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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이 참 안 나왔던 드라마〈내 연애의 모든 것>을 방영 기간 내내 열심히 보았다. 아마 신하균의 '치약 광고 모델 같은 웃음'이 내 충성도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긴 했으리라. 여러 맥락에서 흥미롭게 지켜봤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드라마를 추억하면서 '좋은 드라마였다'고 언급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처음 드라마의 설정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예의 정치인 홍정욱과 이정희 사건에 지나치게 이입도가 높아 실소했다.

현실에서 착안한 대통합, '내연모'는 잘 표현했을까

 ▲  2009년 12월 31일 예산안 처리 문제로 여야 충돌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앞에서 제자리에 선 채 장시간 식사도 하지 않고 농성을 벌였던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앉아서 쉬면서 하라'는 한나라당 의원들에 이끌려 자리에 앉혀진 뒤 눈물을 흘리자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이 손수건을 건네고 있다.

▲ 2009년 12월 31일 예산안 처리 문제로 여야 충돌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앞에서 제자리에 선 채 장시간 식사도 하지 않고 농성을 벌였던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앉아서 쉬면서 하라'는 한나라당 의원들에 이끌려 자리에 앉혀진 뒤 눈물을 흘리자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이 손수건을 건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009년 12월, 예산 날치기를 막겠다고 의장석 앞을 지키던 이정희가 울음을 터뜨리자, 홍정욱은 이정희에게 손수건과 물을 건넸다. 이정희는 "따뜻한 마음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카드와 함께 홍정욱의 의원실로 손수건을 돌려보냈다. 홍정욱의 쇼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물론 적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여야의 진정한 화합'을 이야기했다. 저렇게 서로 배려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했다. 어쨌든 손수건 하나로 홍정욱은 매너 좋고 소신 있는 소장파 의원의 이미지를 굳혔으니 나름대로 괜찮은 장사였던 셈이다.

사람들의 염원을 이어받아, 대선 기간 동안 박근혜의 가장 큰 슬로건 중 하나는 '국민대통합'이었다. 불필요하게 다투지 않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제 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자던 박근혜는 심지어 국민대통합위원회까지 설치했다. 박근혜는 이를 통해 "지역갈등 해소, 계층 갈등 해소, 세대 갈등 해소,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의 화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민대통합을 위해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를 제안했다.

통합은 좋은 말이다. 온갖 다툼은 집어 치우고, 통 크게 양보하며 통 크게 합의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함께 살아나가자는 말이 누구에게 나쁘게 들릴 수 있을까. 그러나 박근혜가 당선되었다는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의 유서는 분명하게 이 국민대통합의 문제를 드러냈다. 누가 누구에게 통 크게 양보해야 하는가, 진실로 그게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홍정욱 의원이 이정희 의원에게 손수건은 건넸지만 2010년 12월의 그 날, 결국 한나라당은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 묘연한 통합의 전망 앞에서 드라마는 특단의 조치를 내놓는다.

드라마가 끝나도 남는 의문점들

홍정욱은 입장은 다르지만 열심히 하는 이정희에게 '진정성을 느꼈다'고 했다. 딱 그만큼의 이유에서 '대한국당'의 김수영(신하균 분)은 '녹색정의당'의 노민영(이민정 분)에게 빠져든다. 드라마 속에서 유일하게 매력적이었던 캐릭터가 있다면 김수영일 것이다.

단순히 매력적인 연애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그나마 이 드라마 안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다수파 보수당인 대한국당의 초선 의원인 김수영은 노민영과 연애를 시작하면서 다각적으로 정치적 입장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고 또 변화한다. 당대표에게 소신발언을 하기도 하고, 소수 정당인 녹색정의당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자기 당 의원들에게 서명을 받으러 돌아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통 큰' 사고 때문이 아니다. 이는, 노민영이라는 촉매제 때문이다. 고민부터가 매우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드라마 초반에 내가 계속 가졌던 의문점은 대체 이들의 '연애'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에 관한 것이었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열정적일 수도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 얼굴만 보고, 단 몇 초 만에 사랑에 빠지지 않던가. 하지만 사랑을 지속해나가는 과정은 결코 그렇지 않으며, 드라마는 적어도 16회를 진행해야하므로 반드시 이들의 '연애'를 그려야만 할 것이다.

