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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하게 흐르던 섬진강이 둥글게 몸을 구부리며 물돌이가 되는 구담마을.
 도도하게 흐르던 섬진강이 둥글게 몸을 구부리며 물돌이가 되는 구담마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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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오백리 강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일까? 섬진강변의 진메마을이 고향이자 섬진강 시인으로 통하는 김용택씨는 그의 동화책 <꿈꾸는 섬진강>에서 섬진강 오백리길에서도 전북 임실의 한 자락을 흐르는 덕치면의 천담마을과 구담마을을 거쳐 강 건너 동계면 마을의 장구목으로 흘러드는 물길을 가장 아름다운 강변이자 물굽이로 꼽았다.

그 중 가장 깊고 높으며 막다른 산골에 자리한 곳이 구담마을이다. 오지에 자리한 덕에 마을이며 당산 느티나무, 강변의 징검다리, 물안개 등 주변 풍광이 잊히질 않아 다시 찾게 되는 마을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촌스러움이란 구리고 낙후한 것을 비하하는 말로 전락했지만, 이곳에선 정답고 아름답기까지한 촌스러움을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새로 난 섬진강 자전거 길을 달리다 장대같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만나게 되었고, 비를 피하기 위해 들른 곳이 이 마을이었다.

소나기가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마을이 아름다운 나머지, 비가 그쳤지만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고 구담마을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똑같이 흐르는 시간이지만 이 마을에서의 하루는 왜가리의 흐느적거리는 날개짓처럼 무척 느리고 길게 느껴진다. 지나는 길에 들러 몇 시간 머물다 가기에는 참으로 아까운 곳이다.

몇 시간 머물다 가기엔 참 아까운 마을

섬진강 강물위에서 바라본 구담마을, 가운데가 마을회관이고 맨 왼편에 당산나무와 정자가 있다.
 섬진강 강물위에서 바라본 구담마을, 가운데가 마을회관이고 맨 왼편에 당산나무와 정자가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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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에 생긴 자전거길을 통해 오지라는 구담마을에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섬진강변에 생긴 자전거길을 통해 오지라는 구담마을에도 갈 수 있게 되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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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상류 길을 굽이굽이 돌아 도착한 구담마을은 시골 마을버스의 마지막 정거장처럼 푸근한 곳이다. 빨치산의 마지막 세력들이 근거지로 삼았던 회문산이 지척인 오지 마을이기도 하다. 오지마을이라고 하면 심심 산골동네처럼 느껴져 찾아가는 길이 첩첩산중일 것 같지만, 구담마을은 강변마을답게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구경하며 천천히 강변길을 따라 가다보면 나타나는 여정이 즐거운 마을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타고 새로 생긴 섬진강 자전거 길을 따라 별로 힘들지 않게 이런 오지 마을에 갈 수 있다니…. 아마 섬진강 자전거 길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멀리서 볼 땐 까마득히 높고 깊은 곳에 자리한 강촌마을이 어느새 눈앞에 와 있다.

산책로를 겸한 자전거 길을 따라 급하지만 짧은 비탈길을 오르다보면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들과 포근한 느낌의 정자가 수고했다며 맨 먼저 여행자를 맞이해준다. 누군가 내게 섬진강변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물어본다면 별 다른 고민 없이 구담마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팔할이 아름답고 경치좋은 느티나무 언덕 때문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또한 참으로 부드럽고 전라도 사투리로 '징하게' 아름답다. 특히 비 내린 후 산과 물과 안개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경치가 선경(仙境)이요 수묵화다. 조선 성종 때(1481년)의 지리책 <동국여지승람>에 '산과 산이 첩첩 둘러 있어 마치 병풍을 두른 것처럼 아름다운 곳'으로 나올 만하다.

왜가리가 명상하듯 서있는 강의 소(沼) 풍경이 마을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왜가리가 명상하듯 서있는 강의 소(沼) 풍경이 마을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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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길을 따라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아주는 당산나무 숲과 정자.
 자전거길을 따라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아주는 당산나무 숲과 정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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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 않으면서도 도도히 흐르던 강은 이 마을 앞에서 둥글게 몸을 말며 혹은 물굽이를 이루며 천천히 흘러간다. 강이 이렇게 흐르는 마을을 '물돌이동(洞)'이라고 부른다.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 예천 회룡포마을 등도 물돌이동으로 유명하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강 물소리가 '돌돌돌~' 소리를 내며 수줍고 풋풋하게 흐른다.

알고 보니 마을 이름도 물과 관련된 지명이다. 강줄기에 활처럼 휘어 흐르고 못(潭)처럼 깊은 소(沼)가 아홉 군데나 있다고 하여 구담(九潭)이라 부른다. 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에 예전에 자라(龜)가 많이 서식한다고 해서 구담(龜潭)이라고도 한단다.

