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버뱅크에 위치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의 난쟁이들이 받치고 있는 팀 디즈니 빌딩을 월트 디즈니(1901~1966)와 미키 마우스가 바라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뱅크에 위치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의 난쟁이들이 받치고 있는 팀 디즈니 빌딩을 월트 디즈니(1901~1966)와 미키 마우스가 바라보고 있다.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미국 LA 현지 취재-오마이스타 ■취재/이현진 기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쥐가 있다. 그냥 쥐와 미키 마우스. 1928년 <증기선 윌리>라는 최초의 유성 애니메이션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캐릭터 미키 마우스는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를 건재하게 한 장본인이자, 애니메이션의 역사다. 월트 디즈니가 생전 자주 써왔다는 말처럼 정말 "모든 것은 쥐 한 마리에서 시작"됐다.

애니메이션으로 성공한 디즈니는 이제 픽사·마블·루카스필름까지 거느리는 거대한 꿈의 공장이 됐다. 전 세계 아이들을 키워낸 애니메이션 캐릭터부터 우리나라에서만 6400만 달러를 벌어간 <아이언맨3>의 토니 스타크, 곧 새로운 시리즈로 팬들을 만나게 될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까지, 이제 디즈니에서 '한솥밥'을 먹는 식구다.

다양한 디즈니 콘텐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1955년 만들어진 놀이공원 디즈니랜드다. 지난 11일 방문한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의 디즈니랜드에서는 따끈따끈한 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시작한지 이제 3주가 된 '미키와 마법지도(Mickey and Magical Map)', 이른바 '미키쇼'다. 미키마우스가 이끄는 이야기 속에 포카혼타스·뮬란·라푼젤 등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등장해 해당 영화의 주제곡을 부르는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지어진 디즈니랜드의 연 평균 입장객 수는 1천만 명이 넘는다.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지어진 디즈니랜드의 연 평균 입장객 수는 1천만 명이 넘는다.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디즈니랜드의 수많은 볼거리 중 하나인 미키쇼를 포함해 길거리에서 파는 프레즐까지 미키마우스 모양인 이 놀이공원 자체가 그간 쌓아놓은 콘텐츠 덕분에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콘텐츠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 가장 신선한 얼굴은 개봉을 코앞(국내 개봉 9월 12일)에 둔 <몬스터 대학교>의 설리와 마이크. 얼마 전에는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메리다 공주가 디즈니랜드에 입성하며 개관식을 가졌다고 하니, 디즈니의 캐릭터들은 영화가 끝나도 금의환향할 곳이 있는 셈이다.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대중과 친숙해진 브랜드의 인지도는 디즈니의 강력한 무기다. 20세기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와 그 자녀에 손주들까지 아우르는 힘은 디즈니랜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아이는 물론, 팔뚝의 용문신이 선명한 덩치 큰 아저씨, 호호 할머니까지 미키 티셔츠와 미니 머리띠를 통해 하나 되는 모습으로.

85세 미키 마우스가 건재하고 있는 이곳

 디즈니 스튜디오 내부에 있는 아카이브에는 90년 월트 디즈니의 역사가 보존되어 있다.

디즈니 스튜디오 내부에 있는 아카이브에는 90년 월트 디즈니의 역사가 보존되어 있다.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한화로 무려 10만원(하루 기준 92달러, 3~9세 86달러)이 넘는 디즈니랜드의 티켓 값을 흔쾌히 지불하게 만드는 곳은 캘리포니아 버뱅크에 위치한 월트디즈니 스튜디오다. 

사실 이번 방문은 신작 영화 <론 레인저>의 개봉을 앞둔 디즈니가 한국 기자단만을 초청해 진행한 디즈니 미디어 서밋(Diseny Media Summit)의 일환이다.(관련 기사: <디즈니가 놀란 이유 "세계 어디에도 한국 같은 곳 없다">) 알란 혼 디즈니 스튜디오 회장과 <론 레인저>의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직접 간담회에 나선 이날, 행사 전에 스튜디오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두 사람보다 먼저 우릴 반긴 것은 미키 마우스의 손을 잡고 있는 월트 디즈니의 동상과 거대한 난쟁이 7명이 지탱하고 있는 일명 '난쟁이 건물'이었다.(백설공주는 어디로 갔는지 없다!) 총 54개의 건물로 이뤄진 이곳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캔자스시티에서 광고용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니다가 직접 스튜디오를 설립한 월트 디즈니가 영욕을 경험하고 1940년 옮겨온 이후 성공의 발판이 되었다.

월트 디즈니, 이어 경영을 맡았던 그의 형 로이 디즈니와 조카 로이 E. 디즈니로 물려서 사용한 방이 있는 건물도 남아 있고, 작화(Animation)와 선화&채색(Inking&Painting)이라는 건물명도 그대로 적혀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지 않는다. 애니메이터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글렌데일에 있는 스튜디오에 따로 모여 있다고 한다.

대신 아카이브가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었다. 생김새가 좀 더 쥐에 가까웠던 초기 미키 마우스 캐릭터부터 20세기 디즈니를 이끌어 온 다양한 작품의 초기 스케치와 콘셉트 아트워크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전설적인 애니메이터 글렌 킨의 스케치를 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그는 1974년 디즈니에 입사해, 르네상스기라고 할 수 있는 1990년대 <인어공주><미녀와 야수><알라딘><포카혼타스> 등의 아트워크 전반을 만들어내고, 최근 <라푼젤>에도 참여했다. 

 199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기를 이끈 애니메이터 글렌 킨이 그린 <미녀와 야수>(1991)의 스케치.

199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기를 이끈 애니메이터 글렌 킨이 그린 <미녀와 야수>(1991)의 스케치.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디즈니 스튜디오 아카이브에 있는 미키 마우스의 공식 초상화.

디즈니 스튜디오 아카이브에 있는 미키 마우스의 공식 초상화. 그 아래 초기 애니메이션 장치인 조트로프(Zoetrope)도 보인다.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디즈니 스튜디오 내부에 전시돼 있는 거대한 크기의 멀티플레인 카메라. 지금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발달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더 이상 이렇게 큰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디즈니 스튜디오 내부에 전시돼 있는 거대한 크기의 멀티플레인 카메라. 지금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발달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더 이상 이렇게 큰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이밖에 미키 마우스가 50세가 되던 해 그렸다는 공식 초상화와 1930년부터 디즈니를 먹여 살린 캐릭터 상품들, 영광의 오스카 트로피 등도 아카이브에서 볼 수 있었다. 월트 디즈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32개의 트로피를 거머쥔 오스카 최다 수상자다. 또,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발달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거대한 멀티플레인 카메라(Multiplane Camera)도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첫 작품인 단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1923년경 공개됐으니, 무려 90년의 역사. 이제는 미키 마우스가 85세, 백설공주도 75세가 되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그들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1959)는 오로라 공주에게 저주를 걸었던 마녀를 주인공으로 삼은 <말레피센트>(2014)로 재해석되고, <메리 포핀스>(1964)는 영화를 제작하던 당시를 다시 영화화한 <세이빙 미스터 뱅크>(2014)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조우, 콘텐츠의 다양한 활용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100주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이제 식구들도 늘었으니, 콘텐츠 간 시너지 효과를 더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이를테면, 버즈 라이트 이어와 다스베이더의 은하계 만남 주선 같은 것 말이다.


디즈니 미키마우스 애니메이션 캘리포니아 스타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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