것 같기는 하다. 1심에서 검찰이 충분한 증거를 내놓았는데도 1심 재판부가 "한명숙이 돈을 받았을 리 없다"는 '선입견'에 사로 잡혀 "(그런 선입견 때문에) 검찰 수사가 조작됐고, (그런 조작에) 한만호 사장이 영합한 것"이라고 봤으며 그 결과 재판부가 증거를 무시하고 진실을 제대로 못 봤다는 주장이다.

그런 재판부의 선입관과 잘못된 인식을 검찰은 납득하기 어렵고 너무 모욕을 받았다면서 "(그런 재판 결과가) 역사에 남을 것이며, 검사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에서는 섬뜩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검찰은 한 전 총리에게 1심 구형과 마찬가지로 징역 4년, 추징금 5억8천만 원+32만7500달러를 구형했다.

"1심 무죄는 재판장의 선입관 때문"

변호인단의 최후변론 역시, 검찰이 시도했던 공소장 변경 내용이 상호 모순된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 외에는 1심 변론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한 사장이 불법으로 자금을 조성한 사실은 맞지만 이것이 한 전 총리에게 전달됐다는 검찰의 주장은 전혀 입증될 수 없음을 논증했다. 한만호 사장의 검찰 진술(한 사장은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양심선언을 통해 검찰에서의 자신의 진술이 조작됐음을 밝혔다)에 일관성·합리성·객관적 상당성이 결여돼 믿을 수가 없다는 전제 아래 핵심 증거인 채권회수목록이 편집(이를테면 조작)된 정황이 있고, 한 전 총리의 동생이 사용했다는 1억 원짜리 수표가 한 전 총리로부터 전달됐다는 검찰의 주장에 구멍이 있음을 밝혔다.

가장 큰 구멍은 역시 돈 전달장소와 일시다. 검찰이 자금수수 일시를 특정하지 않고 4월 초, 5월 초 식으로 막연하게 잡았음에도, 변호인단은 1심에서 4월 초 열흘, 5월 초 열흘, 9월 초 열흘 간 한 전 총리가 낮 시간동안 자택 근처에 있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증명해 보인 바 있다. 받지 않은 수표를 동생에게 건네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수표는 비서 김아무개씨가 개인적으로 한 사장에게서 받아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한 전 총리의 동생이 잠시 빌려 사용하고 바로 갚은 적이 있다는 것이 김 비서와 한 전 총리 동생의 주장이다.  

검찰의 느닷없는 재판부 비판에 항소심 재판장도 난감했던 모양이다. 재판장은 8월19일로 선고기일을 정하면서 "1심 기록을 보면서 검찰입장에서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열심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무위로 돌아갔을 때 허탈감이 생겨 1심 재판부를 비판했을 것이고 그 심정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재판은 사실과 증거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입관이 문제가 된다면 1심 재판장이 아니라 검찰의 선입관이 문제다. 이날 검찰은 논고를 하면서 "모든 정치인들이 깨끗한 정치를 표방하지만 무수한 정치인들이 또한 이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선입관이다. 검찰의 그런 선입관이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검찰은 왜 외면하고 있을까. 한 전 총리도 최후진술을 통해, 자신이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럼에도 자신이 4년 째 피고인의 신분으로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모든 정치인은 돈을 받는다"는 검찰의 선입관 때문이라고 말했다.   


태그:#한명숙, #항소심, #불법정치자금수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