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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 화천 중부지구대 조재형 경위. 그의 침착한 행동 때문에 보이스피싱을 막을 수 있었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 중부지구대 조재형 경위. 그의 침착한 행동 때문에 보이스피싱을 막을 수 있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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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체계적인 움직임이 없었다면, 할머니에게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1000만 원이나 되는 돈이 사기꾼들에게 넘어 갔을 겁니다."

지난 24일 화천 경찰서 중부지구대 조재형 팀장(경위)으로부터 "시골마을 주민들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언론에 홍보를 좀 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어떤 일이 있었던 듯했다.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 역할보다 화천읍 신읍리에 계신 왕정애씨의 활동이 컸지요."

조 팀장의 말은 이렇다. 지난 23일, 60대 할머니들이 파마를 하기 위해 화천 읍내 모 미용실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때 장아무개(62) 할머니는 발신자표시가 제한된 전화를 한 통 받았단다.

"엄마 나 지하실에 갇혀 있는데 어떤 사람들한테 너무 맞아서 말을 잘 못하겠어. 나 좀 구해줘 엄마!"

그 목소리는 분명 30대가 될 때까지 취업도 못하고 객지에 나가 고생하고 있는 아들 목소리였다. 당황한 노모는 애타는 마음에 "거기 어디니?"라고 물었고, 전화를 건네받은 사람은 "지금 당장 은행에 가서 1000만 원을 찾은 다음 내가 말하는 계좌에 입금하지 않으면 당신 아들은 죽는다, 또 경찰에 신고해도 마찬가지다"라고 협박했다.

얼굴이 창백해진 장 할머니는 무슨 일인지를 묻는 동료 할머니들께 "지금 빨리 1000만 원을 보내지 않으면 내 아들 죽는대"라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뉴스에서 못 봤어? 그거 사기야..."
"무슨 말이야! 우리 아들 목소리를 내가 들었는데, 나 빨리 집에 가서 돈 찾아서 보내야 해."

동료 할머니들은 급히 일어나려는 장 할머니를 앉히고 '자율방범대'와 '여성 아동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는 왕정애(59)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왕정애씨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할머니들이 찾는 해결사다. 

왕정애 여사님(59세), 그는 평소 노인들의 고민 상담을 많이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왕정애 여사님(59세), 그는 평소 노인들의 고민 상담을 많이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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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하고 제 말 들으세요. 절대 돈 보내면 안 됩니다."

왕 여사의 설득에 장 할머니는 "내 아들 죽일 작정이냐"며 화를 냈다. 장 할머니는 30살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가고 뚜렷한 직업도 없이 서울에서 고생하는 아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부모 잘못 만나 많이 배우지도 못해 힘들게 산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런 아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누구의 말인들 통하겠는가. 설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왕씨는 평소 친분이 있는 중부지구대 조재형 팀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지체할 일이 아니었어요. 신고를 받자마자 (그 할머니가 어느 금융기관을 이용하는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지역에 위치한 모든 금융기관에 전화를 걸어, '어떤 할머니가 1000만 원 인출을 위해 찾아오면 돈을 내주지 말고 시간을 끌어달라'고 했습니다."

경찰에 신고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할머니가 불안한 마음에 엉뚱한 행동(인근 춘천시로 나가 송금하는)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조 팀장은 지역 내 금융기관에 전화를 해 놓고, 무전기를 통해 외근 중인 10여명의 대원들에게 상황을 알렸다. 마을금고, 농협, 우체국에 대기하고 있다가 할머니가 등장하면 인출을 막으라는 지시도 내렸다.

"할머니가 그렇게 빠를 줄 몰랐어요. 우체국에 이미 다녀가셨다는 겁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평소 우체국과 거래했던 할머니는 마음이 너무 급해서였는지 신분증과 통장 대신 통장과 전화카드를 들고 우체국에 갔단다. 화천우체국에서는 안전을 위해 1000만 원 이상의 금액을 찾으려는 사람에게 신분증을 요구해 왔다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다시 신분증을 챙겨들고 우체국으로 들어오는 할머니를 발견한 조 팀장.

화천 우체국. 안전을 위해 1000만원 이상 고액인출자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했기 때문에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화천 우체국. 안전을 위해 1000만원 이상 고액인출자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했기 때문에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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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거예요. 왜 아니겠어요. 경찰에 신고하면 아들이 죽는다는데..."

조 팀장은 할머니를 설득했다. 그리고 아들의 전화번호를 물어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를 수차례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 아들 살려야 한다"면서 돈을 찾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때 겨우 아들과 통화가 이루어졌다.

"너 납치되었다더니 괜찮니?"
"무슨 납치요. 나 지금 알바하고 있어서 길게 통화 못해요. 저녁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할머니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하마터면 돈을 잃을 뻔 했다는 안도도 아니고, 경찰에 대한 고마움도 아니었다. 그냥 아들이 무사히 살아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보이스피싱 대처, 조재형 팀장에게 물었다

시골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 조재형 팀장에게 간단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처로 인해 할머니의 피해를 막았다. 신고 접수 시 어떻게 대응하라는 매뉴얼이 있나?
"상황에 따른 여러 가지 매뉴얼이 있지만 (출금 정지요청은 금융기관이 많은)시 단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금융기관이 많지 않은 시골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즉흥적 판단이었다."

- 할머니에게 1000만 원을 요구한 범인은 누구인지 확인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쉽지 않다. 할머니의 전화통화 시간이 길어지고, 시간이 지체된다고 판단한 범인이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했다고 해도 발신자 미 표시로 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조그마한 단서라도 찾아서 범인 색출에 최선을 다 할 계획이다."  

- 이 상황을 신고한 왕정애씨의 침착한 대처도 이번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사건 해결 후 화천경찰서장(김동락)에게 SNS를 통해 보고했다. 그랬더니 바로 감사장과 포상금을 준비하라고 해 월요일에 왕정애씨를 경찰서로 초청해 서장이 직접 전달할 계획이다." 

- (경찰은 계급사회인데)내 상식으로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장에게 SNS로 보고하나?
"문서를 만들어 보고하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것이 서장의 생각이다. 따라서 사건사고 발생 전파나 처리결과를 SNS를 통해 서장을 비롯한 대원들에게 먼저 알리고 정식문서 보고는 후에 한다."

- 시골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금융기관 방문 시 (큰 액수의 돈일 경우)무조건 내주지 않도록 하는 것도 보이스피싱을 줄이는 방법이란 것을 이번 사건을 통해 배웠다.
"그렇다. 노인들이 당황해 하면서 인출을 요청한다거나 큰돈을 찾을 경우에는 금융기관 직원들은 '무슨 일인지' 확인해 보고 미심쩍으면 차를 한 잔 대접한다든지, 잠시 시간을 끌면서 지구대로 연락을 하는 것도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란 생각도 든다."

- 순박한 시골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사기가 계속 발생하는 것 같다.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 좀 소개해 달라.
"최근 개인정보 유출로 가족 휴대폰 또는 발신번호 미 표시로 자식들 목소리까지 들려주며 사기를 치는 이들에게 피해를 입는 경우가 전국적으로 빈번하다. (그런 상황을 접하면)부모들은 사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식의 목소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서 서둘러 돈을 송금하게 된다. 혹 전화를 받거나 하면, '그런 경우 무조건 사기다'라고 생각하고 지체 없이 112에 신고해 주시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관광기획 담당입니다.



태그:#보이스피싱, #김동락 서장, #조재형 팀장, #화천경찰서, #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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