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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오후 밀양역 광장에서 열렸다. 밀양 4개 면(부북면 4개 마을, 상동면 10개 마을, 산외면 3개 마을, 단장면 6개 마을)에서 온 할머니·할아버지, 역시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해오고 있는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주민, 부산·창원·서울 등지에서 온 시민 등 1000여명이 역광장을 가득 메웠다.

지금까지 주민들은 매주 한 차례 정도 밀양 영남루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어 왔는데, 이날 108회째를 맞아 더 많은 사람들이 밀양역 광장에 모였다. 밀양 송전탑 반대 촛불집회는 고 이치우(당시 74세)씨가 송전탑 반대를 외치며 분신자살한 뒤인 2012년 2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참가자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모습.
 '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참가자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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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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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수박화채와 주먹밥을 만들어 와 나눠주었고, 송전탑 반대운동을 새긴 옷과 배지를 판매하기도 했다. 일찍 온 할머니들은 출연자들이 '예행연습'할 때부터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춤을 춰 잔치 분위기가 났다.

사회를 본 김철원 밀양농민회 정책실장은 사투리를 섞어 가면서 걸쭉한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문화제는 '시끌벅적 공부방' 아이들의 사물놀이로 시작되었는데, 어린 꼬마들이 북과 꽹과리, 장구를 치자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손자들 재롱을 보는 듯 즐거워했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할머니들은 무대에 올라 '개나리처녀'를 함께 불렀다. 또 우창수·김은희 부부가 '아이들에게 생명을' 등의 노래를 불렀다. 이후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송전탑 공사를 막아냈던 상황을 담은 영상이 상영된 뒤 대학생들로 구성된 '초록농활대'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후엔 할머니들이 무대에 등장했다. 이른바 '패션쇼'다. 할머니들은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4계절 내내 입는 옷과 지니고 다녔던 물품을 들고 반주에 맞춰 춤을 추며 등장했다.

동화전마을 주민 2명은 봄에 입었던 옷과 밧줄을 몸에 걸치고 등장했고, 상동마을 할머니 2명은 여름 복장을 하고 모기를 쫓기 위해 지녔던 모기약을 뿌리면서 등장했다. 가을옷 치장을 한 평밭마을 할머니 2명은 물통을 들고 물을 뿌리며 등장했는데 이들은 당시 현장에서 물통에 오물을 담아 뿌렸다. 희곡마을 주민 2명은 두꺼운 외투에 두건까지 쓰고 등장했는데, 겨울 복장을 표현한 것이었다.

'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사진은 패션쇼.
 '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사진은 패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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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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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무대에 올라 한국전력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한이 맺혀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거나, 한국전력 직원을 '요것들'이라 부르면서 "요것들 때문에 못 산다"고 했고, "한국전력에 사진 찍히지 않으려고 마스크를 하고 있다"고 했으며, "한국전력 때문에 명대로 못 살겠고 차라리 내가 죽겠다는 각오로 싸운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전' '핵발전소' '765송전탑'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상자를 지팡이와 발로 박살내 버리는 상징의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마지막에 노래패 '맥박'이 대중가요 '황진이'를 개사한 '765송전탑반대송'과 '쾌지나칭칭나네'를 부를 때 주민들은 앞으로 나와 춤을 추기도 했다.

"쇼가 아니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김준한 공동대표(신부)는 한국전력공사를 맹비난했다. 그는 "한국전력은 겉으로는 주민과 성실하게 대화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지난 5월 20일 공사재개로 어르신들이 다치고, 알몸시위를 하고, 목을 매달려고 했는데 그것은 쇼가 아니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말했다.

