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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동구청장은 푸근한 이미지로 다가 왔습니다.
 김종훈 동구청장은 푸근한 이미지로 다가 왔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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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동구청장 김종훈. 그는 소시민과의 약속을 시원찮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냥 지나가는 말뿐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말로 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소시민의 말 한 마디도 신중하게 경청할 줄 아는 고위 공직자를 만났다는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동구청장님, 저 동구청장님 좀 뵙고 여러가지 이야기 좀 나누고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고 싶은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그분을 만나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때는 지난 6월 22일 오전 7시께 울산 동구 남목에서였습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인 저는 학비노조에 가입하고 시간되는대로 학비노조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교육공무직'과 '호봉제' 이 두 가지 사안을 놓고 전국에 있는 학교 비정규직 노조원이 서울 교육청사 앞에서 집회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날 마침 아무 일이 없어 같이 가게 됐던 것입니다.

울산 동구에 있는 공무원 신분 중 가장 높은 신분인 동구청장. 고위 공직자라 여기는 저는 동구청장이 그곳에 그 시간에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오전 7시, 이름 시각이었습니다. 동구청장님은 방어진에 사시니 남목까지 오려면 적어도 1시간 전에는 일어나 준비하고 나서야 하는데 학교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지 조합원 태우려고 버스가 서 있는 자리로 수행원과 함께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때 버스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몇몇 조합원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회다 싶어 지나가는 말로 조심스레 이야기를 건넸는데 동구청장님은 쑥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언제든지 오세요"라고 했습니다. 수행원에게 연락처를 주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저는 순간 "야호" 하고 고함을 지를뻔 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서 속으로 웃기만 했습니다. 저는 아직 고위 공직자와 인터뷰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동구청장과 만나 궁금한 걸 물어보는 게 작은 소망이었는데 그 소망이 이뤄진 것입니다.

저는 서울 학비노조 집회를 다녀온 뒤 출근해서 바로 동구청으로 전화를 넣었습니다. 수행원을 찾아 당시 이야기를 한 뒤 "언제 가면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청장님 일정이 꽉 잡혀서요. 7월 4일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때 시간 어떠세요?"

수행원은 제 전화를 받고서 잠시 기다려 보라더니 잠시 후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동구청장님과의 만남이 진짜로 이뤄지려나 보다 생각하니 기분이 왜 그리 좋아지던지요. 소시민인 제가 언제 그런 고위공직자와 만나나 보겠습니까? 약속 잡을 땐 언제든 오라더니 동구청장 지위를 가지고 계셔 그런지 많이 바쁜가 봅니다. 2주 정도 지루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7월 4일이 됐습니다. 그분과 약속한 시간이 오후 5시 30분이었는데 막상 시간이 가까워지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뭘, 어떻게 인터뷰 해야지?'

"청장님이 다른 일정이 또 있어서 30분 정도 시간을 낼 수 있을 겁니다."

오후 5시 30분에 맞춰 저는 동구청사 2층으로 올라가 구청장실로 갔습니다. 그날도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청사 안에서 왔다갔다 했습니다. 청장실 앞에도 많은 분들이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부터 내밀었습니다. 명함에 적힌 제 이름을 보자 앞면있는 수행원이 반가워하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손님과 대화 중인지 잠시 기다렸습니다. 다른 분들이 나오자 수행원이 저를 구청장실로 안내했습니다. 동구청장님은 반가워하며 앉을 자리를 빼줬습니다.

"울산 사람들, 구청장 선거 때는 생활정치로 평가해"

2년간의 구청 행정에 대해 이야기 하는 김종훈 구청장님. 동구지역 살림에 대해 이야기 할때는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2년간의 구청 행정에 대해 이야기 하는 김종훈 구청장님. 동구지역 살림에 대해 이야기 할때는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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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리에 앉자 마자 대뜸 "울산이 고향이세요?"라고 물어봤습니다. 딱딱한 정치 이야기보다 그의 살아온 이야기가 더 궁금했습니다.

