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 문재인·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이광석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장(현 서울지하철경찰대장)은 기자 브리핑을 열었다. 전날 밤 11시 기습적으로 중간수사결과 보고서를 내자 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서장은 이번 사건의 초유의 관심사였던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분석한 결과 게시글은 물론 댓글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또 수사 발표 시점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지적에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가 오후 10시 30분에 나왔다"며 "국민적 관심이 커 바로 발표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게시글 없다' 짜맞추기... 검찰 수사로 드러나

하지만 이 서장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분석 작업을 맡은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은 국정원 직원 김씨가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유리한 글,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 불리한 글을 쓴 증거를 이미 확보했다. 하지만 이 서장과 배석했던 한 분석관은 "비난이나 지지 관련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모두 윗선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4일 검찰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발표하면서 이들의 말은 거짓말임이 증명됐다.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문에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실 녹화영상을 첨부했다. 이 자료에는 그들이 중간수사결과 발표 하루 전부터 김씨의 하드디스크를 어떻게 분석했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15일 오전 4시 2분의 녹화영상을 보자. 먼저 분석팀은 국정원 직원 김씨의 닉네임을 발견하고 박수치며 환호한다.

국정원의 정치·선거 개입 의혹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이 14일 수사결과 발표문에 첨부한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실 녹화영상'과 분석관들의 대화 내용 일부.
 국정원의 정치·선거 개입 의혹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이 14일 수사결과 발표문에 첨부한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실 녹화영상'과 분석관들의 대화 내용 일부.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12월 15일 오전 4시 2분부터 9분 사이]
분석관1
: "주임님 닉네임이 나왔네요."
(분석관 두 명 박수)
분석관1 : "피곤하죠? 한 시간이면 끝나겠죠? 이거 봐요."
분석관2 : "음… 우리가 찾았네. 일단은 이 사람이 쓴다는 부분이 나왔네."
분석관1 : "고기 사주세요."
분석관2 : "국정원이 책임… 지우지 말라고… 다 있어… 일단 이 자료부터."
분석관1 : "이거는 수사팀에다 구두로 넘겨주자. 있는 거가 중요하니까. 팩트만 넘기고 판단은 거기서 하게 합시다. 우리가 판단하지 맙시다."

통상적으로 분석 과정에서 증거 및 수사단서를 발견할 때에 이를 신속히 수사팀으로 넘기게 돼 있다. 분석관들도 이러한 절차에 따라 수사팀에 발견된 중요수사 단서인 ID·닉네임 등을 인계해주려 했다. 하지만 이날 새벽이 지나 밤이 되자 분석관들의 말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12월 15일 오후 9시 44분]
분석관 : "어제 피의자가 진술할 때 인터넷 기록을 지웠다고 한 거예요. 그래서 뭐가 맞냐 분석했던 사람들을 불렀던 거예요. 그래서 욕먹은 게 너희는 회의 안 하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을 먹을 거냐, 그리고 수서서에 가서 분석관 ○○○과 분석관 ○○○ 둘이서 발표한대요."

피의자신문조서를 검토했고 미리 수서서 발표가 정해져 분석관 2명이 발표에 참여하기로 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한 분석관은 "예상질문을 정리해달라고 해서 작업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분석관들은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당시 후보의 복지정책을 비판하는 등 정치 관련 게시글을 확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월 15일 오후 11시 41분]
분석관2
: "주임님 투데이, 오늘의 유머에서 게시글이 나왔어요. 작성자 투데이 얘가 쓰는 거잖아요, 약간 비방하는 성향이…."
분석관3 : "투데이즈 저번에 찾은 거잖아요."
분석관2 : "저거 같은 경우 복지정책을 까고 있는 거 같아요. 일단 얘가 게시한 글이 맞고 컴퓨터에 있어요."

한 분석관은 통합진보당의 북한 로켓 지지 입장을 비난한 게시글을 확인했다고 말했지만 다른 분석관은 "이거는 언론 보도에는 안 나가야 할 거 아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후 "나갔다가는 국정원 큰일 난다"며 "우리가 여기까지 찾을 줄은 어떻게 알겠어"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정치·선거 개입 의혹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이 14일 수사결과 발표문에 첨부한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실 녹화영상'과 분석관들의 대화 내용 일부.
 국정원의 정치·선거 개입 의혹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이 14일 수사결과 발표문에 첨부한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실 녹화영상'과 분석관들의 대화 내용 일부.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나갔다가는 국정원 큰일 난다"고 걱정하는 분석관

[12월 16일 오전 1시 16분]
분석관1
: "안 되죠. 나갔다가는 국정원 큰일 나는 거죠. 우리가 여기까지 찾을 줄은 어떻게 알겠어?"
분석관2 : "우리가 판단하면 안 되고. 기록은 (보고가) 올라가겠지만. 안 하겠지."
분석관1 : "노다지다 노다지. 이 글들이 다 그런 거야."
분석관2 : "그거 혼자는 안 했을 거 아냐."
분석관1 : "그리고 직원 한 명이겠냐고, 너 같으면. 초기에 아이디 패스워드 파일을 받았잖아. 그게 몇 명한테 쓰라고 파일을 줬겠지. 그럼 여러 명이 서로 똑같은 아이디 번갈아 쓰면서…. 왜냐하면 IP 주소는 바꿔야 할 거 아냐."

중간수사발표가 6시간 앞으로 다가오자 분석관들의 입장은 더욱 명확해진다. 한 분석관은 "비난이나 지지 관련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며 "그렇게 써가려 그러거든요"라고 말한다. 분명 윗선의 지시가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12월 16일 오후 3시 34분]
분석관1
: "이게 우리가 했던 웹 있잖아요. 그걸 노트 데스크. 다 합해가지고 인제. 우리가 했던 대로 총 몇 개 히트해서. 쓰레기 정보라고 해서 이상한데."
분석관2 : "글 게시하고 관련 없는 URL은 제외를 하고… 우리가 검색했던 URL은 총 몇 개였는데 결과를 확인한 바… 비난이나 지지 관련 글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써가려 그러거든요."

검찰은 14일 수사발표에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수사 범죄 혐의를 왜곡하는 수사결과문을 배포·작성케 해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정상적인 수사 공보를 빙자해 수사결과 발표가 선거 직전에 이례적으로 이뤄졌다"며 "그 내용이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게 왜곡된 점을 고려해 김 전 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과 경찰공무원법 위반 및 직권 남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첨부파일은 14일 검찰의 국정원 선거 개입 수사발표문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의 영상녹취 파일입니다.



태그:#원세훈 전 국정원장 대선 개입,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