김 공동대표는 "지난 5월 29일 '전문가 협의체'가 구성되어 20일이 지나고 있지만 한국전력은 아직 자료 제공을 거부하고 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해왔던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드러날까봐 그런 것이고, 유야무야 하려고 한다"며 "밀양송전탑 문제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이은지 부녀회장은 "청도 주민들도 송전탑을 막아내기 위해 싸우고 있는데, 지금은 할머니 10여명이 나섰다"며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이며, 밀양 할머니들 때문에 더 힘을 받고, 밀양 할머니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벌써 끝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핵부산시민대책위 이흥만 대표는 "우리는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해 싸우고 있는데, 밀양 어르신들의 투쟁은 '탈핵' 사회로 나아가는 새 기원을 만들고 있다"고, 민주노총 경남본부 김진호 사무처장은 "어르신들은 훌륭하고, 존경하며 끝까지 연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울산생명지키기 김대식 대표는 "송전탑 없는 맑은 밀양을 지키기 위해 나선 어르신들의 대단한 용기와 힘에서 희망을 얻었고, 할머니들의 투쟁은 노동자들한테도 큰 힘이 되었으며, 승리하는 그날 웃으면서 잔치를 벌이자"고 말했다.

'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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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할머니들이 공사를 막기 위해 투쟁했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상영하는 모습.
 '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할머니들이 공사를 막기 위해 투쟁했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상영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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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순례에 나선 YTN 해직기자들과 함께 밀양을 찾은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은 "신문과 방송이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데 제대로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어르신들처럼 사람이 사는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고 인권이 제대로 숨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밀양 주민들은 더 각오를 다졌다. 한옥순(66)씨는 "밀양 4개면 할머니들은 옷을 벗어가면서 송전탑과 싸우고 있으며, 우리는 지금 이기고 있고, 이길 수 있다, 그리고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한씨는 "엊그제 할머니 할아버지 200여명이 서울 국회 앞에 가서 '송·변전 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6월 임시국회에서 다루려고 하는 것을 막아냈다"며 "한국전력은 200가지 수법을 갖고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300, 400가지 수법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뭉치면 이기고 흩어지면 죽는다, 정부와 한국전력을 상대로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며 "우리는 이 좋은 밀양 땅을 후손에 물려주기 위해 목숨 걸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초록농활대 김윤영(서강대 4년) 학생은 "어르신들과 나눈 많은 이야기를 학교에 돌아가서 많이 전달할 것"이라며 "집 에어컨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전기로 돌아간다면 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선 밀양시의원(민주당)은 "만나본 많은 사람들이 전기가 없으면 어떻게 사느냐며 송전탑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도시사람들은 농약을 조금이라도 친 농산물은 사먹지 않으려고 하면서 사람이 사는 곳에 송전탑이 들어서도 된다는 말이냐"며 "밀양만 살려고 송전탑을 반대하는 게 아니고, 다른 지역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도 아니며 오직 백지화를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서울역에 가보았더니 전봇대 하나 없었다, 도시 미관상 좋지 않다며 세우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765KV 송전탑 아래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며 "송전탑이 들어서면 벌이 오지 않고 '기형 과일'이 생겨나는데 그런 과일을 도시 사람들은 사 먹지 않을 거 아니냐"고 덧붙였다.

'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밀양765KV송전탑 백지화 108회 촛불문화제'가 22일 저녁 밀양역 광장에서 "할매가 간다"는 제목으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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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촛불문화제는 2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송전탑 공사를 막아내느라 몸은 지쳤지만, 여름 밤을 웃고 춤추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면서 '또 싸울 것'을 다짐했다.

"우리는 보상이 필요 없다"

한편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경남 창녕에 있는 북경남변전소까지 가져가기 위해 9년 전부터 울산-부산(기장)-양산-청도-밀양-창녕 구간에 걸쳐 송전탑 공사를 벌이고 있다. 90.5km 구간에 모두 161기의 철탑이 세워지는데, 이중 밀양 4개면에 들어설 철탑은 52기다.

앞서 한국전력은 5월 20일부터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는데 이를 막는 과정에서 주민 20여명이 쓰러지거나 병원에 후송되었다. 5월 29일 국회와 한국전력, 밀양주민들은 '지중화' 등을 검토하기 위한 '전문가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고, 현재는 공사가 잠정 중단돼 있다. 전문가협의체는 7월 8일까지 활동하게 된다.

국회는 '송·변전 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일명 밀양법)을 6월 임시국회에서 다루려고 하다가 보류했다. 지난 21일 밀양 주민 200여명은 국회 앞에서 '릴레이 절 올리기'를 하면서 "우리는 보상이 필요 없다"고 외쳤다.


태그:#밀양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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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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