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둘째 아이 농구시합이 열리는 날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가 학교대표로 지역 농구대회 예선에 나간다. 구기 스포츠를 좋아하는 아이는 4월에는 학교대표로 축구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축구대회가 열린 날, 나는 경기장에 가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그날 난 막내가 다니는 어린이집 텃밭에서 잡초 뽑는 일을 했다.

학부모가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막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부모협동조합어린이집. 한마디로 일반어린이집보다 부모들이 하는 일이 많다. 오전 내내 뙤약볕에서 일하면서도 둘째가 참여한 축구경기가 궁금했다. 둘째는 아직 휴대전화가 없다. 물론 내가 안 사줘서. 그래서 둘째 친구에게 전화로 해서 경기 결과를 물었다.

"아줌마, 환이(가명)가 동점 골 넣었어요. 그래서 무승부에요."
"진짜 환이가?"

깜짝 놀랐다. 둘째는 열심히 축구부 활동을 하긴 했지만 빼빼 말라서 운동하기에 좋은 체격 조건은 아닌데 동점 골을 넣었단다. 얼마나 잘했을까? 골 넣는 장면을 보았어야 하는데 아쉬웠다. 내가 봤으면 아이도 더 좋아했을 텐데. 막내 유치원 텃밭에 잡초를 뽑는 일이 무에 그리 중요하다고 둘째 경기장에 안 갔을까 하는 후회막심이다.

 둘째가 지역 축구 대회에 나가서 골을 넣고 상으로 받은 축구공
 둘째가 지역 축구 대회에 나가서 골을 넣고 상으로 받은 축구공
ⓒ 강정민

관련사진보기


며칠 뒤, 둘째는 새 축구공을 가지고 집에 왔다.

"뭐야?"
"오늘 체육선생님이 선물로 주셨어. 대회 때 골 넣은 나랑 주장이랑 두 명이 받았어."
"진짜? 좋았겠네."
"엄마, 나, 이 공 절대 안 쓸 거다."

아이 얼굴이 연신 싱글벙글이다. 웃음꽃이 피었다. 방에 가지고 들어가서는 책상에 올려놓는다. 그러더니 "엄마 이 공 윤뚱이(동생) 절대 못 만지게 해. 알았지?" 한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 담임선생님과 상담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선생님이 물었다.

"어머니, 환이가 축구대회 때 골 넣어서 공 선물 받은 거 아시죠?"
"네."
"그날 환이가 공을 들고 교실로 들어오는데 그 표정이. 진짜 세상을 다 얻은 거 같았어요."

수줍음이 많은 아인데 아마 그날은 기쁨을 숨기지 못했나 보다. 아주 좋아서.

둘째아이가 출전한 농구대회, 열 일 제쳐놓고 구경 가야지

그런데 또 다시 대회가 열린 것이다. 열 일을 제쳐놓고 농구 지역 예선에 참석하리라 다짐을 했다. 금요일 오후 세 시에 열린단다.

대회 당일 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막내를 데리고 대회가 열리는 학교로 출발을 했다. 경기가 열리는 체육관에 들어가니 우리 아이 학교 경기가 한참 진행 중이다. 응원석에 오르니 둘째가 보인다.

"엄마, 우리가 이기는 중이야."
"넌 왜 안 뛰어."
"난 아까 뛰다가 선수 교체했어."

막내는 형들이 많으니 신이 나는지 형 옆자리에 앉겠다고 치대다가 둘째한테 혼이 난다.

점수 차가 많이 나는데도 몸싸움이 심하다. 저러다가 다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그저께는 반 대항 축구대회에서 골키퍼 노릇을 하던 고등학생 첫째가 골을 막다가 운동장에 넘어져서 정강이가 다쳤다. 대수롭지 않은 부상이라 생각했다가 결국 응급실에 가서 엑스레이 찍고 치료를 받았다. 피부가 찢어지고 갈라진 틈이 몇 밀리미터 안 돼서 꿰매지는 않았지만, 마취액을 뿌리고 칫솔로 모래와 이물질을 긁어냈다.

그런 일이 있고 보니 아이들이 다치면 어쩌나 경기를 보는 내가 걱정스러웠다. 심판을 보는 선생님이 몸싸움을 하는 것에 대해 파울을 주지 않는다고 둘째는 불만이다. 학교 체육선생님마다 돌아가며 심판을 보는데 파울에 관한 규정이 선생님마다 차이가 있나 보다.

