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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서비스 사용설명서, 표준으로 디자인하라>
 <제품·서비스 사용설명서, 표준으로 디자인하라>
ⓒ 한울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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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8월과 9월, 전북 전주시와 경기도 고양시에서 각각 7살, 8살 어린이가 드럼세탁기에 갇혀 질식사하는 일이 발생한 바 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0년 2월에도 대전의 한 초등학생(7세)이 드럼세탁기에 갇혀 질식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고 이후, 안에 갇혔을 경우 안에서도 쉽게 열 수 있도록 하는 등과 같은 리콜을 통해 문제점을 해결했다하지만 100% 안심할 순 없다. 애초 물건을 개발하고 만들 때 전혀 의도하거나 예측하지 못한 이와 같은 사고가 일어났던 것처럼 언제든 또 다른 유형의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이처럼 좀 더 편리하고 편안하게 살고자 만든 물건이나 시설물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안타까운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경우 잘잘못을 따지기 좀 어려울 때도 종종 있다. 모 회사의 드럼세탁기처럼 아이들의 안전사고를 염두에 두지 않고 물건을 만든다거나 이용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과 같은 제공자 측의 잘못도 있겠지만, 본래 목적과 달리 쓰이지 않도록 세심한 신경을 쓰지 않았다거나 주의를 하지 않은 부모 혹은 사용자 과실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제조물책임법'에서도 제조물에 있는 표시상의 결함 때문에 타인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가 발생하면 제조업자가 책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표시상의 결함이란 제조물에 합리적인 설명·지시·경고등을 표시하면 그 제조물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피해나 위험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는데도 제조업자가 그렇게 하지 않아 생기는 결함을 말한다. 즉, 제품. 서비스에 부득이하게 위험성이 존재하는데도, 소비자가 그 위험성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고 회피하는 데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조업자가 제공하지 않아 생기는 결함이다.

예를 들어 세탁기에는 어린이가 덮개를 열고 안쪽을 들여다보다 빠져서 사망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를 표시해야 하며, 냉장고에는 어린이가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갇힐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를 표시해야 한다. 이러한 사고는 세탁기나 냉장고의 본래 용도에서 벗어난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할 때 일어난다. 그러나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고다. 따라서 개개의 제품에는 더욱 강력한 방식으로 경고표시를 해야 한다. -<제품·서비스 사용설명서, 표준으로 디자인하라>에서

분명한 것은 세탁기가 아이들도 함께 사는 공간인 집에서 주로 사용하는 일상용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애초부터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든다거나, 본래목적과 다른 사용의 위험성을 최대한 많이 알린다거나, (소비자는) 제대로 사용하거나, 의도와 달리 사용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안전사고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제품·서비스 사용설명서, 표준으로 디자인하라>(한울 아카데미 펴냄)는 제품사용설명서 제작자 혹은 제품 생산자나 회사 운영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조목조목 정리한 지침서이다.

여러 사람을 상대로 '어떤 물건이고,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잘못 사용하면 어떤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제품설명서는 최대한 간결하고 명확하며 누구든 이해가 쉬워야 할 것이다. 게다가 문화와 인종 차별도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색맹, 장애인들과 같은 소수 사용자들의 입장도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모두, 아니 최대한 갖추려면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제품·서비스 사용설명서, 표준으로 디자인하라>는 다양한 유형에 따른 지침들을 조목조목 제시한다. 동시에 간과하기 쉬운 것들이나 미처 몰라 놓치기 쉬운 것들, 일부 제품설명서들에서 볼 수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용어나 표현 사용 등의 예를 들어 알려줌으로써 '바람직하고 표준적인 제품·서비스 사용설명서' 제작을 유도한다.

