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밧줄, 독약, 칼, 권총, 독버섯 가루, 독가스, 면도칼...이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의 목록 일부이다. 하나 같이 우울한 얼굴을 한 손님들은 주인 부부에게 어느 것이 가장 효과가 좋은 지 상담을 하고는 물건을 구입해간다.

부부는 손님의 성별, 경제상태, 나이 등등을 고려해 적당한 것을 권한다. 그리고는 늘 큰소리친다. 마지막 가는 길 믿고 맡겨라, 효과는 보장한다. 왜? 안 죽으면 전액 환불해 주는데 이제까지 단 한 사람도 환불해 달라고 온 적이 없으니까.

영화 <파리의 자살가게>  포스터

▲ 영화 <파리의 자살가게> 포스터 ⓒ 롯데 엔터테인먼트


이 가게의 이름은 '자살가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 필요한 온갖 용품과 도구가 구비되어 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거나,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도 칙칙하고 어두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잿빛에 어깨는 축 쳐져있다.

얼마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은지 공공장소에서 죽으면 경찰이 벌금 딱지를 끊을 정도이다. 이러니 사람들에게서도 거리 풍경에서도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다.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들이 결국 이 가게를 찾으니 가게는 장사가 아주 잘 될 수밖에.

가업으로 물려받은 '자살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식구들은 아빠, 엄마에다가 어린 남매까지 합해서 네 명. 죽고 싶어 찾아 오는 손님들을 대하는 네 식구도 온전할 리 없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여서 웃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다들 거무죽죽 다크써클에 마지 못해 일과를 이어나가고 어디에서도 기쁨을 찾지 못한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엄마의 배가 만삭이다.

영화 <파리의 자살가게>의 한 장면  이 집에서 웃는 사람은 막내 알랑(가운데) 뿐이다...

▲ 영화 <파리의 자살가게>의 한 장면 이 집에서 웃는 사람은 막내 알랑(가운데) 뿐이다... ⓒ 롯데 엔터테인먼트


드디어 이 집에 막내 '알랑'이 태어난다. 알랑은 이 집안의 돌연변이인 듯, 태생이 밝고 명랑하다. 유모차 안에 누워 웃으며 옹알거리는 아기는 죽으려고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의 마음을 돌려 놓곤 한다. 무럭 무럭 자라 초등학생이 된 알랑. 아빠는 늘 웃고 명랑한 알랑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가게 주인인 아빠는 행복하게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사람들의 자살을 돕는다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려온 아빠. 견디다 못해 몸져 눕고 만다. 가게 안팍 모두 불행하다. 급기야 어린 알랑이 친구들과 힘을 합해 모종의 작전을 펼치고, 온갖 것이 무너져 내리고 나서야 결국 가게는 '크레이프(crepe)' 가게로 바뀌게 된다.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행복을 전해주는.  

뮤지컬이라서 노래들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음악이 아름답다. 거기다가 '자신에게 조금만 더 관대해져라' '삶은 죽음과 바꿀 수 없는 선물' 등의 노래 가사는 한 번쯤 곱씹어볼 만하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나 저 먼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영혼들의 후회 또한 예사롭지 않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도처에서 일어나는 죽음, 그 중에서도 가장 아플 수 밖에 없는 스스로 택하는 죽음을 직면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애니메이션이라고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가벼운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민을 담아 만든 덕에 단순한 만화영화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 삶과 죽음을 담아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다.

덧붙이는 글 애니메이션 뮤지컬 <파리의 자살가게, Le Magasin des suicides (프랑스, 캐나나, 벨기에 / 2012)> (감독 : 파트리스 르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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