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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사람들의 눈길을 유혹하는 시절이다. 별다른 유혹도 필요 없다. 장미는 그냥 꽃이 피면 그것으로 유혹이 된다. 사람들이 눈길을 주저 없이 내줄 정도로 장미는 충분히 아름답다.

꽃이 피는 시절에 맞추어 여기저기서 장미 축제가 열리고 있다. 서울은 올림픽공원의 장미광장이 유명하고, 경기도로 눈길을 돌리면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장미축제를 접할 수 있다. 서울대공원의 장미 축제는 6월 한달 동안 계속된다. 일산호수 공원에서도 장미 축제가 있으나 6월 9일까지이다.

장미 축제를 찾으면 단순히 꽃만 구경할 수 있는게 아니라 갖가지 설명도 곁들여 들을 수 있다. 장미에 관련된 다양한 전설이나 백과사전식 정보가 함께 제공된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장미도 상당수에 이른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장미는 다른 무엇보다 사랑의 꽃이 아니던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고 받아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꽃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은 꽃이 바로 장미이다. 동네의 넝쿨장미는 물론이고 장미 축제를 좇아다니며 장미의 사진을 찍을 때 나는 그래서 품종이나 개발국을 알아보기 보다 사랑을 궁금해 했다.

나는 근래에, 동네의 화단에서, 혹은 올림픽공원의 장미 광장이나 서울대공원의 장미원에서 만난 장미에게 사랑을 물었으며, 그러자 장미는 제각각 내 물음에 답했다.

장미
 장미
ⓒ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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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예쁘기는 하지만 가시를 가졌다. 장미가 말한다. "내게 사랑은 가시에 찔려죽어도 좋은 것이 사랑이지. 가시에 움찔하여 그 아픔을 이유로 물러나는 건 내게 사랑이 아냐." 장미는 내게 사랑을 원한다면 목숨을 걸라고 했다.

장미
 장미
ⓒ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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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장미가 말했다. "너는 내게 물었지. 나의 모든 것을 다 내놓고 사랑할 수 있겠냐고? 그래서 나는 내가 갖고 있던 붉은 색을 모두 다 내려놓았어. 붉은 색을 다 내놓자 처음에는 하늘이 노랗더군." 사랑이란 하늘이 노래지더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거구나. 그런데 모두 다 내려놓고 얻은 하늘이 노란 사랑도 붉은 사랑 못지 않게 아름다웠다. 정말 내려놓기는 한 건가 싶기도 했다.

흑장미
 흑장미
ⓒ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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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집어 삼킨 장미도 있었다. "난 어둠도 삼켰어. 그리고 그 어둠으로 사랑을 빚었지. 그 전에는 어둠이 밀려들면 두려워하고 도망치려고 하던 내겐 놀라운 일이었지. 너를 사랑하니 세상에 못할 일이 없더군." 장미에게 있어 사랑은 두려움을 이겨내도록 해주는 놀라운 힘이었다.

장미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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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꽃잎이 장미의 얘기 하나이다. 그러니까 얘기를 하나하나 풀면서 장미는 핀다. "사람들의 사랑도 마찬가일거야. 처음 만났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지만 사실은 그때부터 하루하루 엮어가는 둘의 삶으로 서서히 피는 것이 사랑이지." 장미는 둘의 하루하루를 잘 엮어 아름다운 꽃을 피우라고 충고했다.

장미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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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때로 겹겹이 싸서 슬그머니 내미는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을 선물받고도 그 마음을 짐작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장미는 사랑이란 눈앞에 두고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미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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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한가운데는 예외없이 암술과 수술이 있다. 남과 여이다. 사랑의 두 가지 본질이다. 장미의 속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장미가 잎을 모두 펼치자 드디어 암술과 수술이 그 자리로 모인 듯 보이기도 했다. 장미는 말한다. "사랑이란 갖고 있으면서도 어디에서 기적처럼 얻은 인연처럼 보이기도 하지."

장미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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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의 잎으로 둘러쌓인 장미는 때로 심연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연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곳에 무엇이 있을까를 궁금하게 한다. 하지만 장미의 심연 그 깊은 곳에서 다른 것은 찾지 마시라. 그 심연에서 만나는 것도 결국은 장미이다. 장미의 밑바닥엔 장미가 있을 뿐. 그녀에게서도 다른 것을 꿈꾸지 마시라. 그녀의 밑바닥엔 그녀가 있을 뿐이다.

장미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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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 급한 현대인답게 나는 물었다. "왜 꽃잎을 돌돌 말아쥐고 있다가 하나하나 펴는 거야? 그냥 한번에 다 확 펴주면 안돼?" 보라빛의 아름다운 장미가 답했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몰라서 하나하나 펴면서 확인하는 거야." 장미는 때로 사랑이 자기도 몰라서 두고두고 확인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미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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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미에게서 사랑을 찾았으나 벌은 장미에게서 사랑을 구하지 않았다. 벌에게 장미는 삶의 일터였다. 아름다운 일터였을까? 별에겐 그냥 다 같은 일터같았다. 장미는 말했다. "당신의 마음을 뒤흔드는 사랑이 때로 누군가에게는 그냥 일의 파트너일 뿐이지."

장미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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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한송이가 유난히 환하게 빛을 냈다. 나는 장미가 그냥 피어 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나는 장미가 꽃속에 알전구 하나를 품고 불을 켜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선을 가까이 들이밀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장미에겐 꽃잎 이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지, 사랑할 때는 사실 아무 것도 필요가 없지. 그저 네가 너만으로 환하게 빛나는 시절이 우리들이 사랑할 때이긴 하지.

장미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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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붉은 꽃잎은 풀어내도 풀어내도 끊이지 않고 계속될 듯 싶었다. 사람들의 사랑도 그렇다. 영원히 그 뜨거움이 식지 않을 듯 보이곤 했다. 처음에는 항상 그랬다. 장미의 뜨거운 사랑은 일주일을 넘기기 힘들었다. 사랑은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일종의 환시이기도 했다.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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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장미 한송이가 말했다. "사랑을 뜨거움이 아니라 텅비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안될까. 그리하여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채워가며 서서히 뜨거워지면 안될까. 백지 위에 그림을 하나하나 채워가듯이 말야." 흰장미는 한순간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서서히 가꾸고 채워가는 것이 사랑이 아니겠냐고 내게 물었다.

장미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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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아주 이상한 장미를 만났다. 그 품에 배추 한포기를 품고 있었다. 너무 아줌마 냄새가 났다. "사랑? 사랑이 너무 멀리 있으면 곤란하지 않아? 장미는 아름답긴 하지만 너무 멀리 있어. 나는 아름다움에서 사랑을 구하지 않기로 했어. 어찌보면 사랑이란 매일 아침 차려주는 밥상 위의 배추 김치 속에 담겨 있는게 아닐까 싶어. 그래서 나는 꽃대신 배추 한포기를 손에 들었지."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또 어디에 있는지 모호하기만 하던 사랑은 그녀가 어제 담가 아침 밥상 위에 올려주던 김치 속에 있었다. 장미는 사랑을 그렇게 먼 곳에서 찾지 말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장미 축제가 열리고 있다. 혹 그 축제에 가시거든 장미의 아름다움을 즐기시는 한편으로 장미에게 한번 슬쩍 물어보시라. 사랑이 무엇인지. 재미난 대답을 들을지도 모른다.


태그:#장미, #사랑, #장미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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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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