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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북한이 미국에 북미 당국 간 고위급 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당초 기대를 모았던 남북 당국회담이 수석대표의 '급' 문제로 무산된 지 5일만이다.

북한 국방위 대변인은 이날 한반도 비핵화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조선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미국 본토를 포함한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담보하는 데 진실로 관심이 있다면 조(북)·미 당국 사이에 고위급 회담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특히 북한은 자신들의 핵보유국 지위는 조선반도 비핵화까지 한시적인 것이며, 조선반도비핵화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이며 정책적 과제라고 밝혀, 지난 주 미중 정상회담이 합의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수용하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

북한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 유훈"

담화는 표면적으로 미중 정상이 북한 핵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합의한 것을 겨냥해 '그 누가 인정해주든 말든' 핵보유국 지위가 "조선반도 전역에 대한 비핵화가 실현되고 외부의 핵위협이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이제까지 북한의 입장에 비해 전향적인 태도로 해석된다.

북한은 얼마 전까지만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에는 일절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에 비하면 이번 담화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미국의 핵위협 제거'라는 보다 구체적인 목표를 내세운 현실적인 협상 의제를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6일 낮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북한은 전략적 판단아래 본격적인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북한 주도 '대화 다이나믹스'에 한국과 미국 화답해야"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자료사진)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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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수석연구위원는 또 "미국이 이번 북한의 대화제의를 바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현재 중국과 북한이 주도하고 있는 '대화 다이나믹스'에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든 화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백 수석연구위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지 5일 만에 북한이 미국에 대해 고위급회담을 제의했다.
"북한이 최근 적극적으로 대화로 나오고 있는 것은 김정은이 지난 반 년 동안 전쟁위험을 무릅쓴 '기 싸움'을 하면서 나름대로 추구했던 3가지 목표와 연결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김정은은 '젊고 경험이 적은 사람인데도 결코 허약하지 않고 강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대내외적으로 '강력한 지도자상(像)'을 확립코자 했다. 둘째,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김정은은 위기 고조를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에 '대화와 협상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코자 했다.

결국 '언제까지 이처럼 군사적 대결을 반복해야 하느냐'고 묻으면서, 이번 위기가 끝나면 '다시 협상장에 앉아 현안들을 해결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북한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목표는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세 번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대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대화제의는 임기응변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전략적인 것이다. 김정은이 주변국들의 새로운 지도자들과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자신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여는 데서 지난 반년을 허비하고 난후, 지난 5월 20일 미항모 니미츠호가 참여한 동해에서의 한미해상합동훈련을 끝으로 올해 들어 한반도에서 군사안보위기가 실질적으로 종료되자, 이제 자신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기 위한 대화노선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주장하듯 '그동안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원칙을 가지고 북한을 대했기 때문에 굴복해 들어왔다'는 얘기는 지극히 우리 식의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아닌 이상, 완승완패는 없는 법이며, 특히 '기 싸움'에서 굴복하고 들어올 북한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것 아닌가.

북한은 최룡해를 특사로 중국에 보내 미국 등 국제사회에 '대화하고 협상하자'는 입장을 공표했다. 북한으로선 자신의 뜻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미중정상회담과 한중정상회담을 앞두고 타이밍을 맞춰 대화노선을 천명한 것이다. 남북간에는 개성공단 같은 현안들이 있으니 먼저 남한하고 대화를 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게도 대화 제의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그러져버렸으니 미국하고의 직접 대화를 통해서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 미국은 북한의 이번 대화제의를 받아들일까.
"미국이 당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자신들은 대화에 나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계속 반복적으로 확인해왔다. 그 말을 갑자기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워싱턴의 '대화파'들이 거의 사라지고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난 번 남북대화가 중요했다.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미국도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나올 명분이 없는 것 아닌가.

요는 이번에 중국과 북한이 공동으로 시작하는 '대화 다이나믹스'에 북한이 아주 주도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우리가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 등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우리 정부하고 미국이 이걸 어떻게든 받아야 한다. 이번에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되었지만, 북한으로서도 물밑대화를 시작해야 할 처지고, 우리도 그렇다. 그렇게 되어야 미국이 움직일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오른쪽)과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오른쪽)과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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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다이나믹스' 놓치면 피동적 행위자로 남게 될 것"

-미·중 정상회담이 얼마 전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한·중 정상회담이 곧 열린다.
"지금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국제정치는 큰 용틀임을 하고 있다. 맥락은 다르지만, 닉슨과 마오쩌둥이 만나 미중관계정상화를 이뤘던 1972년의 상황과 비교할 수 있다. 당시 중국과 북한은 '샹하이 코뮈니케' 전후에 고위급들이 베이징과 평양을 왔다갔다하면서 아주 긴밀하게 정책조율을 했다. 그것이 결국 남북 간에 7·4공동성명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이번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만나 '신형 대국관계'의 서막을 선언하면서 국제질서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 지금 동아시아 정세가 세계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신형 대국관계'라는 것이 '서로 싸우지 말고 협력하고, 대화를 통해 서로 윈윈하자는 것' 아닌가. 그리고 지금 북한이 이러한 국제정치의 변화의 맥락 속에서 중국과의 공조를 통해서 전면적인 대화제의를 하고 나오고 있다. 바로 이걸 받을 건가, 말 건가가 우리 정부가 당면해 있는 문제인데, 이것을 받아, 마치 1972년에 '7.4공동성명'에 나왔듯이, 2013년에 새로운 남북관계를 구축하는 남북공동선언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북한의 대화제의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 역사적인 동아시아 국제정치 '대화 다이나믹스'에서 주동적으로 참여해서 상황을 끌어가는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의해 끌려가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행위자로 남게 될 위험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한반도문제를 다루는 데서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어가는 기회를 영영 잃게 될지도 모른다. 미중관계라는 것도 지금은 서로 협력하여 '윈윈'하는 면이 크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대결'의 국면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우리민족이 지금 서로 힘을 합해 민족화해, 평화정착, 통일로 가는 협력의 틀을 확고히 만들어 놓지 못하면, 나중에 미중양국의 대결에 희생양이 되어 남북한은 실로 한반도 분단 상황을 앞으로 또 오랫동안 지속하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국제정치와 역사의 중요시점에 와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태그:#백학순, #북미 고위급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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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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