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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령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전사업본부장이 19일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원전 마피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병령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전사업본부장이 19일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원전 마피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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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마피아는 외국 회사 위해 국익을 훼손하는 세력이다."

국내 '원자력발전 마피아'의 실체를 폭로한 책이 뒤늦게 화제다. 지난 2011년 6월 <무궁화 꽃을 꺾는 사람들>(바름터)을 통해 미국 원전업체인 '웨스팅하우스 배후론'을 제기한 이병령(66)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전산업본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 원자력발전의 대부'로 불리는 한필순 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이 최근 정부에 제출한 '원전 비리 근원과 근절 대책'이라는 보고서가 발단이 됐다. 한 고문은 지난 17일 "최근 원전 부품 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1980년대부터 원전기술 자립을 방해하고 외국 의존을 주장했던 원전 산업 마피아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일부 공개한 보고서 내용은 '기술 매판 세력'을 고발한 이 전 본부장 책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70~80년대 웨스팅하우스 장학생들이 한국 원전업계 장악"

19일 오전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병령 전 본부장은 "직장 상사로 뜻을 같이해온 한 고문이 '이제 때가 된 거 같다'면서 원전기술 자립에 반대하는 세력과 투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면서 "보고서에는 70년대부터 활동한 '원전 마피아' 1세대 가운데 3명 정도 실명을 직접 거론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이 전 본부장은 "국내 원자력계는 푹 썩을 대로 썩은 구렁텅이"라면서 "시험성적서 위조도 이미 10년 넘게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정부만 몰랐는데 이번에 삐져나왔을 뿐 우연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 전 본부장은 2년 전 쓴 책에서도 "원전 분야에서 국익보다 외국 편을 드는 '기술매판' 세력이 있다"면서 "그들은 소수지만 우리 정부 일부 부서, 일부 공기업과 사기업, 연구기관 등 원자력 관련 거의 모든 조직에 포진해 있어 그 힘이 막강하며 원전 수출과 기술 개발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00년대 중반 대중국 원전 수출 무산과 지난 2010년 이태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추진했던 대미 원전 수출 차질을 꼽았다.

미국 원전 설계업체인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1978년 고리1호기를 시작으로 한국에 원전을 수출해왔고 그 과정에서 국내 원전업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 2006년 일본 도시바가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고 중국 원전을 수주한 뒤에도 이른바 '웨스팅하우스 장학생'이 한국 원전업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게 한 고문과 이 전 본부장의 주장이다.    

이 전 본부장은 "그 숫자는 15~20명 정도"라면서 "막연한 숫자가 아니라 누구 누구인지 찍을 수 있을 정도지만 명확한 증거를 확보한 게 아니라서 구체적 리스트를 공개할 순 없다"고 밝혔다. 다만 "지방 발전소엔 가지 않고 본사에서 계약이나 기획 관련 주요 부서에 일하면서 해외 출장이 잦은 부류"라고 지적했다. 또 최근 김균섭 전 한수원 사장 후임으로 거론되는 유력 인사 가운데도 '원전 마피아'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90년대 한국형 원전 개발 총책임자였던 이 전 본부장은 대북 경수로 지원 사업에 한국형 원전을 채택하는 데 공헌했지만 95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경질됐다.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 전 본부장은 대전 유성구청장을 연임하기도 했지만 2004년과 2008년 자유선진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해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지난 2010년부터는 한국형 원전 수출 마케팅회사인 뉴엔파우어 대표를 지내고 있다.

한국형 원전 수출 주장했다가 원전업계 '왕따'... "한전에 수출 맡겨선 안돼"

이병령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전사업본부장이 19일 오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원전 마피아' 문제를 지적한 저서 <무궁화꽃을 꺾는 사람들>을 펼쳐 보고 있다.
 이병령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전사업본부장이 19일 오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원전 마피아' 문제를 지적한 저서 <무궁화꽃을 꺾는 사람들>을 펼쳐 보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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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중국 원전 수출 무산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 유착설'을 제기하면서 국내 원전 업계에선 '왕따' 취급을 받고 있다. 이 전 본부장은 "이미 우리 기술로 한국형 원전을 개발했는데도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바람에 중국 원전 수출이 무산됐다"면서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도 계속 이들에게 맡길 게 아니라 민간업체에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주장에 대한 원자력계 평가는 엇갈린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과거 원전 기술 자립화 과정에서 한필순 고문과 이병령 전 본부장 같은 추진파들이 반론을 제기했지만 원전업계는 소수의견으로 묵살했다"면서 "지금도 홀로서기를 방해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최근 원전 부품 비리 상황도 일본, 미국, 프랑스 등 경쟁국에서 반기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박기철 전 한수원 전무(발전본부장)는 "이 전 본부장은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동의 없이도 우리 독자적으로 원전 수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핵심 부품이 100% 국산화되지 않은 현실에선 우리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면서 "자기하고 논리가 다르면 웨스팅하우스 비호세력으로 모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박 전 전무는 "우리 독자적인 원전 기술을 개발해 수출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면서 "지난해 착공한 신울진 1, 2호기는 100% 국산화돼 앞으로 4~5년 뒤엔 특허나 수출 문제도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이병령 전 본부장은 "지금은 우리 원전 기술이 웨스팅하우스보다 앞선다"면서 "한수원이 지난 20년간 원전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인 냉각제펌프(RCP)와 제어계측시스템(MMIS)을 국산과 유럽 제품을 놔두고 웨스팅하우스와 수의계약한 것도 유착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태그:#원전 마피아, #이병령, #한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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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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