과연 이들이 단둘만 남았을 때 어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나아갈 수 있을까.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가능한 일이긴 할 것인가. 단둘이 남아서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이들은 분노하게 될 것이며, 자신이 선택한 사랑의 대상이 동일한 세상을 꿈꾸는 동지가 아니라 적이라는 것을 매순간 확인하게 될 것이며, 결국 동반자적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정치 얘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인간이란 자신의 삶과 정치를 분리시키는 것이 어려울진대, 국회의원이나 된 사람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건 그저 내 멍청한 상식이었다. 놀랍게도 청문회에서 노민영의 질문은 오로지 부정부패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는 미디어 법을 막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강기갑처럼 소화기를 집어던져 국회 폭력 사태 논란에 오르내리고, 룸살롱에 간 국회의원들의 판을 뒤집어  엎고 유리잔을 깨며 맞서 싸우는 '당찬 진보 의원'이다.

 애정전선이 긴장감 있게 그려지며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시청률은 소폭 상승했다.

애정전선이 긴장감 있게 그려지며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시청률은 소폭 상승했다. ⓒ SBS 화면 갈무리


진보답지 않은 진보, 보수와 연애는 가능이나 할까

흥미로운 것은 이 파격적인 행동이 그저 '부정부패', '예산 낭비'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녀가 가장 분노하는 부분은 예산의 낭비이다. 그녀는 예산이 누수가 없이 잘 집행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물론 예산을 낭비해도 된다고,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된다고 말하는 국회의원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이 당연한 일에 그녀는 사회적 압력을 조성하기 위해 언론을 동원하는 대신 주먹질로 맞서 싸운다.

대한국당 국회의원 김수영이 이 문제를 받아들인 방식은 더욱 노골적이다. 탕수육 소스를 부을 것인가, 탕수육을 찍어먹을 것인가로 노민영과 말다툼을 하고 나서, 그는 두 팔을 번쩍 들고 그녀에게 항복 선언을 한다. '정치도 연애도 불필요한 분쟁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면서, 그건 자기 체질이 아니다'라고 앞으로도 그녀를 절대로 이기지 못할 거라고 외친다.

녹색정의당의 또 다른 의원 고동숙(김정난 분)은 후배인 대한국당 문봉식(공형진 분)에게 친근감과 연민을 느낀다. 그 방식은 보육현실 개선, 아동성폭력범 강력처벌 같은 의제들이다. 고동숙이 보육 교사들을 충원해야 한다고, 어린이집에 대한 감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말할 때 문봉식은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고동숙은 보육 교사들의 임금 수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국공립 어린이집의 숫자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표를 받고 목 빠지게 국공립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들의 논의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성폭력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강력 처벌을 주장하는 진보 정당 의원이라니, 어느 동네에서 출마했는지가 궁금할 지경이다.

노민영과 김수영의 정치적 갈등은 모두 연애의 갈등으로 수렴된다. 모욕죄 찬반에 대해서 논하는 이들의 논쟁지점은 라면에 계란을 풀 것인지 풀지 않을 것인지 정도의 문제와 대유되어 표현된다. 결국 이들이 비밀 연애를 공개하게 되었을 때, 이 어처구니없는 대통합의 이데올로기는 노민영의 입을 빌려 이렇게 튀어나온다.

"정치도 연애도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조율하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더 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말이 옳다. 분명 모욕죄의 이름을 혐오죄로 바꾸는 것은 조율과 합의의 과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녹색정의당'에 표를 던진 사람들이 정말 모욕죄의 이름을 혐오죄로 바꾸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단지 예산의 누수를 막아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그녀에게 표를 주었을까. 현실에서 강기갑이 토론과 합의가 아닌 공중부양을 선택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15회에서 그녀는 김수영과의 연애가 밝혀진 점, 당 내의 사퇴 요구, 자신의 조카가 이모가 정치를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의원직 사퇴를 감행한다. 사퇴 의사를 밝히는 자리에서 그녀는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고위직 공무원들이 성실하게 일하는지 감시하겠다'고 말한다. 박근혜의 말대로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의식, 존중, 배려 같은 기초적인 문제들이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출은 이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인터내셔널가'를 깔았다. 나의 인터내셔널은 이렇지 않다고, 나는 드라마 초반에 그랬듯 실소했다.

