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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태어나 스무 살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걸핏하면 뒷산을 놀이터 삼아 놀곤 했는데, 나도 그에 자주 끼어 놀곤 했는지라 그 누구보다 많은 풀과 나무를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랄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나 살면서 고향의 부모님과 함께 시시때때로 떠오른 것은 고향에서 보고 자랐던 풀과 나무들이었다. 대부분 이름조차 몰랐지만 마당 귀퉁이나 흙담 밑에 해마다 피고 지던 풀꽃들이 도시 한 귀퉁이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위로와 용기를 얻기도 했다.

2005년 가을에 디지털카메라를 사면서 풀과 나무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꽃을 만나면  일단 찍었고 잘 모르는 꽃들은 나보다 잘 알 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검색을 해 이름을 알아냈다. 이처럼 알게 된 꽃들을 블로그나 카페 등에 올리곤 했다. 아니 지금도 올리고 있다.

그냥 제비꽃일까 서울제비꽃일까
 그냥 제비꽃일까 서울제비꽃일까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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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제비꽃일까 자주알록제비꽃일까
 알록제비꽃일까 자주알록제비꽃일까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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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주잎제비꽃'과 '서울제비꽃'이란 이름으로 올려둔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 내가 '자주잎제비꽃'이라고 올린 것은 '알록제비꽃'이고, 서울제비꽃이라고 올린 것은 '서울제비꽃이 아닌 그냥 '제비꽃'이라고, 틀렸다고.

그러나 야생화에 대해 워낙 많이 알고 있는 블로그의 글을 충분히 참고한 끝에 '자주잎제비꽃'이라 이름 붙였던 것이라, 고치지 않고 그냥 두기로 했다. 제비꽃들은 변종이 워낙 심해 동정이 어려워 그 사람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봄>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봄>
ⓒ 이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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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제비꽃이라 올린 것도 마찬가지. 야생화를 알 만큼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다니는 야생화 백과사전'이란 별칭까지 얻을 정도로 야생화에 대한 지식이 워낙 많은 사람에게 사진을 직접 보여주며 알아낸 후 올렸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무엇보다 그 사람 말이 맞는다는 걸 신용할 수 없어서 고치지 않았다. 지난 몇 년 관련 전문 공부를 하지 않은 나 같은 일반인들이 올린 글은 물론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이 올린 글이나 책에서도 오류를 적잖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풀과 나무에 대한 관심으로 십 수 년 전부터 꽤나 많은 관련 책들을 읽었다. 최근 2년 전까지 몇 년 동안 관련 책이라면 무조건 구입해 보는 그런 독자였다. 이와 같은 다소 맹목적인 야생화에 대한 나의 애정을 멈추게 한 것은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는 책들 때문이었다.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이 쓴 책이란 사실만 믿고 샀는데, 읽다보니 몇 년 전에 썼던 것을 다시 정리해 쓰는 정도에 불과하거나 누군가의 오류까지 오류인 줄도 모르고 그대로 가져와 정리한 것 같은 그런 책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말이다.

여하간 분명한 것은 누구나 야생화에 접근하기 쉬운데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꽃 사진을 찍어 개인 블로그 등에 올리면서 잘못된 정보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잘못된 정보라는 것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올리는 순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요긴한 정보가 되어 수많은 오류를 낳는, 그렇게 만들어진 그런 잘못된 정보 말이다.

때문인지 그동안 내가 확실하게 아는 꽃인데도 자기가 알고 있는 (틀린)꽃 이름이 맞는다며 우기는 사람도 있었다. 또 나도 내게 댓글을 남긴 그 사람처럼 우연히 들른 블로그에서 틀린 정보가 보이면 댓글을 남기기도 했지만, 나처럼 고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책이 나오길 정말 많이 기다린 이유

그동안 식물 관련 서적을 180권 이상 사서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발전한 학문적 성과와 변모한 시대적 환경에 맞게 진화한 식물 서적이 나오지 못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고 오류가 밝혀진 논문도 수없이 나왔건만 그런 것들이 반영된 책이 나오지 못한 채 왜 아직까지도 오류투성이의 두꺼운 도감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걸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각종 논문의 타당성에 대한 검증이 부족한 현실, 학문적 성과나 업적에 대한 욕심이 만들어 내는 부적절한 논문에 대한 이의제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도 누군가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학연도 지연도 없는 제가 총대를 메기로 했습니다. -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 '저자의 말'에서

그래서 이런 취지의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이비락 펴냄)와 같은 책들의 출간이 무척 반갑다. 누구든, 어떤 깃대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믿을 만한 책을 좀 써주길 그간 참 많이 바랐기 때문이다. 두고두고 참고할 수 있는 그런 책이 필요하기도 했고.

