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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서 캐 온 쑥. 씻고 또 씻고... 쑥떡해 먹을 생각에 마음 미리 뿌듯.
 들에서 캐 온 쑥. 씻고 또 씻고... 쑥떡해 먹을 생각에 마음 미리 뿌듯.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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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어김없이 가까운 산책길이나 뒷동산에 올라 시나브로 봄이 오는 미세한 변화들을 감지하면서 봄을 맞곤 한다. 뭘 하느라 그리 바쁜지, 올 봄엔 나날이 변해가는 들녘의 봄의 움직임들을, 그 신비의 광경을 자주 일별하지 못했다. 보긴 보면서도 오래 맘 속에 담아놓지 못했다. 매년 봄이 오면 어릴 때 엄마가 해 주던 추억의 쑥버무리 생각에 내 마음은 허기진 듯 쑥버무리 해 먹을 걸 생각한다.

학교 갔다가 돌아오면 골목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쑥버무리 냄새에 홀린 듯 집으로 달려가곤 했던 그 시절. 식구가 많은 집이라 엄마는 한 대야 가득 버무려, 막 해낸 쑥버무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이런 까닭에 봄이면 엄마가 해주던 쑥버무리 생각에 가까운 들에 나가 밭두렁이나 야산에서 쑥을 캐 쑥버무리를 만들어 먹었다. 물론 내가 만든 쑥버무리란 것이 엄마가 해주던 그 맛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쉬운 대로 그 시절 떠올리며 쑥버무리를 꼭 해먹어야 그 해 봄을 보낼 수 있었다.

엄마 손 쑥버무리 생각에, 흉내내기.
 엄마 손 쑥버무리 생각에, 흉내내기.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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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은 일찍도 찾아도 3월에 봄꽃이 일제히 피어버렸고 사월은 오히려 예측불허의 꽃샘추위로 나날이 변화무쌍했다. 쑥 한 번 캐러 가까운 들에 나가보지 못했던 까닭에 올 봄은 쑥버무리도 한 번 못해 먹고 봄을 나야 하나보다, 생각했다.

4월도 절정이던 그 하루. 아침 산책길을 걷다가 언덕 가에서 쑥을 캐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나는 걷다 말고 할머니한테 물었다. '쑥이 다 샜을 텐데, 어디 쓰시려구요?' 하고 물었다. "쑥떡도 하고, 잘 씻어 말려서 오차물 끓여 먹듯 차로 끓여 마시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테지만 마른 쑥을 끓여 먹으면 좋다'고 했다. 그렇구나. 시간을 일부러라도 내서 쑥을 좀 캐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쑥차로 만들고, 쑥떡도 한 번 만들어볼까?!

다음날 아침. 남편 출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곧바로 미리 준비한 칼과 천가방과 비닐봉지 몇 개를 들고 산책길에서 산비탈로 향했다. 쑥은 천지에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이왕이면 깨끗한 쑥을 캐고 싶었다. 약 한 시간 넘게 쑥을 캤나보다. 두 개의 비닐봉지에 한 가득 쑥을 캐서 돌아왔다.

깨끗이 씻어 데친 후 얼려 놓은 쑥. 언제든지 떡을 해 먹을 수 있다 생각하니 좋다.
 깨끗이 씻어 데친 후 얼려 놓은 쑥. 언제든지 떡을 해 먹을 수 있다 생각하니 좋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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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엔 마을 뒤쪽 길에서도 산 쪽으로 더 들어간 밭두렁에 앉아서 쑥을 캤다. 한 번 쑥을 캐기 시작하니 탄력이 붙어서 자꾸만 들로 나갔다. 쑥은 아직도 연하디 연했다. 밭두렁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훑으며 쑥을 캤다. 쑥떡도 해먹고 쑥버무리도 하고 잘 말려서 쑥차로 만들 걸 생각하니 시간 가는 것도 힘든 것도 허리가 아픈 것도 잊었다. 찬 이슬에 젖어 있던 쑥들이 떠오른 태양빛을 받아 이슬이 말라가기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날 저녁, 가까운 떡집을 찾았다. 내가 캔 쑥으로 쑥떡을 해먹기는 처음이다. 그 날 저녁에 쑥을 맡기며 쑥설기를 해달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 떡을 찾아왔다. 한 되로 만든 쑥설기. 애들한테 몇 개 맛보라며 우체국 택배로 부치고, 남편 퇴근해 오면 줄 것도 따로 몇 개 챙겨놓았다. 또 함께 교회 전도 나가는 대원들과 나눠 먹을 떡도 따로 챙겼다. 나는 차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쑥떡을 내밀었다. 아침에 막 해 온 떡을 모두들 맛있다고 했다.

함께 한 사람들이 떡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은 더 기뻤다. 다음 주 화요일엔 쑥설기 말고 찰떡이나 절편을 해오겠다고 했더니 모두들 대환영이었다. 쑥찰떡보다는 절편이 맛있다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다음 화요일이 다가오기도 전에 한 번 더 쑥떡을 했다. 이번엔 쑥인절미. 인절미를 한 되 해서 남편 회사에도 좀 갖고 가고 등산갈 때도 가져가서 나눠 먹었다.

세 번째로 만든 떡. 쑥설기와 쑥절편.
 세 번째로 만든 떡. 쑥설기와 쑥절편.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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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나는 다시 한 번 쑥을 캐러 나갔다. 집에 있는 쑥은 씻고 잘 데쳐서 냉동실에 얼려두었으니 언제든지 해먹을 수 있지만, 새로 캔 싱싱한 생쑥으로 빛깔도 좋고 맛난 떡을 만들고 싶었다. 이른 아침에 들에 나가 엎드린 채 쑥을 캐기 시작한 것이 허리를 펴고 일어서니 그 새 3시간 가까이 되었다. 세상에.

세 번째로 떡집을 방문했을 때, 떡집 아줌마가 웃으며 '자주 오시네요' 하고 말했다.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앉을 새도 없이 바쁜 떡집은 봄에는 항상 그렇게 바쁘다고 했다. 이번엔 쑥설기 한 되, 쑥절편 한 되 모두 두 되를 주문했다.

다음날도 차 안에서 내가 해온 떡을 돌렸다. 내가 했던 약속을 잊고 있었던지 모두들 웬 떡이냐는 표정으로 그러나 모두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었다. 주는 행복, 나누는 기쁨으로 내 마음은 더 기쁘고 행복했다. 이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고 하나보다.

올 봄은 추억의 쑥버무리 한 번 해 먹지 못하고 지나가나보다 싶었는데, 뒤늦게 넘치도록 쑥을 캐서 넘치도록 쑥떡을 해 먹고 나누었다. 해마다 그냥 지나가지 않는 쑥버무리도 해 먹었다. 아직도 쑥은 산에 들에 지천이다.

5월 달까지는 쑥떡 해 먹기에 괜찮다하니 언제라도 쑥을 캐러 갈 수 있겠다. 내가 직접 캐온 쑥으로 추억을 떠올리며 쑥버무리를 해 먹는 것도 좋고, 쑥떡을 만들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내 마음을 이토록 행복하게 하니까.


태그:#쑥버무리 쑥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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