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올해인 2013년, 한국에서 추진 중이던 차별금지법이 또 한 차례 철회되었다. 2007년에 이어 두 번째로 벌어진 일이다. 그 내용은 특별한 이유없이 성적 취향이나 출신 국가, 학력, 가족 형태로 인해 차별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상식적인 요구였다. 하지만 이는 '반 사회적 주장'이라며 법안 추진을 비난한 보수주의자와 종교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더욱 서글픈 것은, 법의 제정이 무산된 것보다도 그 바탕에 깔린 사람들의 인식이다. '사랑을 베풀자'는 진리를 설파하던 종교는 동성애자를 악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인터넷 특정 사이트의 유저들은 "혐오와 차별도 권리"라는 궤변으로 지역차별·여성 비하발언을 놀이를 하듯이 일삼는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 중 일부도 자신과 특정부분이 다른 사람들을 몰아붙이는 모습을 때로 보이기도 한다. 2012년의 선거 이후로 많은 정치인들이 '통합'을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그것 역시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공허한 외침이 되어가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은 현재 심각한 진통을 앓고 있는 듯하다. 사회는 분열되어 서로 싸우기 바쁘고, 각 계층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급급한 마음로 공동체를 가르는 선을 긋는다. 그 선 바깥의 사람을 헐뜯으며 자신은 옳다고 정당화하고 안도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소수자들의 이야기

책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의 표지.
 책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의 표지.
ⓒ 오월의봄

관련사진보기

인권사랑운동방이 펴낸 책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는 한국에서 차별로 고통받는 9명의 사람들이 써내려간 이야기를 담았다.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홀로 살아가는 비혼모, 수술비가 없어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트렌스젠더,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학교폭력을 당하는 미성년자 레즈비언,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국적 때문에 착취 당하는 이주노동자, 한쪽 눈이 불편하여 취직이 어려운 장애인과 천한 직업이라며 쉽게 무시당하는 청소노동자까지.

앞서 거론된 사람들, 책에 실린 사연의 주인공들은 모두 '정체성'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자신들의 선택 여부와는 별개로 부여된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곧 부당한 대우로 연결되곤 한다. '저 사람들에겐 그래도 마땅하다'는 왜곡된 논리구조가 낳은 비극이다.

하지만 단순히 '대다수의 사람과 확연하게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해도 괜찮은 걸까? 이 책은 다수의 횡포가 만연한 현실을 꼬집는다. 책 속 글들이 직접적으로 쉽게 와닿는 이유는, 자세히 읽어보면 그들이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이웃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두리스토리의 주인공들이 '차별'이라고 이름 붙여 기억하는 경험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그 경험들을 조각 맞추듯 이어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보인다. 변두리스토리의 주인공들이 각자 '차별'로 지목하는 것과 변두리스토리를 읽는 독자들이 '차별'로 읽어내는 것이 다를 수 있는 이유는, 오히려 차별이 우리 모두의 삶에 일관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차별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나 막막하고 광대한 세상이지만 거기에서 불현듯 솟아오르는 어떤 사건들은 우리에게 실마리를 준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다른 사건을 경험할 뿐이다. '사건'으로 기억할 만큼 소화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그러나 사라지지 않고 저마다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배경이 된다." (본문 264P 중에서)

하나의 단어로 한 사람의 모든 부분을 담아 표현할 수 없다. 동성애자든 장애인이든, 어떤 사람이든 우리의 옆집에 살아가는 사람이거나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일 수 있다. 조금만 넓게 바라보면,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결국, 평범하지 않아 보이는 소수자들도 사실은 평범한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는 말하고 있다.

편견을 깨고 차별없는 세상을 위하여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 오늘날 한국에는 경기침체와 그로 인한 경쟁심화 등 다양한 이유로 극심한 불안함이 퍼져있다. 행복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이러한 종류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 또한 만연해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단순한 방법은,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 다른 누군가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대척점에 서있는 본인과 소속된 집단은 '정상'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기준이 누구이냐에 불과한 원시적인 발상에 불과하지만, 극도로 불안에 시달리는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논리다. 심리적 피로의 빠른 해소를 위해 깊은 사고는 배제되고, 그 때문에 벌어지는 참사는 반드시 희생자를 낳는다.

"비가시화 된 존재를 드러내고 마주침의 장소에서 서로를 억압하거나 차별하지 않기 위해서 그 곳의 판을 흔들고, 성격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하는 것. 닥쳐오는 불운이나 억울한 일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자 했을 때 그것을 목격한 이가 증언자가 되고 그 옆에 자리하는 것. 그리고 그 차별을 정성을 다해 설명하고자 계속 애쓰는 것. 그리고 차별에 대한 법적인 구제의 과정을 사인간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법적인 구제 의미가 사회 관행과 권력을 바꾸어나가는 것을 지향하도록 견인하는 것. 이것이 문제를 보편화하는 방향이 아닐까." (본문 278페이지 중에서)

이 책,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는 이러한 편견을 깨고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메시지로 끝맺고 있다. 그렇게 하려면 이미 사회에 퍼진 차별의 사례들을 직접 거론해야 하고, 개인의 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직접 쓴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비혼모, 장애인의 일화들처럼 말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 당신에게도 차별이 수신되기 전에

책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의 본문. "우리도 살면서 나를 부르는 어떤 이름에 좌절을 경험한다."는 부분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묘사한 듯 하다.
 책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의 본문. "우리도 살면서 나를 부르는 어떤 이름에 좌절을 경험한다."는 부분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묘사한 듯 하다.
ⓒ 오월의봄

관련사진보기


약 150년 전, 미국 종교계와 보수파들은 '노예제 폐지'를 반대했다. 100여년 전, 여자들은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고 집안에 머물러야 했다. 그 당시에도 반대의 이유는 "전통과 사회적 통념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흑인과 여성에게도 평등하게 자유가 주어진 지금에는 그 모든 말들이 어리석은 궤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후에도 세상은 점차 느리지만 조금씩 더 평등을 추구하는 쪽으로 역사의 발전을 보여왔다. 최근에는 유럽과 미국의 여러 주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스웨덴에서는 아예 결혼에 있어 성별개념을 법적으로 없앴다. 국적이나 장애 또한 부당한 대우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고보면, 한국에서 아직 생각의 걸음이 조금 더딘 이유도 보이는 듯하다. 그것은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에서 살면서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모두 각자의 개성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그 누구도 다른 사람과 완벽하게 같지 않다. 그런 현실에서 '다름'을 이유로 누군가를 비정상으로 낙인 찍는다면, 기준이 바뀌는 순간 누구든지 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마땅하다. 개인 간의 차이점은 '다른'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행복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익명성을 무기로 한 차별과 혐오를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소수의 약자에게 마구 쏘아대는 폭력적인 편견이 당신에게 수신되기 전에 말이다.

오른손잡이가 대다수인 세상에서 왼손잡이로 살아가는 삶을 노래한 패닉의 <왼손잡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주로 사용하는 손이 다르다고 해서 멸시하는 발상은 얼마나 우스운가. 그러나 불과 몇 십 년도 지나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다.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에 담긴 이야기들, 차별금지법 무산과 "혐오도 권리"라는 주장도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그저 한바탕 해프닝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 오월의봄 | 2013.04. | 1만3000원)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오월의봄(2013)


태그:#소수자, #차별,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