강은 기본적으로 여울과 소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소란 강물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완만하면서 수심이 유지되는 곳, 여울이란 강폭이 줄어들거나 낙차가 커지면서 물 흐름이 빨라지며 때로는 하얀 포말이 이는 곳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마을로 들어오는 물이 힘차게 달려오고 나가는 물이 소리 없이 사라지는 곳이 명당마을이라 했다. 구담마을 당산나무 숲에 서면 왼쪽에서 힘차게 달려오며 시원스런 물소리를 내는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 있는 듯 없는 듯 물길이 사라진다.

'징하게' 정다운 마을과 강 풍경
     
당산제를 지냈던 마당은 이제 마을 어르신들의 산책로가 되었다.
 당산제를 지냈던 마당은 이제 마을 어르신들의 산책로가 되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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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느 집에서 기르는 닭들이 오히려 여행자를 구경한다.
 마을 어느 집에서 기르는 닭들이 오히려 여행자를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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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농기구를 들고 밭일을 하러 나가는 아낙네의 뒷모습이 마음 찡하게 한다.
 양손에 농기구를 들고 밭일을 하러 나가는 아낙네의 뒷모습이 마음 찡하게 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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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배기 한가운데서 상서로운 기운이 흠뻑 느껴지는 작은 마당엔 수백 살은 먹었음직한 느티나무 대여섯 그루가 빙 둘러섰다. 마을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이면 당산제를 펼치던 곳이다. 삼신할머니 모셔다 나무에 금줄 치고 풍년과 다복을 빌던 곳.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당산제가 사라진 자리엔 외지인들이 와서 영화를 찍어가고, 이제는 마을 어르신들의 산책로, 놀이터가 됐다.

당산나무와 정자 주변으로 현대식 마을회관과 오래된 옛 초가와 별장으로 보이는 예쁜 양옥 1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주민들도 스무 명 남짓으로 팔 벌리면 품에 쏙 안길 것 같은 작은 마을이다. 양옥과 달리 옛 초가집들은 모두 대문이 없거나 열려 있어 마당 안에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들어가 수돗가에 앉아 마른 목을 축이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누가 보는 것 같아 휙~ 뒤돌아보니 마당 한쪽에 있는 닭장 속의 닭들이 '뭥미?' 하는 눈으로 외지인을 쳐다본다. 마을 산책길을 따라 돌로 쌓은 담장과 골목을 기웃거리며 다니다보면 꼭 마주치는 견공들도 없어 마을은 더없이 한적하고 고요하다.

감동적으로 본 한국 영화 <집으로>에 나오는 주인공 할머니처럼 허리가 굽은 꼬부랑 할머니가 산책을 하시는지 당산나무 숲을 향해 구부정하게 걸어가신다. 인사를 건네며 "할머니, 산보 가세요?" 했더니 주름진 얼굴에 한가득 귀여운 미소를 지으시며 비 온 후 강물이 얼마나 불어났나 보러 가신단다. 섬진강 다슬기를 캐러 가시려나보다. 점심식사를 하고 양손에 농기구를 든 채로 밭일을 하러 달팽이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아낙네의 뒷모습에 왠지 가슴이 찡해와 꼬부랑 할머니에게처럼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마을 산책길을 따라 강변으로 내려가면 섬진강이 발치에 다가온다.
 마을 산책길을 따라 강변으로 내려가면 섬진강이 발치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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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섬진강 상류에 다슬기가 지천이다.
 맑은 섬진강 상류에 다슬기가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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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마을 사이에 흐르는 강 위의 징검다리는 누구나 걸어보고 싶게 한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흐르는 강 위의 징검다리는 누구나 걸어보고 싶게 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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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을 흐르는 강을 보면서 산책길을 걸어 내려가면 제법 널찍한 강변이 나오고, 물놀이하기 딱 좋을 정도의 풋풋한 개울이 발치에 펼쳐진다. 수확이 신통치 않은 아저씨들의 그물질과 달리 아주머니들의 빨간 바구니엔 다슬기가 가득하다. 강 이쪽과 저쪽으로 요즘 어지간한 시골에서도 보기 어려운 널찍한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 누구나 한번 걸어가 보게 한다.

장마가 와도 떠내려가지 않을 튼실하고 정겨운 징검다리를 빨리 건너가기 싫어 돌 위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발 아래로 흐르는 '돌돌돌~' 물소리가 상쾌하면서도 아늑한 기분이 들게 한다. 흡사 나비처럼 날아 다니는 신비롭고 때깔 고운 물잠자리들이 강가에 지천이다. 고개를 들면 높은 산비탈에 포근히 자리한 구담마을도 보인다. 섬진강이 나은 김용택 시인이 자신한 대로 누구나에게 마음속 고향으로 남겨두고 싶은 그런 곳이다.

그 강에 가고 싶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
금방 기뻐 웃을 일도 아니고,
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
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도 아니다

(줄임)

그 강에 가고 싶다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그 산에 그 강
그 강에 가고 싶다.

- 김용택 <그 강에 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ㅇ 지난 6월 30일에 다녀 왔습니다.
ㅇ 구담마을 숙박 및 교통편 안내 ; www.gudam.kr



태그:#구담마을, #섬진강, #물돌이동 , #덕치면,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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