 노민영(이민정)이 국회의원 사퇴를 발표하는 장면

노민영(이민정)이 국회의원 사퇴를 발표하는 장면 ⓒ SBS


<내 연애의 모든 것> 간과한 것은 이것이었다

진주의료원의 문을 닫겠다던 홍준표는 예산을 낭비하는 사람일까. 그는 예산의 누수를 막기 위해 진주의료원의 문을 닫겠다고 말했다. 용산참사는 이명박이 성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경찰청장 김석기는 성실하게도 그 새벽부터 특공대를 사용해 강력한 진압을 시도했다. 그 성실함이 참사를 불렀다. 중구청장은 또 얼마나 성실한가.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한문 앞에 앉아 있는 꼴을 느긋하게 두고 보지를 못해, 결국은 꽃을 심고 사람들을 밀어냈다. 밀양 송전탑에서 철사로 몸을 묶고 버티는 할머니들에게 끊임없이 가해지는 폭력은 부정부패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가.

서로에 대해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통합 하자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누구와 누가 통합해야 하는가.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유족들이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는 이건희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대통합 할 수 있는 것일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비용 절감을 위해 위험한 환경에 노동자들을 몰아넣었을 이건희는 비용을 절감하려고 했던 잘못을 인정하고 대통합 할 수 있는 것일까.

살아남기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은 분명 거짓말은 아니다. 쌍용차의 '자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감내해야 했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본이 고사하더라도 해고 노동자가 살아남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연인과의 갈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반자적 관계의 유지이다. 그러나 정치가 연애와 다른 점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정치적 관계는 동반자적 이해관계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 이런 종류의 관계에서 우리는 상대의 생존과 나의 생존이 대립하는 것을 발견한다. 당연히 나의 생존을 위해 상대에게 생존을 양보해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상대 역시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은 탈당을 감행한 김수영이 신당을 창당하면서 끝이 난다. 그는 인권 변호사 송준하(박희순 분)에게 '이념을 넘어서는 싱크탱크'를 제안한다. '이념을 넘어서는' 데에 집착까지 보이는 김수영 의원에게 오히려  묻고 싶다. 그 이념은 하늘에서 갑자기 굴러 떨어진 것인지 그 이념이 무엇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내 연애의 모든 것>

<내 연애의 모든 것> ⓒ SBS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강연을 하러 다닌다는 노민영은 갑자기 자신의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맞서 쌍용차 노동자들과 밀양 송전탑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당 이름이 '녹색정의당'인데도 탈핵 쟁점조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의원이기에, 나는 그녀가 사퇴한 게 어떤 면에선 다행스럽기도 하다. 드라마 속에는 단지 나쁜 부정부패가 있을 뿐이다. 노민영이 꿈꾸는 세상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에는 나쁜 성실함과 나쁜 예산관리가 있다. 노민영이 우리를 대표해 줄 수 없다면, 우리는 나쁜 성실함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싸워서 이기는 것, 한꺼번에 되찾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넘어서서, '지금과는 다른 상식이 있는 세상'이다. 부정부패를 하지 않는 정도를 넘어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세상, 물신화된 자본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생존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우리는 상식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아닌, 상식을 바꾸기 위한 투쟁을 해야만 한다.

배려와 존중을 말하는 박근혜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내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배려도 존중도 할 생각이 없다. 더욱이 생존을 위협하는 자들과 맞서 싸워 이기는 것도 상당히 괜찮은 대통합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빨간 우체부(http://redpostie.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내연모 내 연애의 모든 것 정치 진보-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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