종종 제품의 품질을 알아보기 위해 그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홈페이지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크게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제품의 품질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보는 일이 드물어서 깜짝 놀랍니다. 대체로 홍보 차원에서 쓰는 '최고의 품질', '품질을 중시한다', '조용한 차' 등 애매한 선전 문구들뿐입니다. 한편 전자제품을 구매하려고 인터넷을 보면, 무슨 의미인지 잘 알 수 없는 수많은 specification 항목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생산자의 생산가이드 같은 기술 항목들을 표시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기술이 있다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비자들은 그 의미를 거의 알 수 없습니다. 지극히 생산자 중심의 기술 용어들이기 때문입니다. -유영학(한국품질관리사회 회장) 추천사에서

소비자인 난 종종 불친절한 제품·서비스 사용설명서를 만나기도 한다. 애매한 표현을 쓴 때문에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거나, 해당 전문가들이나 이해할 법한 용어를 쓴 때문에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경우나(특히 약품 설명서에서 많이 느꼈다), 소비자의 입장보다는 제품을 돋보이도록 의도한 듯 과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등과 같은. 또, 맞춤법이나 용어 선택이 잘못된 조잡한 문장의 제품설명서를 만나기도 한다.

사실 이 책 <제품·서비스 사용설명서, 표준으로 디자인하라>를 읽고자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는 이제까지 종종 만나왔던 이런 불친절한 제품·서비스 사용설명서들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실무자들을 위한 책이랄 수 있다. 그런데 소비자인 내게도 재미있게 읽힌 것은 소비자에게 제조자들이 당연하게 제공해야 하는 것, 즉 소비자인 내가 제조자들에게 당연하게 받아야만 하는 것들이 주제인 책이기 때문이다.

제품·서비스 사용설명서는 사용자에게 인도되는 제품·서비스의 일부분이자 종합적인 부분으로, 제품·서비스의 올바른 사용을 증진해야 하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제품·서비스 사용설명서, 표준으로 디자인하라> '머리말'에서

머리말에서 이런 부분을 만났기 때문인지 제품을 제대로 알리는 사용설명서(혹은 제품설명서, 이하 제품설명서)에 대한 우리의 인식 부족도 문제라는 생각을 새삼 하면서 읽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아니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지 제품설명서는 제품의 일부분이란 생각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첨부물 정도로만 생각하고 대해왔기 때문이다.

2010년에 방영된 'MBC-<후 플러스> '이유있는 질식사' 화면 캡쳐. 세탁기 질식사 해당 회사의 미국 수술용 제품과 국내 수요 제품을 비교 실험하는 등으로 이유있는 질식사를 밝혀냈다.
 2010년에 방영된 'MBC-<후 플러스> '이유있는 질식사' 화면 캡쳐. 세탁기 질식사 해당 회사의 미국 수술용 제품과 국내 수요 제품을 비교 실험하는 등으로 이유있는 질식사를 밝혀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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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3명의 어린이를 질식사 하게 한 그 세탁기 회사나 사용자들이 이런 것들을 알았다면, 아니 간과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세번째 질식사가 일어난 몇 달 후인 2010년 6월, 'mbc-<후 플러스>'라는 프로그램의 '이유있는 질식사'에 따르면 해당 회사의 미국에서 판매되는 세탁기들은 안에서 열 수 있도록, 그것도 손가락 하나로도 쉽게 열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만,국내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은 안에서 절대 열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방송에서 '왜 이처럼 달리 설계 되었는가?'는 질문에 관계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도 미국에서 이런 안전사고를 염두에 두고 애초부터 요청했기 때문 아닐까? 위에 인용한 것들이 기업들 사이에 제대로 지켜지고 보편화되었는지라 이에 맞지 않는 제품은 살아남지 못하는 분위기 때문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또한 소비자들이 당연하게 그리고 반드시 제공받아야만 하는, 즉 제조자가 반드시 제품 판매 시 알려야 할 것들을 알고 있었다면, 그리하여 좀 더 빠른 문제점 해결이 됐다면 2010년 2월의 질식사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기에 우리들이 살아가는 동안 수시로 접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것들을 주제로 한 이 책의 중요성이 더욱 소중하게 와 닿는다.

덧붙이는 글 | <제품·서비스 사용설명서, 표준으로 디자인하라> |류길홍· 정재익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3-06-10 |15,000원



제품.서비스 사용설명서, 표준으로 디자인하라

정재익.류길홍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2013)


태그:#제품 설명서, #서비스 설명서, #드럼 세탁기, #후 플러스, #LG세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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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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