"저는 경주에서 태어났지요. 경주서 고등학교까지 나오고 울산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울산으로 이사를 오게 됐습니다."

김종훈 구청장은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지만 탈춤에 관심이 많아 동아리 활동을 더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저는 대학생활이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대학에 다니던 때가 1980년대였잖아요. 그땐 학교마다 학도호국단이란 이름으로 학생회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래서 6명의 친구를 모아 민주화 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드디어 1985년경 학도호국단에서 총학생회로 명칭을 변경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저의 운동은 그때부터 시작된거죠. 그러다 1987년 6월 항쟁이 터지고 7월부터 노동자 대투쟁이 봇물 터지듯 터졌지요. 저는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해서 학생회 간부를 그만두고 동구로 오게 됐습니다. 1989년 중공업 128일 파업에 함께 참여하면서 노동운동에 발을 디디게 된 거고요. 수배받다 잡혔는데 검사가 7년 구형해서 너무 길다 싶었어요. 그런데 실제 6개월 수감생활하다가 풀려났습니다. 1990년 들어 출소하면서 저는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동구로 이사 오게 됐습니다. "

김 구청장은 노동자와 문화를 결합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동구 전하동에 '울림터'라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풍물패·그림패·노래패·글쓰기 같은 다양한 문화운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그때 울림터가 모태가 돼 지금 '결'이라는 종합문화운동단체로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울림터가 자리가 잡히자 그는 당시 현총련에서 실무자로 일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게 되지만 갑자기 노모가 중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병원비 마련을 위해 건설 플랜트라는 정유기업 하청업체에 들어가 노동자로 2년가량 일하게 됩니다. 끝내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는 다시 동구로 와서 지역활동을 시작합니다.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지인들과 지역변혁운동을 하기위해 나섰죠. 대중을 정치 주인으로 세워나가는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 벽화 그리기나 지역 축제, 좋은 아버지 되기, 지역 등산회 운동을 해나갔습니다. 사람들과 만나면서 군림하는 정치에서 함께하는 정치로 정치의식의 변화를 모색해 나갔습니다."

김 구청장은 2002년 시의원을 한 경험을 살려 다시 2006년 구청장 후보로 나섰으나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2011년 4월 갑자기 전 구청장이 물러나면서 보궐선거를 하는 과정에서 제 6대 구청장으로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정OO씨가 2006년 구청장으로 당선되었지요. 그리고 2010년에도 당선되어 활동해오다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물러나면서 2011년 4월 27일 재선거가 치러졌고 주민들이 저를 지지해주어 고맙게도 이렇게 구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지요."

저는 동구에 살면서 여러 선거를 많이 접해 왔습니다. 그런데 보면 구청장은 진보계 인사가 자주되는 반면, 국회의원은 현대중공업이란 대형 회사 영향 때문인지 그곳과 연관된 인사들이 주로 당선되었습니다. 저는 동구 주민들의 그런 정치적 성향에 대해 궁금해서 물어보니 이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시의원도 해보고 2년 넘게 구청장도 해보면서 많은 주민들을 만나보니 주민들도 정치적 성향이 두루 있는 거 같았습니다. 국회의원은 국가를 상대로 활동하는 분야라서 국정운영 능력과 당, 전체 역량 같은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였고요. 구청장은 우리 마을을 위한 일, 즉 생활정치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사람 중심의 평가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서로 다른 성향의 정치인을 뽑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화 발자취 남기는 구청장

구청장으로 2년 넘게 활동한 김종훈 구청장. 2년을 구청장으로 보낸 감회는 어떨까요?

"청장 되고 몇 개월은 18만 주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룰수 없었어요. 일선 공무원들도 생각보다 일이 많았습니다. 오후 10시가 넘도록 일하는 공무원들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요.

