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마이 라띠마>의 유지태 감독이 30일 오후 서울 사당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마이 라띠마>의 유지태 감독이 30일 오후 서울 사당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언혁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두려움이 앞섰다. '제도권에서 개봉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고, '예산이 적어서 좌초되지는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주여성 문제 등을 다룬 탓에 행여 누군가의 마음을 무겁게 하거나 아프게 하지는 않을지도 조심스러웠다.

영화 <마이 라띠마>를 준비하면서 유지태 감독이 맞서야 하는 것은 이외에도 또 있었다. 배우가 영화를 연출하는 데 대한 선입견이었다. '배우는 딴따라'라는 무의식 속에서 "만들면 얼마나 만들겠어" "연기나 잘하지"라는 말도 들어야 했다.

20년 가까이 배우로 활동했던 유지태가 영화감독으로 거듭난다는 소식에 호기심을 가진 이들도, 편견을 드러낸 이들도 있었다. 투자자를 만나기는 쉬웠지만,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기란 더욱 어려웠다. "그렇게 돈 많은 사람을 우리가 왜 지원해줘야 하지?"라고 묻는가 하면, "사치 한 번 부리는구나" "고급 취미생활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히려 역차별을 당할 때가 많았다"고 털어놓은 유지태 감독은 "이 모든 것 또한 내가 감내해야 하는 몫"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감사의 요건이 될 수 있습니다. 배우로서 그만큼 혜택을 많이 받고 살았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유명인이잖아요. 그 부분까지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영화를 찍을 때, 드라마 출연 제안이 들어왔어요. 개런티가 저희 영화 제작비보다 높았죠. 하지만 영화는 제 인생의 꿈이었거든요. 장난으로 만든 게 아닙니다. <마이 라띠마>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희생도 있었습니다."

"이주여성 이야기 담기 전, 감수 철저히 받았다"


유지태는 배우가 되기 이전부터 감독을 꿈꿨다. 설정은 조금 달랐지만, 한국 남자와 국제결혼한 이주여성 마이 라띠마(박지수 분)와 낙오자로 전락한 수영(배수빈 분)의 이야기를 담은 <마이 라띠마>도 학창 시절부터 생각해뒀던 이야기였다. 유 감독은 "사회와 부딪히며 힘들게 어른이 되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면서 "특히 여성에게 관심이 많은데, TV 속 화려한 모습보다는 손에 굳은살이 배기고 얼굴에 주름이 가는 여성들에 더욱 감동한다"고 설명했다.

처지는 다르지만, 극 중 인물들은 세상에서 소외되어 있다. 유지태 감독은 자료 조사 단계에서 정신병력이 있는 남자와 결혼해 몇 달 만에 칼을 맞고 죽은 한 베트남 여성을 모델로 삼기도 했다. 유 감독은 "(이주여성을 영화에) 담는 과정에서 조심했어야 했다"면서 "이주영화제 대표와 이주여성센터 활동가 등에게 감수를 받았고, 직접 이주여성을 만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모든 이들이 이런 삶을 살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은 유 감독은 "편견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이주여성이 폭력에 노출된 것은 사실입니다. 법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2년 동안 신분보장을 해야 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가족이 보증하지 않으면 체류 연장이 안 돼요. 그러다 보니 가족과 동등한 입장이 아니라 주종관계가 형성돼죠. 결국 법이 개정됐는데 실생활에 적용되기까지는 여전히 멀게 느껴집니다. 이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어나가는 사람도 있고, 부조리를 느끼는 이들도 있죠. 그래서 일부러 적나라하게 그린 부분도 있습니다."

<마이 라띠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신예 박지수다. 오디션을 거쳐 그를 발탁한 유지태 감독은 "배우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박지수의 얼굴이 (마이 라띠마의) 이미지와 가까웠다. 매력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배우들은 같은 배우이자 감독인 그의 첫 장편에 선뜻 출연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유 감독은 "다음에는 많은 선택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미소 지었다.

한국영화, 계속 발전하려면 '이것' 필요하다!


배우로 쌓은 경험은 작품을 연출할 때도 큰 도움이 됐다. 그동안 스물두 작품에 출연했던 유지태 감독은 "그동안의 현장 경험을 통해 배우와 스태프들을 존중하는 방법을 고민했고, 적은 예산으로도 좋은 분위기에서 촬영하려고 했다"면서 "모두에게 베스트를 뽑아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특히 배우들에게는 말 한마디도 조심했다. 예를 들면 "노련하다"는 말 대신 "경험이 많다"고 표현했다. '노련하다'는 표현 뒤에는 '노회하다'는 말이 숨어있기 때문이라고.

유지태 감독은 평소 한국 영화가 발전하려면 세 가지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할리우드처럼 스태프들에게까지 인센티브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유 감독은 "영화 <부러진 화살>이 그랬던 것처럼 막내 스태프까지 인센티브를 받아보고,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정부의 지원 아래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유 감독은 실제로 <마이 라띠마>의 스태프들에게 인센티브제를 약속했고, 앞으로도 이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재능기부'라는 말도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모금 활동도 아니고, 공익사업도 아니잖아요. 어쨌든 상업주의에서는 착취나 다름없고, 제작사 배불리기가 되는 거니까요. 또 지금은 현장에서 기존 스태프와 인턴이 구분되지 않는데, 명확히 구분된다면 책임의식과 주인의식이 더욱 커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이 라띠마>가 저예산 영화였잖아요.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다행히 프로듀서가 경영과 펀딩을 잘했고, 정부로부터 인건비 제작 지원을 받았죠."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던 유 감독은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이어 그는 대안으로 '저예산 작가영화'를 제안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배우 니콜 키드먼과 <도그빌>(2003)로 시너지를 만들었듯, 상업 영화에 지친 감독들이 저예산 작가영화를 통해 다시 자신을 추스르고 상업 영화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꿈 이룬 유지태 감독 "앞으로 사회복지사 되고 싶다"


<마이 라띠마>는 개봉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고 제15회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기대 이상이었다"고 밝힌 유지태 감독은 "개봉해서 20만 관객만 채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동안 매일 시간을 정해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등 이른바 '감독이 되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사람을 올바르게 만드는 것은 꿈이다"면서 "평소 아침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 간다. 이 모든 것이 꿈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는 유 감독은 "큰 예산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감독 겸 배우가 되고 싶다"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우선이 될 테지만, 연출하는 영화에 내가 직접 출연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월드비전 홍보대사인 유지태 감독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 학교 짓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미얀마에 학교 2개, 유치원 1개를 지었고, 네팔에도 유치원 하나를 지었어요. 남수단 톤즈에도 만들고 있고요. 영화배우로 알려진 사람이 사회사업을 할 때, 더 큰 나비효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명인으로서 선 구조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이 모든 것을 공표하고 알리는 만큼 앞으로도 조금 더 견고하게 살아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유지태 마이 라띠마 배수빈 박지수 소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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