다행히 부상 없이 경기가 끝났다. 큰 점수 차로,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승리를 했다. 두 번째 경기는 다른 학교끼리 하는 경기다. 우리 아이들은 쉬면서 구경을 한다. 어떤 팀은 단체복도 없다. 준비가 부족했나 보다. 단체복이 없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위축돼 보인다. 교체 선수도 없이 점수 차도 많이 나는데 포기하지 않고 뛰는 아이들을 보니 기특하고 또 안쓰럽다.

또 다시 우리 둘째네 팀 경기가 열렸다. 슛을 하는데 골이 들어가지 않는다. 보는 내가 답답할 정도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공을 던진다. 제발 들어가길 바랐지만 무심하게도 골은 들어가지 않았다. 보는 내가 이리 답답하니 아이는 또 얼마나 답답할까? 옆에서 지켜보던 체육 선생님의 한숨 소리도 들린다. 그래도 다행히 얼마 뒤, 아이가 골을 넣었다. 기초체력이 약하니 농구훈련을 열심히 하는데도 후반전에 가면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활짝 웃는 아이 얼굴이 좋아서 새 농구공을 사줬습니다

 둘째가 들고 다니는 야구 가방과 야구용품들
 둘째가 들고 다니는 야구 가방과 야구용품들
ⓒ 강정민

관련사진보기


사실 둘째는 운동을 잘하는 아이가 아니다. 1,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제일 결석을 많이 하는 아이였다. 감기에도 잘 걸려서 툭하면 결석했다. 1학년 운동회 때도 5명이 달려 3등 안에도 못 들었다. 그래서 '상' 도장 찍힌 공책을 한 권도 못 받았다.

건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놀이터에서 열심히 놀게 학원도 안 보냈다. 그랬더니 친구들한테 야구를 배워서 무척 열심히 했다. 3, 4학년 때는 가방에 야구 글러브, 야구공, 야구 배트까지 넣고 공원으로 야구 하러 다녔다. 학교 갈 때도 식당에 밥 먹으러 갈 때도 손에 야구 글러브를 끼고 다녔다.

작년 5학년 때부터 농구부에 참여했다. 한 달간 매일 아침 7시 10분에 집을 나서서 7시 반부터 8시 반까지 시청 농구장에 가서 농구훈련을 하고 매일 점심 먹고 또 점심시간에 훈련하고 또 수업 끝나면 한두 시간씩 훈련을 한다. 매일 아침 내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났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참 기특했다.

작년 말, 체육 선생님이 '생활통지표'에 적어주신 글은 이랬다.

근력과 근지구력이 약간 부족하지만 높은 과제 집착력으로 도전 활동과 경쟁 활동에서 우수한 성취도를 보입니다. 멀리 던지기 활동이나 야구형 게임에서 빼어난 성취도를 보임.

글을 읽으면서 웃었다. 체력조건은 아닌데 과제 집착력은 있다. 점수 내는 구기 스포츠에 승부근성을 보인다. 그런 탓인지 체육선생님이 같이 보내준 아이 체육시간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오만 인상을 다 쓰고 있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은 골을 넣으려고 발차기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야구 하러 공원 가는 모습
 야구 하러 공원 가는 모습
ⓒ 강정민

관련사진보기


그러더니 6학년이 된 올해는 4월 축구대회에 이어 6월엔 농구대회까지 학교 대표로 참석을 한 것이다. 농구 지역 예선에선 조 1위가 되어야 2주 뒤에 열리는 지역 4강 대회에 나갈 수 있다. 경기 하는 것을 지켜보니 조 1위가 가능해 보인다. 2주 뒤 경기에 아이가 참여를 하게 된다면 응원하러 가야겠다.

나중에 아이가 스포츠 선수가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지금의 경험은 소중한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게다가 건강은 덤으로 얻게 되고. 이런 체육행사들이 많이 생겨서 보다 많은 아이들이 이런 경험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여자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세심한 배려로 종목을 선별하면 여자 아이들의 참여도 이끌 수 있을지 않을까?

농구 지역 예선이 열린 다음 날, 아이에게 좋은 농구공을 새로 사주었다. 아이 얼굴엔 또 다시 함박꽃이 피었다. 활짝 웃는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자식이 참여하는 스포츠 경기를 볼 기회를 나에게 주어서.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주어서.


#학교 스포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