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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서 바라 본, 마을 전경
▲ 디엥 고원의 마을 높은 곳에서 바라 본, 마을 전경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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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을 가고자 하는 욕구를 유발하는 것은 다양하다. 먼저 경험한 이의 "그곳이 좋더라" 라는 구전이나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등의 리스트도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사진은 직접적인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적어도 필자는 그렇다.

디엥 고원을 가고 싶었던 것은 그래서였다. 족자카르타로부터 북서쪽으로 110km 이상 떨어져 있는 그 곳은, 사진만 봐도 고원이라는 명칭이 이해가 되는, 꼬불꼬불한 산 위의 도로들을 거쳐야 갈 수 있음이 가늠되는 곳이었다. 하늘과 좀 더 가까워 보였고 다랭이 논이 아니면 딱히 경작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만한 곳 말이다. 산 중턱에 걸려있는 구름의 이미지가 인도네시아와 잘 어울렸다. '디엥 고원'에 가봐야겠다!'는 마음은 불현듯 찾아왔지만 강력했다.

감자와 고구마를 팔고 있었던 농부.인니어로 계속 감자를 사라고 권하고 있다.
▲ 농부 감자와 고구마를 팔고 있었던 농부.인니어로 계속 감자를 사라고 권하고 있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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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하필 주말과 맞물렸다. 파리 끈끈이 같았던 몸을 기꺼이 참고 내일 떠나는 준비를 먼저 하는 것이 옳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하루의 과정이 그대로 붙은 그 끈끈함을 참지 못하고 씻고 나오니 메인 도로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이미 문을 닫았던 것이다. 물론 투어상품을 취급하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가격이나 투어 내용 등을 미리 체크하긴 했지만 예약은 하지 않았던 관계로 서둘러야 했었다. 내일 디엥으로 갈 것이 아니라면 주말을 이 곳에서 보내느니 아예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한국의 k-pop스타들은 이미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린다.
▲ 인도네시아의 여고생들 한국의 k-pop스타들은 이미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린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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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마음을 여미며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냥 혼자서 갈까? 같이 가는 사람이 없으면 그 비용을 혼자 부담해야 하는데.' 나눠서 부담해서 가는 투어가 아닌 혼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가는 것은, 아무리 차 안에서 널널이 갈 수 있다 해도 예산을 생각했을 때 부담스러웠다.

트윈 베드라 해도 혼자 머물면 돈을 더 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 저렴한 숙소의 모습 트윈 베드라 해도 혼자 머물면 돈을 더 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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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해서 숙소 바로 옆 호텔의 카페에서 차 한 잔을 시켰다.

"안녕? 족자에 여행 왔구나?"

건너 테이블에 앉아있던 서양남자가 말을 건다. 익숙한 차림새를 보니 이곳에 온 지 꽤 된 것 같다.

"응. 족자 좋네. 사람들도 좋고. 여행중이야?"
"응 좋지. 내가 여행자였던 것은 오래 전이지. 결혼한 후, 이 곳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었어. 이곳이 우리 호텔이야."

여행자일 거라고 생각했던 그의 얘기에 흥미가 일어 꽤 많은 이야기를 하고 보니, 문득 그가 운영 중인 곳이 호텔이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물들과 코를 찌르는 유황냄새가 있던 곳
▲ 유황 분출구 부글부글 끓고 있는 물들과 코를 찌르는 유황냄새가 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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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엥고원이 가고싶어. 미리 예약하지 못한 탓에 오늘은 꼭 예약했어야 하는데 하질 못했네. 계속 이것 때문에 저녁시간을 보냈지 뭐야. 혹시 여기서 운영 중인 투어가 있어? 혼자 가기엔 좀 부담스럽고 말야…."
"오… 잠깐 보자… 우리 숙박객 중에 내일 디엥고원을 간다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다려봐."

밤 10시가 좀 넘은 시각,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의 숙소엔 내일 디엥고원을 가기 위해 차를 예약한 여자가 있었고 그녀랑 얘기만 잘 되면 둘이 공동부담 해서 함께 떠날 수 있었다. 잠시 후 돌아온 그가 말했다.

차를 타고 가던 도중 길가의 일하는 사람들
▲ 밭일을 하는 아낙네들 차를 타고 가던 도중 길가의 일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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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런… 이미 자는 것 같은데. 그녀 방을 노크해 봤는데 자는 것 같아. 내일 새벽에 떠날 예정이라고 했거든."
"아…."

첫 만남에서 이 분의 껄껄 웃는 활짝 핀 웃음은 모두를 같이 웃게 만들었다.
▲ 여행을 풍성하게 만드는 사람들 첫 만남에서 이 분의 껄껄 웃는 활짝 핀 웃음은 모두를 같이 웃게 만들었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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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할 순 있지만, 예상할 수 없는것이 여행이다. 이렇게 다가온 기회가 그냥 날아갈까 아쉬웠다.

"새벽 몇시에 출발하지?"
"5시."
"일찍 자야만 하는 시간이네. 깨우면 안 되지 당연히."
"이럼 어떨까. 네가 내일 새벽에 그 시간에 이리 오는 거야. 내 생각엔 그녀도 좋다고 할 것 같아. 어차피 그녀도 1/2로 나눠내면 좋을 테고 말야."
"정말 그럴까? 혼자 가는 것을 더 선호할 수도 있지만. 그래,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좋겠어. 어차피 나는 물어보고 안 되면 다시 들어가서 자면 되니까 일단은 내가 새벽 4시50분까지 올게. 혹시나, 혹시나 말인데…. 내가 그 시간에 오지 않으면 기다리진 말라고 해줘. 남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아. 혹시나 내가 못 일어날 수도 있을 가능성을 대비해서."

마을을 거닐다 아이들과 사탕을 나눠먹다.
▲ 아이들 마을을 거닐다 아이들과 사탕을 나눠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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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못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느라 긴장하고 있다보니,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하루 못 자는 것이 대수인가. 새벽 5시에 얼굴을 본 그녀는 쾌활하고 씩씩하고 똑똑해 보였다. 그녀에게 민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부담주지 않고 조용히 숙소로 돌아오겠노라 다짐했으나, 우리는 서로 마음에 들었다. 그녀도 비용을 반으로 줄일 수 있어 꽤 좋은 것 같았다.

산비탈을 경작해 만든 다랭이논.
▲ 다랭이논 산비탈을 경작해 만든 다랭이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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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엥은 좋았다. 슬리퍼를 착용 중이었으나 구름이 걸린 산 중턱까지 오를 만큼 좋았고, 예전에 봤던 사진과 같았다.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웃어줄 만큼 여유 있었고 무엇보다 그곳은 느렸다.

내 삶이 조금 느리게 가는 듯한 디엥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12년 4월부터 2013년 4월에 걸친 2회의 인도네시아 종단여행을 바탕으로 합니다. 현지 장소의 표기는 현지에서 이용하는 발음을 기준으로 합니다.



태그:#디엥 고원, #인도네시아 , #족자카르타 , #세계 여행, #종단 배낭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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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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