2년 넘게 구청장으로 활동해 오고 있고 이제 1년 정도 남았습니다. 구청장으로 활동하다 보니 구청장이란 자리와 위치가 도깨비 방망이 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장애인이나 한부모 가정 같은 어려운 분들이 많이 찾아 옵니다. 그분들의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제 마음 한구석이 항상 무거워지곤 합니다. 돕고 싶어도 딱히 도울 방법이 없다고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완전한 지방자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중앙집권제와 지방자치가 반반씩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나은 주민복지를 위해 일하고 싶어도 걸리고 막히는 게 많아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느 때는 장애인 부모가 병원비를 좀 지원해 달라고 해서 알아보니 차상위 계층에 해당되지 않아 난감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병원 관계자를 만나기도 하고, 봉사단체와 연결하기도 하면서 해결해주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도저도 안 될 경우도 있는데 그땐 어쩔수 없이 지인에게 사정을 해서 그런 어려운 사정에 있는 분들을 돕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종훈 동구청장은 어떤 지방자치 행정을 꿈꿀까요?

"저도 노동자로 살아와 그런지 첫째로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는 동구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운동이란, 삶을 건강하게 가꾸어 나가는 거라 여기고 있습니다. 민주의 원리란 것도 주민을 중심에 두는 원리라 생각하고요. 주민들의 다양한 생각 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현장이 곧 정치다 해서 어떤 사업이 있으면 주민설명회를 자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주민과 소통하는 정치, 주민 중심의 행정, 주민불편사항 정취, 주민의견 정취와 토론 같은 가치가 참된 지방자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울산 동구를 인권도시가 되도록 선언했고요. 비정규직 차별없는 동구를 만들려고 비정규직 지원센터도 구청안에 만들었습니다. 저는 성장과 복지가 함께 동반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동구내 행정관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노력도 하고 있는 것이고 어쩔 수 없이 기간직이 필요할 때는, 최저임금보다는 생활 임금을 적용해서 사용하려고 합니다.

울산 동구는 대기업이 많습니다. 퇴직하신 분들 보니 갈곳도 쉴곳도 마땅치 않은 것 같았습니다. 수십 년 노동으로 골병든 몸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청년들도 보면 마땅한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어 지는 것 같습니다. 더디지만, 느리지만, 함께 가면서 함께 행복을 누리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는 문화운동과 노동운동을 결합하여 활동해온 경력자답게 구청장이 된 후 울산 동구 곳곳을 문화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슬도에 가면 파도 소리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가 들려옵니다. 1년에 한두 차례 슬도문화제란 이름으로 연주회도 하고 전시회도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저는 딸과 함께 대왕암 공원 달빛문화제에 참석한 경험이 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참여 했습니다.

그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도 함께 손잡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동구청 문턱을 낮추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민과 현장에서 소통하기 위해 걷기도 하고, 택시 면허증 따서 택시도 몰면서 주민을 만나기도 하고, 마을버스 타고 가면서 주민을 만나기도 하고, 새벽에 일어나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주민을 만나기도 하고, 대화의 날을 지정해 신청하는 주민이면 누구나 동구청장과 만나 속에 있는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기도 합니다.

"이사 오고 싶어하는 분 많이 만드는 게 꿈"

울산시 동구청사 건물 입구.
 울산시 동구청사 건물 입구.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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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동구청장은 이제 1년 남짓 남은 임기동안 참된 진보행정의 구현을 위해 힘을 쏟을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4년, 6대 민선 구청장 임기를 마친후 김 구청장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여러가지 크고 작은 사업을 많이 추진 중입니다. 3년이 너무 짧아 아쉽기도 하구요. 저는 울산 동구지역에 참된 진보 행정의 상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주민의 권리에 권력이 제대로 실려야 진정한 민주주의고 제대로 된 지방자치제도의 완성될 것 입니다. 인권의 도시, 비정규직도 사람답게 사는 마을,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활임금이 적용되는 동네. 공무원의 노고를 치하할줄 아는 구청장. 그래서 우리 동네 공무원이 서로 되고 싶어하고 우리 마을로 이사 오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게 하는게 제 꿈입니다. 그런 행복한 도시 동구를 건설하고 정착 시키기 위해 다시 한 번 도전해 볼까 생각 중에 있습니다."


태그:#울산 동구, #김종훈 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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