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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버지는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아주 어릴 적 7살 무렵에 아버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난 아직도 아버지의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어디가 편찮으셨는지 사고였는지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분명 말씀해 주셨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어머니를 통해서 혹은 아버지의 형제들을 통해서.
하지만 난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기억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보고 자랄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소년이 되어 청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남들 하듯 한 여자를 만났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셨습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아버지는 또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셨습니다.
셋째 아이가 태어나고 아버지는 또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셨습니다.

아이들에게 엄한 존재이면서도 존경받는 사람이면서 무한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그런 역할은 알겠는데 그걸 마음으로 이해하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한때는 아이들에게 매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할지 몰라 답답했습니다.
때로는 약주를 하시고 들어와 용기 내어 아이들을 안아주기도 하였지만 술기운이라 어색했습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고민이 하나둘 생길 때 아버지는 아이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몰라 엄한 표정과 근엄한 말투를 애써 유지하였습니다.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힘들다고 말하던 사춘기 시절에 아버지는 마치 당신이 사춘기를 다시 겪으시는 것처럼 힘들어하셨습니다.
도움 주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어쭙잖은 위로를 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아버지, 존재 의미를 묻기 시작하다

아버지(이 이미지는 <아버지의 일기장>(돌베개)에 사용된 이미지임을 밝힙니다).
 아버지(이 이미지는 <아버지의 일기장>(돌베개)에 사용된 이미지임을 밝힙니다).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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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은 쏘아놓은 화살처럼 날아가고, 아버지는 한 해 한 해가 다르게 힘에 달리는데 다 커버린 자식들과 반평생을 함께한 아내는 날이 갈수록 거세지며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든 아버지가 출근하신다며 돌아서는 뒷모습에 머리에 눈을 맞으신 듯 세월이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은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아이들의 의지와 관련 없이, 쏘아놓은 화살처럼.
첫째 아이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첫째 아이가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이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이가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셋째 아이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곧….

어느 날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말이다. 평생 살면서 내 입에서 '아버지'란 말이 그렇게 하고 싶더구나. 그래서 너희들에게 '아빠'라고 하지 말고 '아버지'라 불러 달라고 그렇게 강요했나 보다. 나도 한 번 '아버지' 하고 불러볼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힘들구나. 떠나고 싶다."

그렇게 말씀하시며 도심생활을 정리하시고 그것까지도 아이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남은 것 거의 없이 제2의 고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후회해봐야 늦습니다

우렁이가 있습니다.
우렁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연약한 새끼들은 아빠(엄마) 우렁이에 붙어서 삽니다.
먹을 것을 바로 구할 수 없는 새끼 우렁이에게 아빠(엄마) 우렁이는 자신의 살을 떼어줍니다.

그렇게 아빠(엄마)를 먹고 자란 새끼 우렁이들이 커갈 무렵 아빠(엄마)는 껍질만 남고 텅텅 비어버린 모습이 됐습니다. 우기가 와서 물이 넘칠 무렵, 아빠(엄마) 우렁이는 껍질만 둥둥 띄우며 내려갑니다.

새끼 우렁이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와, 우리 아빠(엄마) 가마 타고 시집 간다"라고 좋아합니다.
흐르는 눈물은 고개를 억지로 들어 목으로 넘깁니다. 시집 가는 아빠(엄마)를 보며 억지로 웃으며 눈물을 삼킵니다.

후회해봐야 늦었습니다. 시간은 쏘아놓은 화살처럼 또 그렇게 날아갑니다.

도대체 아버지는 왜 아이들에게 이렇게까지 하셨어야 하는 걸까요?
아버지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가요?
아버지가 무슨 죄를 지으셨던 걸까요?
우리를 사랑하신 게 죄군요.

아버지가 없던 아버지는 내게 아버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직도 갚을 길 없는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가 알려주신 그것으로
내 아이에게 갚아 가는 중입니다.

덧붙이는 글 | [만화가 박재동 『아버지의 일기장』출간 기념 기사 공모] 글입니다.



태그:#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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