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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겉표지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겉표지
ⓒ 성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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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더불어 <흠흠신서>를 남겼다. 이 세 저술은 '일표이서'라 불리며 다산의 대표적인 유산으로 평가된다. <목민심서>에서는 목민관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며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했고, <경세유표>에서는 행정 기구를 비롯한 각종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했다. 둘은 많이 읽히고 해설서도 상대적으로 풍부하다.

그러나 <흠흠신서>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이 책은 일종의 법률서로, 조문만을 나열한 단순한 법률서가 아니라 재판을 하는 데 필요한 소양과 근원적인 철학을 담고 있다. <흠흠신서>는 '일표이서' 중 가장 인지도가 떨어지긴 하나 후세의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함은 결코 가볍지 않다.

종전까지 법조인들의 지침서로만 알려져 있던 <흠흠신서>를 '대중의 정의론'으로 재해석한 책이 바로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이다.

다산은 기본적으로 도덕 교화를 주장하는 유가와 엄한 형벌을 남발하는 법가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노력했다. 초기 유가의 예치(禮治)를 모색한 것이다. 물론 그속에는 공평무사의 정신이 깃들어야 한다. 평등과 공정의 가치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예치는 실현되기 힘들다.

책에는 이런 일화가 소개돼 있다.

한 고을에서 남녀의 시신이 발견된다. 탄 흔적이 있었고, 둘 다 한 방에 있었다. 지방의 수령은 실화에 의한 화재로 이들이 사망한 것이라 결론지었다. 그러나 다산은 달랐다. 남자의 발에 불탄 흔적이 없다는 지적을 했다. 정황상 실화로 인한 화재라면, 남자의 발 또한 불에 탄 흔적이 있어야 했다.

다산은 음화론을 제시했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다 정욕의 불꽃이 몸속에서 타올라 실제로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상황이 설명된다는 이유였다.

당대 최고의 실학자가 제시했다고 보기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결과다. 그러나 우리는 다산의 속뜻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산은 단순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 중국의 <인수옥서영> <우초신지> 등을 이용해 논거를 폈다. 실제로 당시의 의학 지식과 오늘날의 그것은 격차가 좀 있지 않겠는가. 시신의 타지 않은 부분을 놓고 보면, 음화론이 차라리 수긍이 갔다.

이해되지 않는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서라면 다산은 자신의 지식과 상식의 한계 안에 갇히지 않고 납득할만한 설명을 찾기 위해 광범위한 전거를 비교하고 검토했다. 사건 해결에는 한 치의 의혹도 남겨선 안 된다는 신념의 발로였다.

"믿기 어려운 일을 믿으려면 보다 많은 증거와 신뢰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하다. 다산은 너무나 믿기 어려운 일이라도 믿을 수 있는 증거와 자료들을 제시해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지 믿기 어렵다고 대충 조사하지 않고 왜 그런지 끝까지 추궁하는 태도야말로 다산의 길이요 방법이었다."(본문 91쪽)

법은 '마음'을 처벌하는 것

이렇게 논리적으로 사건의 전말을 밝힌 뒤에는 처벌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다산이 생각한 처벌의 대원칙은 '고의로 저지른 죄라면 아무리 작은 죄라도 반드시 처벌해 용서하지 아니하고, 과실이라면 아무리 큰 죄라도 너그럽게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의 고의성 여부를 잘 살펴야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있다고 봤다.

또한 같은 맥락이지만, 참작의 융통성도 강조했다. 참작감형 혹은 가중처벌이야말로 공정한 판결의 중요한 도구라고 주장했다. 과오가 분명해 한 점의 의심도 없어야 큰 죄라도 용서할 수 있으며, 고의가 분명해 조금의 의심도 없어야 작은 범죄도 형벌을 더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죄를 저지른 자를 정확하게 분별해야 죄책을 물을 수 있으며, 이후 어느 정도 처벌할 것인지 판단할 때 사건의 정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이 모든 과정이 정당해야 한다는 것은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이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되는 걸까.

"이 나라 전체가 모두 양반이 되길 바란다"

강진군 다산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흠흠신서>.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더불어 다산의 '일표이서' 중 하나이다.
 강진군 다산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흠흠신서>.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더불어 다산의 '일표이서' 중 하나이다.
ⓒ 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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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중국 명말청초의 학자 고염무가 지은 <생원에 관한 논설>을 끌어와 조선의 타락한 양반사회를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한 가지 바라는 바가 있으니, 이 나라 전체가 모두 양반이 되는 것이다. 온 나라 사람이 모두 양반이 되면 결국 양반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있기에 나이든 자가 드러나는 것이요, 천한 자가 있기에 귀한 자도 나타나는 법이다. 만일 모두가 존귀하게 되면 존귀한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산은 정말 조선의 모든 이들이 양반이 되기를 바란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말 속에는 양반답지 않은 자들의 양반 행세에 대한 비판이 숨어있다.

조선의 주류였던 성리학에서는 모든 이들이 타고난 덕성으로 인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군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산은 사이비들, 즉 겉으로는 군자나 양반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양심도 없고 도덕적 책임도 다하지 못하는 이들을 걸러내 진정한 군자와 양반들의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다시 말해, 중요한 것은 신분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산의 시각에서는 인간 스스로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봤기에 당시 팽배했던 우민론(평민들을 어리석게만 여기고 차별하는 편견)에 빠지지 않았다. 비록 주자학적 도덕 교화의 예기치 않았던 결과들을 목격하면서 평민들의 도덕성에 대한 우려를 거두지 못했지만, 인간 스스로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가 주자학의 폐단을 비판했지만, '자율적 도덕 공동체의 정치주체'를 양성하겠다는 노력은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많아져야 가능한 일이요,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는 행동이 늘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다산의 절절한 마음이 오늘날까지 울리는 이유는 우리 모두 공정한 사회를 원하기 때문이다."(본문 '글을 맺으며' 중)

우리는 다산이 친히 쓴 서문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고민을 느낄 수 있다. 목민관들이 생명을 가볍게 여겨 살림과 죽임의 지극히 중요한 대목에서 생명에 관한 형벌을 함부로 베풀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려는 것이 저작의 이유임을 설명했다.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니 인명은 재천이라 한다. 그런데 지방관은 그 중간에서 선량한 사람은 편히 살게 해 주고 죄 지은 사람은 잡아다 죽일 수 있으니, 이는 하늘의 권한을 드러내는 일이다.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서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몰라 털끝만한 일도 세밀히 분석해서 처리하지 않고서 소홀히 하고 흐릿하게 해 살려야 하는 사람을 죽게 하기도 하고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태연하고 편안하게 여긴다.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고 부인들을 호리기도 하면서, 백성들의 비참하게 절규하는 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구휼할 줄 모르니 이는 매우 큰 죄악이다."(<흠흠신서> 서문 중에서)

<흠흠신서>의 '흠흠(欽欽)'을 다시금 되새기자. '삼가고 또 삼가라'는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이다.

덧붙이는 글 |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김호 지음, 성안당 펴냄, 2013.05, 2만원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 <흠흠신서>로 읽은 다산의 정의론

김호 지음, 책문(2013)


태그:#흠흠신서,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성안당, #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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