여하간 그 사람이 '자주잎제비꽃이 아니라 알록제비꽃'이라고 한 것은 '자주알록제비꽃'이다. 그리고 '서울제비꽃이 아니라 그냥 제비꽃'이라고 한 것은 두 제비꽃의 중간쯤 같다. 딱히 둘 중 하나라고 단정할 수 없을 정도로 좀 애매하다고 할까. 아니 솔직히 서울제비꽃으로 기울고 있다.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를 참고해 본 결과로는 말이다.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를 참고로 오류를 바로 잡아나가며 자주 뜨끔해지고 있다. 내가 잘못 알고 올린 것을 보고 또 다른 누군가 잘못 알고 올렸을 것이며, 나아가 수많은 오류를 만들어냈을지도 몰라서. 내가 야생화에 대해 잘 아는 블로거가 그리 썼으니 의심 없이 참고했고, 믿을 만한 사람이 알려준 것이라 의심 없이 그리 알고 올렸던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야생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많은, '혁이 삼촌'으로 더 유명한 이동혁씨다. 저자는 '혁이 삼촌의 풀꽃나무 일기'란 블로그로도 유명하다.

책속 노루귀 붉은색 편
 책속 노루귀 붉은색 편
ⓒ 이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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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
 책속
ⓒ 이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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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존의 식물 관련 서적에 나타난 여러 오류를 수정한 책입니다. 학문이 발전하면서 새로이 밝혀진 내용을 반영하였고, 그동안 발표된 논문들의 타당성 여부를 나름대로 확인하여 적시하였으며, 그동안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변종이나 품종은 물론이고 변이까지도 총망라해서 다루었습니다. 따라서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 모두가 필자의 견해와 양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것임을 밝혀냅니다. -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 저자의 말에서

신종이나 변종, 오류, 변이도 다루고 있어 좋아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는 '봄꽃 편'과 '여름·가을 꽃 편'두 권으로 되어 있다. 두 권을 통해 다루는 꽃은 모두 1820종. 봄꽃 편에서 648종, '여름 가을 꽃 편'에 1172종을 다룬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거나 자라는 야생화란 야생화는 모두 담은 것 아닐까'의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요즘 내가 자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봄꽃 편이다. 크게 붉은색(보라색), 노란색, 흰색, 녹색 꽃, 양치식물과 원예종으로 분류했다. 야생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이런 구분은 좋아 보인다.

그런 다음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하기 쉬운 꽃들을 이어서 실어 쉽게 비교해보도록 했다. 여기에 이름의 유래와 유사종과 구분할 수 있는 핵심, 식물학계의 흐름 변화 등을 일일이 설명해줌으로써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이 책이 좀 더 가치 있는 이유는 기존의 야생화 도감들이 미처 수록하지 않은 신종이나 변종, 오류로 밝혀진 것들, 변이 등을 모두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 어느 정도의 오류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오류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와 같은 책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자주 펼쳐보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적어도 나처럼 꽃과 나무를 좋아해 사진을 찍어 개인 블로그 등에 올리는 사람들만이라도 이 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잘못 알고 올리는 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잘못된 정보를 전파하는 일도 줄었으면 좋겠다.

개망초일까 봄망초일까
 개망초일까 봄망초일까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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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덕분에 올 봄 처음으로 봄망초가 실제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 내게 "그냥 같은 개망초를 쓸데없이 봄에 피는 것과 여름에 피는 것으로 구분하는 것일 뿐이야"라고 말해 이제까지 봄망초는 이름만 있는 그런 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많이 다르다. 좀 더 설명하면, 봄망초는 4~6월에 피는데 개망초는 6월부터 가을까지 핀다. 봄망초는 곧게 자란 줄기 위쪽에서 가지를 여럿 친다. 게다가 줄기 속이 비어있다. 그리고 잎이 줄기를 감싸는데다 잎 끝이 둥글다. 그러나 개망초는 줄기 속이 꽉 차 있는데다가 봄망초처럼 위에서만 가지가 갈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잎 끝이 뾰족하다.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고향에서 흔히 보고 자란 꽃이라 서울에서 처음 만나던 날 눈물이 핑 돌만큼 반가웠었던 개망초를. 인터넷 접속을 한 후 몇 년 동안 닉으로  쓸 만큼 좋아했던, 인터넷 첫 닉이었던 개망초를 말이다. 여하간 1년 전에 개망초라 썼던 글을 이 책 덕분에 제대로 된 이름인 봄망초로 바꿀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 : 봄>- 봄에 피는 야생화 648종l 이동혁 (지은이) | 이비락 | 2013-04-02 정가 | 35,000원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 : 봄 - 봄에 피는 야생화 648종

이동혁 글.사진, 이비락(2013)


태그:#야생화, #혁이 삼촌, #개망초, #식물 도감, #봄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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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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