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낮 30도를 오르내리는 오뉴월을 치열하게 보낸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강의도 하고 직장일도 하면서 가로 7미터가 넘는 작품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마무리 했는지 지내놓고 보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대학원 선배에게 가끔 조형학을 배우러 가는데 그분은 나보다 더 힘들게 작업했다. 그 작업현장을 나중에 사진으로 보고 나는 처음으로 그 선배님에게 경외심이 들었다.

나이는 나보다 적지만 대학원은 나보다 먼저 전공을 했으니 선배이고, 붓 잡은 서력도 나보다 적지만 내가 엉뚱하게 비영리단체 일에 십 년 이상 몰두했을때 전업작가로 개인전을 13회 이상하고, 때론 한 작품을 위해 며칠 밤도 새운 분이니 서력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전심전력으로 일상의 모든 것을 집중했느냐를 따지면 나는 아예 비할 바가 안 된다.

선배도 강의를 하고 자영업을 하면서 작품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예는 특히 문자분야에서는  미술분야의 하나이지만 다른 분야와 달리 종이한 장에 점획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인데 하나의 점과 획을 잘못 표현하면 화선지나 한지 종이를 다시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서예를 배우는 사람은 가장 작은 종이인 1/8 크기(가로 세로 35센티미터 정도)부터 시작해서 점점 1/4, 1/2 크기를 사용하고 나중에는 비로서 가로 70센티미터에 세로 140센티미터로 종이원형이 만들어지기에 전지라고 불리는 크기를 사용할 수 있다.

대략 전지 한 장에 마음과 지식을 담아 작품을 표현하기에는 몇 년이 걸린다. 전지보다 1/2 더 큰 종이를 국전지라고 하는데, 국전지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개 5년에서 10년 이상의 서력이 있으며, 국전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회에 내기 위해 국전지를 사용한다. 가로 7미터 이상의 크기는 국전지를 10장 이상 연결한 종이이다.

나는 이번 작품을 국전 크기의 종이를 먼저 사용해서 작품을 하고 그것을 연결하는 방법을 택했다. 국전 크기의 작품을 서서 연달아 쓰는 것도 참 힘든 작업이었고, 완성한 작품을 연결하는 작품도 고등학교 강당을 빌려서 해야 할 만큼 쉽지 않았다.

국전지크기의 종이에 헌법을 쓰는 장면
 국전지크기의 종이에 헌법을 쓰는 장면
ⓒ 이영미

관련사진보기


개인전을 2번 이상 개최한 사람에게만 헌법을 쓸 자격이 주어졌는데 나는 개인전을 5회 했지만 선배는 그동안 10회를 넘는 개인전을 하였다. 그만큼 평소에 학습과 집중을 했다는 것을 뜻하고 그만큼 문자학의 창작열이 높고 사고가 남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작품제작방식 자체가 나와는 너무 달랐다. 아니 나는 감히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나도 나름대로 그동안의 현장경력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해내었지만, 나처럼 국전지에 써서 작품을 연결한 것이 아니라 종이를 먼저 연결해놓고 그 종이 위에 올라가서 작업을 했던 모양이다. 작업을 한 사진 장면과 같은 동문들에게 이야기를 전해듣고 나는 목뒤가 서늘한 전율과 경외심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 하는 자성이 들었고, 앞으로 더 정진해서 기량을 향상 해야 되겠다는 각오도 들었다.

어저께 동문들에게 사발통문이 들려졌다. 그 선배의 대한민국헌법전문작품이 당선되어 국회 로비에 작품이 청동주물로 설치된다고 했다. 개인의 영광뿐 아니라 가문과 동문의 영광이기도 하다, 누구는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작품을 제작한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절대로 운이 아니다.

평소에 그렇게 그만큼 집중을 하고 그 집중을 유지할 수 있는 체력을 키우고 국한문혼서인 작품에 대한 해석력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평소에 그만큼 집중을 했다는 것은 하루의 반나절 또는 종일을 한 글자도 안 틀리고 쓸 수 있다는 것은 평소에 날밤을 새워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연마의 세월이 숨었다는 것을 뜻한다.

7미터가 넘는 종이위에 바로 헌법을 쓰는 장면
 7미터가 넘는 종이위에 바로 헌법을 쓰는 장면
ⓒ 일정, 이영미

관련사진보기


하수와 중수와 고수의 세상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한때 나는 하수였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을 지도하고 개인전을 개최하고 국립공공기관에 작품들이 선정되면서 중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문하생들이 많이 생기고 서력 40여 년을 바탕으로 가끔은 고수가 되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언뜻 들었는데 그것은 나 혼자만의 자만이고 착각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겸허하게 깨달았다.

그 착각을 할 수 있는 자체가 나는 아직도 중수도 아닌 하수이다. 그래서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붓 길을 걸어갈 것이다. 떨어져도 기분이 좋은 것은 초심을 생생하게 뒤돌아 볼 수 있는 경험을 한 것이고, 당연히 떨어져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그:#대한민국헌법전문작품쓰기, #일정서예, #근원이영미, #국한혼서작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과의 소통 그리고 숨 고르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